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속삭임
올라간다! 내려간다! 롤러코스터다.
이것이야말로 그 옛날 청룡 열차, 팔팔 열차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오르락내리락. 빨간색, 파란색, 알록달록 그래프.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는 붉은 선과 푸른 선의 현란한 움직임을 따라 아침부터 내 눈알은 이리저리 굴러간다.
‘올라가라! 올라가라!’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오를 건 오르고, 내릴 건 내리는구나. 학창 시절, 수학책에 나오는 그래프를 지금처럼 열심히 들여다보았다면 나는 아마 서울대에 들어갔겠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누구보다 주식을 증오하는 사람이었다. 신혼 초에 우리 남편이 주식으로 한바탕 화끈하게 말아먹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카드 대출을 받아서. 그 후유증으로 인해 나는 주식 투자란 패가망신을 향해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런 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얼마 전부터 정부 정책에 발맞추어 작고 앙증맞은 비상금으로 주식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은 사람에게 망각을 주기도 하고. 생각의 변화를 선사하기도 하니까.
“나를 데려가세요. 나는 당신의 봄나들이를 더욱더 화사하게 꾸며줄 핑크빛 치마랍니다.”
“짠! 나는 거기에 어울리는 리본 달린 예쁜 단화예요.”
그래...... 사야지. 사야 해. 아무렴 그렇구 말구.
인터넷 쇼핑몰 검색창에 촤라락 진열되어 눈길을 사로잡는 오만가지 상품들 가운데, 내 영혼의 이끌림에 의해 하나씩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아나가듯, A사 몇 주, B사 몇 주, C사 몇 주 골고루 담아보았지만, 그들의 유혹하는 손길은 끊이질 않았다.
“저를 데려가세요, 지금은 비록 푸른 옷을 입고 있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조만간 붉은 옷을 갈아입고 당신의 통장 잔고를 빵빵하게 채워드릴 준비가 되어있으니까요. 제가 푸른색일 때 얼른 데리고 가셔야 나중에 수익이 크답니다.”
“저런 거짓말쟁이! 아니에요. 붉은 옷을 입고 있는 나를 보세요. 쟤보다 먼저 붉은 옷을 입었을 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요. 이미 붉은색 옷을 휘두르고 있는 나를 데리고 가셔야 당신의 통장 잔고는 시퍼런 추위에 바들바들 떨지 않고, 나의 붉은 품에 안기어 따뜻하고 아늑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요.”
어쩌지? 내 눈에 푸른색의 모든 주식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듯이 보였고 붉은색의 모든 주식은 유능해 보였다.
아! 내가 이토록 유혹에 약한 사람일 줄이야!
나를 향해 유혹의 손길을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그 모든 곳으로 달려가고 싶을 줄이야!
에라 모르겠다.
주식에 문외한인 나는 여우에게 홀린 듯이, 늑대에게 반한 듯이 유혹의 손길을 따라,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것저것 골고루 사서 담았다. 나는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다. 하필 그때가 여러 가지 기대감으로 인해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던 시기였다는 것을. 소위 말해 ‘꼭대기에서 샀다’라는 말은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제개편안이니, 관세니, 환율이니, 거품론이니 뭐니 하면서 갑자기 주식 가격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처음 주식을 시작할 땐 일단은 소액이요, 당장 팔아치울 것도 아니므로 남들은 몰라도 나만은 시세 따위에 흔들림 없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마음은 어느새 시소 위에 걸터앉아 있다. 저 흔들리는 그래프 위에 온 마음을 태운 채, 그대가 올라가면 내 기분도 따라 올라가는구려, 그대가 곤두박질치면 나도 함께 곤두박질치는구려.
“여보시오! 독자님네. 그 시절 내가 진심을 담아 시를 한 수 지었는데 어디 한번 들어보시겠소? 제목은 ‘여우 같은 청실홍실’이라오.”
이런 요망한 것!
어디에서 너는 그러한 몸짓을 배워왔느냐
사르르 올라가다 뚝 떨어지고
또르르 내려오다 사뿐 뛰어오르는 그 모양새
어쩜 이리 형태 없는 사람 마음을
요리조리 사방팔방 흔들어대누
푸른 실로 이 가슴을 꽁꽁 붙들고
붉은 실로 이 허리를 칭칭 동여매
콧방귀 뀌는듯한 무심함으로
이 마음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네
우습게 보았구나! 우습게 보았어!
너의 그 요망함을 우습게 보았구나!
수많은 영혼을 비웃었었지
멱살 잡혀 질질 끌려다니는 그 꼴이라니
너의 청실, 홍실에 이 한 몸 꽁꽁 묶여보니
한때 비웃었던 수많은 영혼
호탕하게 나를 비웃는구나!
어느덧 청실은 내 정맥과 연결되고, 홍실은 내 동맥과 연결되었다. 휴대폰 위를 수놓던 붉은빛이 푸른빛으로 변하면 정맥을 흐르던 내 푸른 피는 깜짝 놀라며 심장을 향해 차갑게 오그라들었고, 푸르던 그 빛깔이 다시 붉게 탈바꿈하면 동맥을 흐르던 내 붉은 피는 환희에 넘쳐나 온몸으로 뻗쳐나갔다.
