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

운동화 끈이 헝클어져 있었다.

by 마흔아홉

아빠마저 돌아가시고 나서 밀려오는 감정들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내 머릿속에서 이 기억들을 치워버리고 좋은 기억들만 가져가고 싶었다.


매일매일, 숨 가쁘게 써 내려갔다. 그렇게 내 모든 기억을 써 내려갔고 끝을 냈다. 그렇게 쏟아냈고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기억들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툭하니 올라오곤 했다. 마치 나를 갉아먹으려는 것처럼.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이 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목밑까지 올라오는 답답함은 체한 듯 명치끝을 아프게 눌러왔다. 아직은 다 털어내지 못한 모양이다. 작은아버지들을 만나고 나서 한 달쯤 지났을까? 일요일 저녁 막내작은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지금 형들 만나고 왔어. 우리 OOO 안쓰러워서 어쩌냐."


밑도 끝도 없이 그 한마디 하고는 울먹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작은어머니가 전화를 바꿔 들었다.


"지금 아주버님들 만나고 왔거든. 너네 작은 아빠 속이 상해서 저래. 그냥 너무 안쓰럽대. OO이 개는 대체 왜 그런 거니?"


왜 안 그럴까. 막내작은아버지는 나와 다섯 살 차이고, 엄마는 시집오자마자 국민학교를 갓 입학한 막내삼촌을 나와 함께 키웠다. 그렇게 막내작은아버지는 나와 유년시절을 함께 했다. 작은어머니는 나보다 불과 세 살 위다. 막내작은아버지는 아빠(나의 할아버지)와의 기억보다 형과의 기억이 더 많은 사람이다. 터울 많은 큰형이라 그다지 살갑지 않을 뿐이지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은 가볍지 않다.


반쯤은 눈 가리고 그를 보았던 친척들이 그를 보는 시선이 변했다. 큰 형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눈감아주었던 사실들이 이제사 있는 그대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형과 형수, 가족이라는 방패막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벌거벗은 실체를 드러냈다.


물론 내가 하는 말이 험담이 아니라고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마는 그간 그가 내뱉었던 나에 대한 험담으로 나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싸늘하게 나를 대했던 친척들에게 난 그의 험담을 하나도 전하지 않았다. 오로지 있는 사실만을 그대로 전했다. 그리고 첫째 작은어머니가 내 말에 힘을 실어주신 듯했다.


작은어머니, 그러니까 사실 나와 동년배 뻘인 그녀는 아들이 아빠의 집을 날로 가로채버린 사실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나보다 더 흥분했다.


"OO이 작년 아빠 생신 때도 땅을 샀네, 집을 짓네. 돈 많이 번다고 자랑했었어. 사업 잘된다고 했고. 근데 대체 왜, 어째서, 아빠 재산을 그렇게 가로챌 수가 있어?"


작은어머니는 여전히 모른다. 그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그의 욕심은 끝을 모른다.


"OO아, 말이 안 되잖아. 나도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상속 정리하려고 동생들이랑 의논하고 있어. OO이 한테 말해서 얼마라도 달라고 해. 너도 몫이 있는 건데, 정말 말도 안 되잖아. 어떻게 형제한테 이럴 수가 있어?"

"아뇨. 안 그럴 거예요. 엄마아빠 돈이지. 제 돈도 아니었어요. 작은엄마, 저 그 돈 없어도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아니, OO아 그럼 네가 너무 억울하잖아. 말도 안 되잖아. 이건."



나는 그와 손톱 끝만큼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고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뒤늦은 안심상속 조회 안내 문자였다.


"안녕하세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입니다. 망인 OOO(123456-7891234)님 공단 대출내역이 없습니다. 해당 내용과 관련하여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042-363-7235로 문의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온 문자였다. 코로나 시절, 아빠는 임차인의 월세를 소폭 감액해 드렸고 본의 아니게 '착한 임대인'에 동참했었다. 그 때문에 세재 혜택을 받기 위해 가입해 드렸던 단체였다. 문자를 보다가 문득, 아빠의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주인이 바뀌었을까? 궁금함에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다. 그의 이름이 보였다. 사망 신고를 하고 나서 상속이 진행된 모양이다.


그랬다. 그는 그렇게 신탁을 걸어놓고서는 그 계좌에 든 돈을 쓰지 않았고, 아빠도 쓰지 못하게 했다. 아빠는 얼마든지 빼서 쓸 수 있을 수 있었던 돈이었는데 몰라서 못 쓰셨는지, 아는데도 못쓰셨는지는 모르지만 어찌 됐든 아빠는 아빠가 평생 일구셨던 집에 대해 십 원 한 장 쓰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임차인이 방 빼겠단 말에 혹시라도 생활비가 모자랄까 미리 걱정을 하시면서 말이다. 용돈을 더 드릴 테니 걱정 말라하는 나의 말에 아빠는 자식이 주는 것과 아빠의 힘으로 사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시며 한숨만 쉬셨다.


그는 부모님의 재산은 아들인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그런 자신의 생각을 감추지 못했고 감출 생각도 없어 보였다. 단 한 푼도 출가외인이라 부르는 딸인 누나와는 나누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럴 거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아빠 생전에 일을 벌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었다.

딸인 누나의 '정당한 상속권'을 빼앗아갔음에도 딸인 누나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되찾았다고 떠벌리고 다닐 그를 생각하니 헛웃음만 나온다. 단 한 번도 가져간 적 없었고 가져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도 알고 그도 안다. 정당한 나의 권리란 것을. 첫째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께 찾아가서 말씀드렸을 때 작은어머니가 기억이 난다며 말씀하셨다.


