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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Aug 07. 2024

음지에서 진정한 나를 만나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당신은 생각보다 강하다


남편을 따라 계곡 골짜기로 캠핑을 갔다.

7월의 싱그러운 초록의 향연,  풀벌레 소리로 가득한 어느 계곡 골짜기,

우리는 의자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암벽 위 위태롭게 서있는 이름 모를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위 위 그늘지어 있는 음지에 한 나무가
외로이 서있다.

남편은 저나무를 보면서 꼭 우리 가족 같다고 하였다.

위태로워 보이는 주변 환경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아 있는 모습이 예술의 경지에 이른 나무 같아 보인다 하였다.


나는 그 나무를 더욱 유심히 바라보았다.

절벽 위 음지에서  햇볕을 보기 위해 처절히 자신의 몸을 비틀고 비틀어 뿌리를 단단히 내려 용케 살아남아있다.  

흙을 찾아 살기 위해 참 부지런히도 뿌리를 뻗어 내렸다.

햇볕을 받기 위해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는 한 무용가의 팔동작처럼 경의롭고 미적이다.

예술의 순간이다.


 

음지에 자리 잡고 있는 그 뒤틀리고 휘어진
그 나무 한그루가,
나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삶의 무게로 지쳐 있던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공원의 아름드리 나무들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삶에 대한 영감이었다.

그 음지에서 살고 있는 나무는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우리에게, 당신도 삶을 살아가고 이어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어쩌면 나 역시 볕 하나 들지 않는 절망속에서 싹을 틔우고 살아남은 최후의 생존자 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 나무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겁을 먹고 죽음을 생각했고, 한 동안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말 그대로 절망이었다.


“ 건강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지긋히 평범한 일상이 왜우리 가족에겐 허락되지 않은 걸까? “

인생이 참 불공평하다 생각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엄마 아빠들을 보면서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을 보면 집에서 병과 싸우느라 진땀을 빼고 있을 남편과 아이 생각에 마음이 썩어가는 걸 느꼈다.  


 

그렇게 불행으로 내 밑바닥을 보았고
내 민낯이 어떤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럴싸하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사실은 형편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내 불행만이 제일 큰 것으로 여겨, 다른 이들의 마음은 돌보지 않은 채,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나처럼 힘든 일을 겪어보지는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며 따지는,  신경이 날카로운 여자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2년 동안, 히키코모리처럼 집에서 아이만 보며 지낸 것 같다.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라 사람들을 만나는데 제약이 있었던 것도 있지만, 오히려 좋았다.

나는 나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 한동안 밖을 나가지 않고, 아이와 남편만 보고 사는 삶을 선택했다.

2년 동안 거의 묵언수행을 하며 지냈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지내는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밖에서 웃으며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했다.  ”뭐가 그리 즐거울까….? “

나 혼자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 있는듯 했다.

마치 사회 부적응자, 대인 기피증 환자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문뜩, 더 이상 이렇게 극복하지 못한 채 버티고만 사는 내 모습이 싫었다.

음지 속, 살 방법을 찾아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살아남은 나무처럼,  나 역시 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참 맞는 것 같다.  


아이가 6살이 될 무렵부터 나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지금은 , 주변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면,  더 이상 나의 아픈 아이 생각으로 마음이 힘들지 않다.

친구의 아이도 잘 봐주고 충분히 예뻐해 준다.

더 이상 나의 어려운 상황과 그들을 비교하며, 스스로 의 마음에 상처를 내지 않는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란 걸 느꼈다.

약하다고만 생각한 내가 그 모든 일을 버틴 강한 사람이었구나,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느끼게 되는 순간이 왔다.  

”나에게도 절벽 위 나무처럼  꺾이지 않는 집요한 생명력 같은 게 있었구나 “  느끼게 되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자존감이 높아졌다.


양지에서 영양분을 잘 받으며 아무런 염려 없이 지내고 있을 때는, 당연히 자신이 여리고 약한 사람인줄만 알고 있을 것이다.

도저히 버티지 못할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면 한없이 대단해만 보일 뿐, 나는 절대 그들처럼 살지 못할 것이라며 자신을 과소 평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 음지에 있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란 것을.


고통을 겪어보지 못했으니, 고통을 견딜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신은 한여름 폭우 속, 비가 그치기를 마냥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폭풍우 속에서도 즐거이 춤을 출수 있는 사람이었다.

태양의 온기와 , 오늘 하루 먹고 살 흙의 자양분이 아직남아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는 절벽 위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비틀고 비틀어 살아남은 당신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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