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증도의 보물

이하나 작가

전라남도 무안의 초등학교 교사 최평호는 오랜만에 새해 벌초를 하러 고향을 찾았다. 벌초를 끝내고 셋째 형 집에 갔는데, 그 집에 있던 도자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게 뭐예요? 어디서 났어요?”

“고기 잡다 그물에 걸려 올린 거여. 불상 같은 거도 하나 있어서 그것은 엿 바꿔 먹었네.”


최씨는 도자기를 자세히 살폈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의 집 마루밑에도 비슷한 도자기가 몇 점 더 있었다.


“형 그거 나 줘봐요.”


동생인 최 교사는 형 집에서 발견한 도자기 몇 점을 들고 목포시청과 신안군청을 찾았다.

“이게 고려청자가 아닌가 해서 왔는데요.”

“어디서 난 거요?”

“저희 형님이 증도에서 배를 타는데요. 그물에 걸려 나왔다고.”

“예끼 이 사람아! 바다에서 고려청자가 왜 나와! 이 사람 이거 이거,

보상금 받으려고 사기치는 거 아니여?”


최 교사는 처음엔 포상금을 받으러 온 게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 실은 몇 년 전부터 신안 앞바다에서 어민들 사이에서는 자꾸 그물에 뭐가 걸려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던때였다.


“에이 그물만 찢어져 부럿네.”


증도 인근 어민들은 그물에 깨진 도자기나 나뭇가지가 자주 걸렸다. 이런 게 걸리면 그물이 쉽게 찢어졌기에 달갑지 않았다.


“그것이 뭐냐 하믄 말여. 옛날에 여다가 사람을 고려장시켰다네.

그래서 그때 같이 저승길 가라고 넣은 것이란 말이제. 귀신 붙은거라니께!”


마을엔 귀신 붙은 그릇이 걸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민들은 배에서 고사를 지내며 원혼을 달래고,

그릇을 잘게 부숴 버리곤 했다. 온전한 것이 걸리면 개밥그릇으로도 쓰고 요강으로도 썼다.


최 교사가 신안군청을 찾았던 건 1976년 1월이다. 신안군청은 공보실을 통해 문화재관리국에 감정을 맡겼다. 감정 결과 이 청자는 원나라 때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은 신문에도 작게 실렸는데, 당시 시가로 억대에 이를 것이라고 알려졌다.


같은 해 4월, 어부 박창석이 또 도자기를 건져 올렸다. 지도면에 살던 박씨는 백자 1점과 청자 1점을 문화재관리국에 신고했다. 이것 역시 송나라 때 것으로 밝혀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 사이에 신안 앞바다에 오래전에 가라앉은 보물선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브런치_17편.jpg 1976년 2월 24일 매일경제 기사



군산에 살던 이수일은 목포로 가서 신안 보물선에 대해 알아봤다. 지도면 주민 조장호를 만나 작업을 하기로 했다. 조씨는 10년 경력의 머구리 정삼순을 포섭하고 보물을 건져 올릴 사람을 찾았다. 총 여섯 명의 도굴꾼은 증도로 향했다. 이들은 잠수장비를 갖춘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갔다.

9월 1일 잠수부가 청자 2점을 발굴했고, 9월 16일 다시 잠수했다.


바닷속에는 수백 점의 유물이 잠겨 있었다. 이들은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 향로를 포함해 다섯 점을 건져 올렸다. 이후 이 패거리는 쪼개진다. 세 번째 바다에 내려간 9월 18일, 이수일과 잠수부 포함 세 명만 바다에 내려가 110점을 인양했다. 이들은 목포와 전주에 건져 올린 골동품을 내다팔았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문화재를 신고한다는 명목으로 목포시 문화공보실에 방문하기도 했다.


