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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 뚱이 Feb 05. 2024

젊음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남겨지는 것

차 안에선 the saddest thing  노래가 흐르고

 진천에 볼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 무심히 켜 놓은 라디오에서 멜라니에 샤프카의 the saddest thing 이 소개되었다. 조금은 나른함에 정신이 희미했는데 노래의 제목이 나오자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에 소리를 키웠다.

 1971년엔가 슬픈 멜로디와 허스키한 우수에 가득 찬 목소리의 멜라니에는 20살이 된 의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고 는 그 노래를 듣기 위해서 음악 감상실을 자주 찾곤 했었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준 음악 감상실>로 기억한다. 감상실에 들어서면 dj실에만  불빛이 있을 뿐 커다란 홀에는 dj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의자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공간엔 음악과  시간마다 다른 dj들이 들어와서는 각자의 취향대로 시간을 만들어 갔다.  난  신청곡을 쓰는 종이에 이 곡을 신청하고 듣는 일이 잦았다. 특히나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그랬다. 전주가 나오기 시작하면 치솟아 오르는 감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시울이 빨개지도록 울곤 했다. 내가 취업을 할 때까지 음악 감상실에 자주 갔었던 것 같다. 물론 긴 시간을 있거나 늦은 시간에는 갈 수 없었지만 짬짬이 그곳에서 음악을 듣는 것이 나의 취미였다. 그냥 음악이 좋았다. 노래에 나를 그리고 노래에 친구를 담았고 자유를 담았던 것 같다.

 

 본국에서는 큰 사랑을 받지 못했으나 우리나라에선 열광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그때의 그 노래가 차 창 밖 낮게 깔린 구름과 어우러져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음악에 취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다 말고 음악에 심취해서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연세가 많으신 미술학원 원장님께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피식 웃곤 하셨지. 그래 그땐 나도 감성이 충만한 꿈으로 가득 찬 아이였던 것이다. 음악이 친구였고 속삭임이었다. 가끔은 마이클잭슨의 Billie Jean, Beat it을 듣기도 했고 뮤직 비디오를 보기도 했지만 난 그보다는 곱슬 머리에 모자를 눌러쓴 펑퍼짐한 코를 가진 어릴 때의 마이클잭슨이 더 정감이 갔고 5살에 불렀던 maria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대구 달성극장 맞은편 레코드 가게에서 그 노래가 나오면 발 길을 멈추고 듣곤 했었다.

 

 사춘기에서 20대가 되기까지 과몰입한 음악 사랑에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취향이었고 취미였다. 노래 한 곡에 긴 이야기들을 떠 올리며 집 근처에 다다랐다.

 세월이 흘러 치열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밤을 새워 자료를 찾고 각종 세미나에도 시간을 아끼지 않았던 나의 젊은 날을 돌아가는 엘피판 위에 올려 보았다. 천천히 조심스레 돌아가는 나의 30. 40대.

 어린이집이 제대로 없었던 90년 초반에는 가족의 도움이 없이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님 방치를 해야 했다. 일을 하기 위해서 작은 아이는 돌잔치를 하고 시댁에 맞겨졌었다. 그런데 결핵에 걸려서 일 년 만에 우리 집으로 돌아왔고 잠자는 작은 아이를 붙들고 소리도 못 내고 울었던  일이 새삼 생각이 난다. 두 아이의 엄마로 한 집안의 며느리로 모든 것을 소화해 내며 버텼던 날이 떠 오르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옆 차에서 볼까 참으려 했지만 참아지지 않는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토닥토닥 열심히 살았어. 멋있었어. 너의 젊은 날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을 할 때도 잊지 않고 챙겨 왔던 멜라니에의 엘피판을 꺼내어 보았다. 먼지가 쌓인 듯 버스럭거려서 물티슈로 닦으며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 만졌다. 청바지에 짧은 단발머리, 검정 뿔테 안경을 쓰고 레코드 가게에서 판을 사서 활짝 웃으며 나오던 그때의 내가 떠 올랐다.







 그리고 티슈 함 위에 줄지어 서있는 선물들을 보았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손녀에게서 받은 선물들이다.

3살 때부터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놀이 미술을 함께했던 아이라 이렇게 교감이 된다.

그리고 나는 삐뚤빼뚤한 그림을 좋아한다. 가장 아이답고 그 시기를 놓치면 볼 수 없는 아이의 작품을 좋아한다. 어제 만난 손녀는 자기의 용돈으로 편의점에 혼자 가서 커피를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서 커피를 사다 주었다. 이제 입학을 앞두고 편의점 혼자 가기를 연습 중인가 본데 얼마 되지 않는 용돈에서 커피를 사 주다니... 참 많이 컸다는 생각과 함께 고마움이 컸다. 이렇게 한 페이지의 하루가 남겨진다.



젊음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남겨지는 것인가 보다.



손녀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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