"아, 그래서 개가 그랬구나. 아빠 죽고 나면 집은 아들 거라고, 자기한테 등기권리증 주면서 쓰라고 했다고 우리한테 족히 수십 번은 말했었어. 근데 지가 아빠 생전에 그러면 안 된다고 돌려줬다더라. 이번 추석에도 와서도 그렇게 말했어. 근데 3년 전에 이미 명의이전 해놓고 그렇게 거짓말한 거야? 어? 어떻게 그래놓고 그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어? 근데 거기에 너네 아빠는 왜 한마다도 못 하고?, 아니다. 평소 너네 아빠면 한마디도 못했을 양반이다. 그렇고말고. 어휴"


나는 몰랐던 사실이다. 그제서야 짐작이 갈만한 일이 떠올랐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빠의 세금이며 계좌, 월세를 관리했을 때 그때 그래서 등기권리증을 나에게 보관해 달라고 하셨던 것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아빠가 그때 그러셨구나. 그때 나는 손사래를 쳤었다. 그러지 말걸, 때늦은 후회일 뿐이다.


무튼 그래서 그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께 미리 연막을 친다고 떠들도 다녔던 모양이다. 그는 처음부터 아빠로부터, 나로부터 빼앗아놓고서는, 아닌 척 쇼를 한 것이다. 당연히 아빠는 한 마디도 못하셨을 것이라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는 내가, 나는 슬프다.


억울해해야 하는데, 아빠가 불쌍하고 엄마가 안쓰러울 뿐이다. 이 답답한 두 노인네가 나의 엄마와 아빠란 사실에 나는 그저 슬플 뿐이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안 되고, 그가 밉다.


사망신고 후 그에게 상속이 이루어진 그 시점부터 그는 내게 그 어떤 연락도 하지 않고 있다. 아빠의 조의금을 "누나가 조의금 들어온 거 다 가지고 튀었어요." 하며 나를 도둑 취급했던 그가 돈 달라고 연락을 하지 않는다. 평소의 그였다면 35재 때의 그라면 계좌번호와 쪽지를 몇 번을 날리고도 모자라 우리 집으로 찾아왔을 터였다.



하지만 찾아오는 대신에 그는 잠수를 탔다.


유류분청구소송은 고인의 사망, 증여 또는 유증을 알게 된 날 중 늦은 날로부터 1년, 또는 상속이 개시된 때로부터 10년 이내에 소송을 진행해야 하며, 둘 중 하나라도 기간이 경과한 경우 유류분반환청구권은 소멸된다. 신탁은 2년 전이지만 특별수익일 경우 신탁이라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몸을 사리고 있는 거다. 그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상속이 개시된 것을 내가 알면 유류분청구소송을 할 거라고 생각했을 테고 어떻게든지 1년이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 믿으며. 그도 머리로는 부인해도 마음으로는 아는 것이다. 나의 정당한 권리라는 사실을. 나와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단지, 인정하지 않을 뿐.


그는 유언대용신탁이라는 편법을 썼다. 정당한 권리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나는 단 한순간도 부모님의 돈에 욕심부린 적 없다. 엄마 아빠가 일구신 재산, 돌아가실 때까지 원 없이 다 쓰시고 10원 한 장 남겨 주시면 감사하게 받겠다고 진즉부터 말씀도 드렸었다. 진심이었다.


지금도 인터넷뱅킹에 접속할 때마다 만기가 남은 아빠의 공동인증서가 뜬다. 차마 삭제 버튼을 누르지 못하겠어서 아직은 그대로다. 아빠의 핸드폰도 살아있다. 핸드폰 해지를 하러 갈 용기가 아직까지는 나지 않았다. 자동이체 문자가 오늘도 떴다. 21일이다. 다음 달에는 해지하러 갈 수 있을까?


유언대용신탁을 확인한 후에 나는 친구의 삼촌인 변호사와 상담을 했다. 친구의 삼촌인 변호사는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최근의 법원 판례를 봤을 때 승소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안심이 되었다. 명분이 생겼다. 나는 유류분청구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뭐 하러 변호사와 상담을 했냐며 친구는 내게 물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


유류분청구소송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이자 선택으로 안 하겠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이길 수도 있음에도 안 하다는 명분을 가지고 싶었다. 그게 필요했다.


오로지 나의 의지이며 나의 선택으로.


안 한다. 그 더러운 돈 갖기 싫다.

엄마와 아빠의 그 재산은 평생을 일궈온 지난했던 그들의 세월에 대한 목숨값이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의 세월에 대한 가치가 그를 거치면서 훼손되었다.

그의 욕심 때문에.


나에게는 너무도 무거운 돈이다.

나는 그 무거운 돈을 쓸 자신이 없다. 벌면 그만이다.

홀가분하게 살자 다짐했다. 남편도 아이들도 나의 선택을 응원해 주었다.


헝클어졌던 운동화 끈을 몽땅 풀어 버렸다.

이제까지와 달리 다른 알록달록한 끈으로 다시 동여맸다.

마음을 다잡고, 오늘도 씩씩하게 출근길에 나선다.

나대로 살자. 욕심내지 말자. 오늘도.


내가 지은 업의 파장이 내 자식까지 갑니다 by 법정스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