바닷속에는 수백 점의 유물이 잠겨 있었다. 이들은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 향로를 포함해 다섯 점을 건져 올렸다. 이후 이 패거리는 쪼개진다. 세 번째 바다에 내려간 9월 18일, 이수일과 잠수부 포함 세 명만 바다에 내려가 110점을 인양했다. 이들은 목포와 전주에 건져 올린 골동품을 내다팔았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문화재를 신고한다는 명목으로 목포시 문화공보실에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에는 수중문화재발굴에 대한 기술이 없었다. 한국정부는 군인을 동원해 건져 올리기로 한다. 해군의 해난구조대(SSU, Sea Salvage Unit)가 이 작업을 전담했다. 경찰이 보초를 서고 발굴자리에는 부표를 띄워 두었다. 문화재관리국 관리관과 전문위원들이 10월 목포에 도착했다. 맹인재 전문위원이 단장을 맡아, 도덕도 앞바다부터의 수색을 진행했다. 신문은 연일 신안 보물선 소식을 쏟아냈다.


1977년부터는 암거래되는 신안 보물을 압수하고 회수했는데, 공무원이 낀 밀매사건이 발생하면서 잠수부가 검거되는 등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1980년대에도 보물선에 꿈을 품은 이들은 계속 활동했다. 암거래나 해외로 유출 현장을 경찰이 급습해 도굴꾼을 잡은 기사도 끊이지 않았다. 말그대로 신안은 황금의 바다 엘도라도가 되었다.


1981년 8월, 우연찮게 태안 앞바다에서도 보물선이 발견된다. 그 외에도 1983년 완도 앞바다, 1995년 무안 도리포에서도 보물선이 발견되었다.


브런치 17편_01.jpg 1976년 10월 13일 경향신문에 실린 보물선 지도



1984년까지도 군인을 동원해 수중 문화재를 건져냈다. 1999년에 들어서야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서 전문 장비를 갖추고 교육을 시작했다. 이때 배출된 전문인력이 2002년, 군산 비안도 앞바다에서 대규모 청자더미가 발굴하게 된다. 2007년에도 어부의 그물에 걸린 주꾸미가 청자를 끌어안고 올라와 대대적인 발굴작업이 진행되었다.


신안 앞바다의 보물선 이야기는 1990년 KBS에서 <검생이의 달>이라는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이 드라마는 검산마을에서 발에 채이듯이 흔하던 유물을 둘러 싼 마을 주민들의 갈등과 욕망을 픽션으로 그렸다.


2014년 윤태호 작가는 다음웹툰에 <파인>을 연재한다. <파인>은 도굴꾼의 이야기다. 2025년 8월 글로벌OTT 디즈니플러스가 류승룡 배우를 주연으로 드라마 <파인>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검생이의 달>과 <파인> 모두 작중 배경에 천일염전이 등장한다. <검생이의 달>에서는 등장인물이 소금밭에서 일하는 장면도 나오고, <파인>에서는 훔쳐낸 유물을 소금창고에 보관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이야기가 미디어콘텐츠로 만들어지면 대체로 그 이야기는 종결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파인 웹툰이 종료된 뒤인, 2019년 대전에서 신안 보물선 유물을 도굴해 40년동안 보관하고 있던 사람이 입건된다. H씨는 집안어른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우겼으나, 지인 중에 이미 신안보물선 도굴로 처벌받은 사람들이 있는 것과 당시 출토된 유물과 유사한 점이 발견되었다. 그는 1983년부터 숨겨왔는데 당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 해외로 밀반출 할 생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브런치 17_3.jpg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송-원대 문화재_한국정책방송원 공유마당


신안 보물선에서 발굴된 문화재는 약 2만 3천 5백점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90%정도가 수장고에 있고, 증도의 해저유물 체험관, 신안선 발굴기념관에 일부 전시돼 있다.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보관돼 있다.


신안 보물선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

신안 증도 앞바다에는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과 유물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 수 없다.





※ 참고문헌/사진 자료


- 1976년 매일경제 기사

- 1976년 경향신문 기사

- 한국정책방송원/공유마당




작가의 이전글16. 태평소금 공장 방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