이런 몸의 변화는 급기야 나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가가 바닥 모르고 추락하던 어느 날, 심장이 쪼그라들며 콩닥콩닥 거릴 때, 정신 승리 권법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내가 태어날 때, 이 세상에 무엇을 가지고 왔던가? 어차피 빈손으로 오지 않았더냐. 저 돈이 다 날아간들 아쉬워할 필요가 없느니라.’
또 다른 어느 날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주가를 마주하고 보니, 밀려오는 두려움에 차마 휴대폰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내가 이렇게 쫄보였던가 실망하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아니야, 부처님께서는 두려움이 생기면 외면하지 말고 그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라고 하셨지!’
이러면서 주가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그 휴대폰을 두 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바라보았다.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간의 내면 저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공부는 단연코 연애가 최고이고 그에 못지않은 것이 주식 투자라는 것을…….
나는 아침마다 주식 시장을 잠시 들여다본다.
사실은 거짓말. 수시로 들여다본다. 틈만 나면 들여다본다.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본다. 그렇게 매일, 매시간을 바라보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래프가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양이 응급실에서 사용하는 바이탈 사인 모니터라고 하는 심장박동을 체크하는 기계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마치 생명이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 생각.
‘내 바람처럼 저 그래프가 끊임없이 올라가기만 한다거나 반대로 마냥 내려가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못 가 그 생명은 삐-소리와 함께 죽어버리지 않을까? 더 이상의 변화 없이 모든 것이 끝나버리겠지? 변화란 살아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구나.’
붉은 그래프, 푸른 그래프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조율하고 조정해 나가는 것이 주식 시장의 건강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린이다.
배가 터질 때까지 무작정 주가가 올라가는 것만이 최고인 줄 알았던 ‘굶주린 이’ 그러나 몇 달을 주식 시장에 멱살 잡혀 사정없이 끌려다녀본 나는 이렇게 다짐해 본다.
첫째, 경제의 원리를 차근차근 배우고,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고자 공부하는 겸손한 주식 어린이가 되어 보아야지.
둘째, 내가 주주로 있는 기업에 관한 공부도 하며 가치 투자를 하고자 힘쓰는 주린이가 되어야지.
마지막,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세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변화를 자연스럽게 바라보며 배우고 성장하는 진정한 주식 어린이가 되어 보아야지.
이 다짐들을 다시 한번 가슴속 깊이 새겨본다.
그러나
오늘도 저 깊은 마음속, 더 깊은 마음속, 심연의 끝에서는 여전히 속삭이고 있다.
‘부디, 내가 가진 주식만큼은 파랗게 떨어질 때 조금만 내려가고, 붉은색으로 올라갈 땐 불꽃이 활활 타오르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쳐 오르도록 해주십시오.’
**나는 이 글을 2025년 12월에 마무리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지금은 2026년 3월 중순을 훌쩍 지나 하순을 향해 달려간다.
3월의 한국증시는 하루하루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며 이 주린이의 심장을 더욱더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미국, 이스라엘 - 이란 전쟁이 에너지 전쟁으로 확산되며 전 세계는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전쟁통에도 무엇보다 내 주식계좌가 매우 걱정된다.
그리고 날아다니는 드론과 미사일에 무참히 으스러지는 사람들과 시설들과 여기저기 튀어나가는 파편, 타오르는 불의 춤과 시커먼 연기들은 더욱더 걱정된다.
바이탈사인모니터를 주식 시장에서 옮겨와 지구 깊숙이 연결해보고 싶다.
내가 낳아 먹이고 기른 자식들이 내 젖줄 때문에 싸우고 죽이며 피를 흘린다.
자신의 몸 위에 풀썩풀썩 쓰러져 죽어가는 자식들을 말없이 온몸으로 받아내는 지구라는 어머니가 보내온 슬픔의 신호가 그 모니터 위에 그려질 것만 같아 나는 슬프다.
어머니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가르치셨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연년생으로 이루어져 힘이 비등비등했던 우리 삼 남매는 어릴 적 눈만 마주치면 치고받고 싸웠다.
공부를 못하는 문제로는 혼내는 일이 거의 없던 우리 엄마는 형제끼리 싸우는 것만은 용서치 않았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빨래를 하다가도, 우리가 치고받는 소리만 들리면 짠! 하고 나타나서 "이것들아! 밭 때문에 싸우나? 논 때문에 싸우나?"이러면서 고무장갑 낀 그 손으로 자비 없는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그리고 마무리는 항상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셨다.
우리가 싸울 때마다 어디서든 내려 꽂히던 강스매싱!
그 교육~ㅋ 덕분에 우리 세 남매는 이제 더 이상 밭 때문에도, 논 때문에도 싸우지 않는다.
싸울 때마다 사이좋게 지내라고 등짝스매싱을 날리며 참 교육을 시켜주던 엄마.
전쟁을 일으킨 그들에게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있어야 했다.
각국의 지도자들을 우리 엄마 앞에 데리고 와 빨간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등짝을 한 대씩 후려갈기는 제대로 된 참 교육의 맛을 보여주고 싶다.
제발, 엄마말 좀 잘 들어라.
항상 다른 길을 향해 내달리던 내 표면의식과 깊은 무의식이 이번만큼은 사이좋게 속삭인다.
'푸른 별 지구 위에 평화를 내려주십시오.
그리고
형제, 자매, 남매, 친구끼리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도록 보살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