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의 네 번째 노래

내 구두는 총각구두

by 헌화가

지금 내 뒷모습은 오리처럼 뒤뚱뒤뚱거릴 것이다.

커다란 바가지를 뒤집어 놓은 듯한 뚱뚱한 배를 흔들며 힘차게 걸어가고 있으니...

언제 아기를 낳아도 이상하지 않을 임산부가 무슨 이유로 저리 씩씩하게 걸어가나 하겠지만, 아무도 나를 말리지 마오. 나는 지금 바쁘다오. 며칠 전 시내에서 우연히 내 눈길을 사로잡은 황금색 구두, 그것을 사러 가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7cm 굽의 반짝이는 황금구두.

만삭인 내가 그것을 사러 간다오.


구두가게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사장님, 진열대위에 있는 황금색구두 보여주세요."

내 몸상태를 보더니 나이 지긋한 사장님은 낮은 구두굽으로 변경이 가능하다고 했다.

"히히, 아기 낳은 후에 신을 거라 괜찮아요. 지금은 몸이 이래서 그렇지 저는 원래 7cm 이하로는 내려오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꼭 7cm 굽으로 부탁드려요."

구두를 맞추어놓고 일주일 뒤에 찾으러 가기로 했다.

'출산하고 나면 황금빛 새신을 신고 멋진 원피스 자락을 휘날리며 가벼운 몸으로 훨훨 나들이를 가야지.'

집으로 돌아오며 룰루랄라~

무겁고도 가벼운 걸음으로 룰루랄라~


다음날 새벽 나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아기를 낳으러 갔다.

일주일 뒤에 남편이 찾아온 구두를 신발장 안에 곱게 모셔두었다.

삼칠일 이후 황금빛 스텝을 뽐낼 나의 발걸음을 상상하며...

아~ 지나가는 사람들, 내 구두가 뿜어대는 광채에 시력 나빠지면 어쩌나~ㅎㅎ

그 후로도 나는 조만간 꺼내어 신게 될 7cm 구두 몇 켤레를 때마다 꾸준히 사서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조만간 꺼내어 신을 날을 기대하며...


삼칠일...

석 달...

삼 년...

칠 년...


그동안 나는 높은 구두에 올라갈 일이 별로 없었다.

큰맘 먹고 한 번씩 올라가더라도 몇 발자국 떼어 놓기도 전에 네 번째 발가락에 쥐가 나서 내려오고, 뒤꿈치가 까진다고 내려오고, 또는 무릎이 시큰거려 내려오며 다음을 기약하고, 또 다음을 기약하면서 다시 신발장 안에 곱게 넣어두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신발장 속 내 구두들을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새 구두, 한 번밖에 신지 않은 높은 구두, 두어 번 신어 본 예쁜 구두들아 안녕?

겉가죽이 멀끔한 구두에 반갑게 손을 대는 순간, 구두 안쪽 합성가죽이 손에 찍찍 달라붙더니 이내 과자 부스러기 떨어지듯 후두둑 떨어지고, 뜨거운 대중목욕탕에서 불린 때 밀리듯 죽죽 밀려나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고?"

깜짝 놀란 나는 급한 마음에 일단 몇 켤레만 싸들고 구두 수선집으로 달려갔다.

"사장님, 큰일 났어요! 이 구두 좀 보세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 물음에 사장님은 구두를 살펴보며 대답했다.

"구두 안쪽이 이렇게 된 건 방법이 없습니다."

"뭐라구요? ㅠㅠ 별로 신지도 않고, 새신도 있는데 왜 이런가요?"

나는 미련을 뚝뚝 흘리며 물어보았다.

사장님은 담담히 말했다.

"차라리 땀도 묻히고, 때도 묻혀가며 종종 신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새신인데... 새신이나 다름없는데..."


사장님 왈,

"원래 총각이 더 빨리 늙습니다."


아! 그 한마디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방에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한옥 대청마루도 사람이 올라가서 뒹굴고, 손때도 묻히고, 먼지도 닦아가며 그것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야 오랫동안 유지가 되는 것처럼 구두 또한 그렇다는 것을...


"사장님, 안녕히 계세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저 옷장 서랍을 열어보면 햇살아래 외출 몇 번 해보지 못한 철 지난 옷들이 빛바래가고 있을 것이야.

화장대 서랍 어느 구석에 차곡차곡 사다 모은 머리띠와 각종 핀이 내 손길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채 낡아가고 있을 테지.

싱크대 사이사이 음식 한번 제대로 담아보지 못한 먼지 쌓인 그릇들은 나이 들어가고 있을 것이고, 집안 구석구석에 많은 물건들이 사람의 따뜻한 손길을 그리다 차갑게 굳어버렸을 것이다.


나를 위해 자신의 모양을 바꾸었던 지구의 수많은 자원들.

젊던 그들은 어두운 그늘에서 내 손길과 그 손때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세월을 앞당겨 늙어버렸다.


저녁이 되기 전에 옷장문을 열어 내가 입을 옷을 골라내고 그렇지 않은 옷은 나눔을 해야겠다.

화장대 서랍을 열어 오랜만에 머리띠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깔끔히 쓸어 올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저 구석에 쑤셔놓은 재료들을 꺼내어 그동안 선보이지 않았던 신박한 요리들을 만들어봐야지. 고추 송송, 파송송 다져 넣고, 어두운 싱크대 구석에서 먼지 쌓여 늙어가는 토기 그릇들을 꺼내야겠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음식을 정성스레 담아 한 숟가락 듬뿍 떠서 한입 가득 감사함을 삼켜보리라.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