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쁜 뚱이 Feb 01. 2024

어느새 환갑이라니

들풀이 알려 준 이야기

  밤새워 혼란스러운 꿈을 꾸고 피곤한 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따뜻한 밥을 찬물에 말아 김치와 멸치로 대충 때우고 커한잔을 타서 집을 나섰다.그리고 도착한 곳은 봄, 여름, 가을 동안 먹거리를 제공해 준 텃밭이었다.

  잎은 다 떨어지고 앙상하게 벌거벗은 대추나무, 무궁화나무, 이팝나무와 색 바랜 무성했던 잡초의 흔적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166cm 키의 그녀보다 더 크게 자란 강아지풀에게 제 몸을 빌려준  무궁화나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참 다정하구나. 서로 의지가 되니?"

 무심히 중얼거리고선 전지가위를  들었다.

 제 멋대로 얽히고설킨  풀과 나무들을 예쁘게 단장해 주기로 마음먹은 날. 어쩌면 그것은 핑계이고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 찬 감정들을 정리하기 위해 이 일을 선택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건강 악화로 이십 년 가까이해 왔던 일을 정리하고 은퇴를 했으나 애초에 꿈꾸었던


 `늙어서 개량한복을 입고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는
할머니  선생님이  될 거야.`

  라는 소박한 꿈을 버리지 못해 갈등하고 있었던  어느 날 교육지원청을 통해서 어느 초등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김**선생님 이신가요?"

 "네."

 "아 여긴 ** 초등학교인데 혹 돌봄 교실 미술수업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회복 후 다시 시작했던 일이 코로나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던 그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그녀에겐 생명수와 같은 고마운 일이었다.  그녀의 재능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배우기 위해 대기 순번을 기다려야 했던 잘 나가는 학원의 학원장이었던 그녀가 프로그램  강사로 일을  한다는 게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돌봄 전담사님의 눈치를 보아야 했고 귀신같이 서열 정리를  마친 아이들이 전담사님이 계시면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때 그녀는 처음 알았다. 그녀의 학원에서 근무했던 교사들도 이런 어려움이 있었겠구나 라는.... 또 다른 학교의 경우  그녀가 수업하는 맨 꼭대기 층 끝 교실  화장실엔 온수도 나오지 않았고 그 흔한 손비누도 없었다. 예산이 없다며 재료를 사 주지 않을 때에는 폐품이나 자연물을 활용한 수업 또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십 분 수업을 하다 귀가를 해야 는 아이들도 있었고 수업 종료시간을 코 앞에 두고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 때문에 수업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힘듦이 있었지만 아이들과의 일상은 즐겁고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그림을 보는 행복함에 그 정도의 어려움은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했던 덕에 다른 기관에서 콜이 오기도 했었다.  6개월마다 재 계약이 되었고 이 길이 끝이 없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새 학기를 앞두고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며칠째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는  꿈을 꾸며 밤을 보냈던 것이다. 머릿속이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해지면서 심장에선 바스락바스락 무언가 부서지는  듯함을 느꼈고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일이나 하자고 간 텃밭에서 들풀에 하얗게 내려앉은 상고대를 만났다.

 그녀는 추워서 옷을 몇 겹이나 껴 입고 갔는데 딱딱한 언 땅을 스스로 뚫고 나와 제 몸을 키우 그  몸을  상고대에게 내어준 들풀을 보며 정말 작은 그녀를 보게 되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빛을 발하고 있는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들풀. 한참을 바라보다  핸드폰을 꺼내어 작은 거인, 들풀을 폰카에 담았다.


 '이 아이는 힘듦이 없을까? 속상함이 없을까? 억울함이 없을까?'

 


 마른 잡초 사이에서도, 이 추위 속에서도 잘 자라고 있는 들풀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런 말들로 자신을 달랬다.

 '저 여린 잎도 저렇게 잘 견디는데  넌 그런 일로 몇 날을 힘들어하니? 그럴 수도 있지.  6개월마다 재계약을 하면서 그 자리를 지켰으니 이제 다른 사람에게 내어줘도 될 일을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속을 끓이고 있니? 솔직히 네가 이력서를 들고 뛰어다닌 것도 아니고 굴러 들어온 일자리를 어려움 없이 몇 년을 해 먹었으니 이제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때도 되지 않았니?

 그리고 너 올해 환갑이잖아. 이젠 그럴 때가 온 거야. 너 스스로 내려놓아야 할 일을 욕심을 부린 거지. 너 커뮤니티에서 젊은 강사들이 늙은 강사들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글 많이 봤잖아. 물론 좋게 표현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건 아주 소수만 그랬잖아. 세상살이가 그런 거야. 좀 다른 말이지만 너도 오늘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 얼마나 많은 들풀을 짓밟으며 가지치기를 했니? 그뿐이니? 예쁘게 열매가 맺히기만 하면 가지야, 오이야. 토마토야... 미안한 마음하나 없이 뚝뚝 꺾어다 먹지 않았니? 욕심쟁이. 너 학원을 정리했을 때는 오직 건강만을 챙기자고 맘먹었었잖아. 그런데 그 후로  4년이나 붙박이장처럼 계약직을 이어 왔으면  이제 내려놓아도 되는 것 아닐까?  이게 삶이란다. 언 땅에서 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묵묵히 버티는 저 들풀에 비하면 넌 얼마나 더 행복하니?'

 그녀는 스스로를 달랬다가 야단치기를 반복했다.

 차가운 아침 바람도 서서히 누그러져 그녀의 볼을 스치는 바람이 싫지 않을 때 즈음 그녀의 마음도 그녀의 볼처럼 따뜻해졌다.

 그리고는 준비해 간 커피를 마시며 정리된 그녀의 텃밭을 주욱 둘러보았다.  마음이 복잡할  때 올 수 있는  곳이  있음에 또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내년엔 더 열심히 텃밭을 일궈야지.'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젠 그녀도 내려놓을 때가 온 것이라고 인정했다.



  

 어수선한 마음을 나뭇가지들과 함께 잘라내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잘랐던 나뭇가지 몇 개가 쥐어져 있었다.

  습관처럼 아이들과 수업할 샘플을 만들기 위해서 들고 온 것이다.

  그녀는 과연 이 일을 언제 즈음  멈출 수 있을까? 그녀의 일상이었던 이 일들을.

  그녀의 평생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내려놓을 때가 왔나 보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랜다.


 "열심히 했어. 이젠 조금 쉬어. 예쁜 뚱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