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나 작가
부엌에 소금 없는 집 없다는 건 그만큼 소금을 구하기 쉽다는 얘기다. 특히 한국처럼 배달문화가 발전한 곳은 당장 내일 아침에도, 또는 한 두시간내로도 소금을 배달로 받을 수 있다. 밀집된 도시야 언제 어디서든 물자를 구할 수 있으나 지금도 도서산간지역은 물건을 사는 일이 쉽지 않아 만물상트럭이 생필품을 팔러 다닌다.
단순한 상거래일수도 있지만 공산품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생존의 문제다. 과거 한반도의 유통망은 여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로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소금은 온도와 습도에 취약한데다가 그 무게 또한 상당해 운반이 쉽지 않았다.
옛날엔 소금을 어떻게 사고 팔았을까?
고려시대에 국가가 통제하는 전매제도를 확립한 뒤, 소금은 계속 국가가 관리해왔다. 조선시대에는 소금을 생산하는 염호(소금생산자)에게 일정부분 세금을 내게 하고 유통은 알아서 하게 두었다. 다만 폭리를 취하거나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감독하는 것도 국가의 일이었다.
천일염이 없던 시절 해안가에서 굽거나 끓여 만드는 자염이었던 한국의 소금을 내륙지방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소금장수들의 몫이었다. 소금 장수들은 나라의 허가를 받아 소금을 팔러 다녔다. 주로 수도인 한양에서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마포나루로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생산한 소금이 들어왔다. 특히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소금은 수산물을 유통하는데 중요한 재료였다. 한양이야 동빙고와 서빙고에서 얼음을 보관해 수산물을 보관하는데 사용했지만 전라도를 비롯한 남쪽 지역은 얼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연히 염장이나 보관 기술이 발전했다. 안동 간고등어나 부안의 젓갈이 발달한 것, 반건조 생선 등이 대표적이다. 서해안은 조기는 소금간을 해서 굴비로, 새우는 젓갈로, 동해안 명태는 건어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암염이 없는 한국의 특성상 산간벽지의 삶을 상상해보자, 소금장수가 오지 않는다면 소금을 먹을 수 없고, 소금이 없으면 음식을 만들 수 없고, 필요한 염분을 섭취할 수 없다. 소금 장수는 비가 오면 이동할 수 없고 너무 덥거나 추워도 이동할 수 없다. 소금장수는 마치 천일염전의 염부처럼 하늘의 뜻에 따라 오가게 된다. 민간에서는 소금장수가 신통한 능력이 있어 소금을 녹이지 않고 멀리까지 운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소금장수의 능력은 몇 가지 구비설화에 남아있다.
소금 장수는 오래된 소금지게 막대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 막대기는 선친에게 받은 것인데 신통한 능력이 있어 애지중지했다. 막대기에는 날씨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었다. 오직 막대기주인인 소금장수만 막대기에서 날씨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금장수가 막대기를 그윽한 눈으로 보다가 “곧 비가 오겠구만.”, “오늘은 날씨가 맑겠어.” 하는 것을 보고 신기한 나머지 그에게 물었다. “날씨를 어찌 그렇게 기가 막히게 맞추시오?” 소금장수는 이내 막대기를 어루만지며 “바로 이놈이 알려주지요”라고 대답했다.
하루는 방이 나붙었다. 왕비가 큰 병에 걸렸는데 이 병을 고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소금장수가 그 방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소금장수를 추천했다. “이 소금장수가 날씨를 기가 막히게 맞추는데,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소. 소금장수가 병도 고칠 수 있을 것 아니오!” 소금장수가 그 말을 듣고 으쓱해 하는 중에 관에서 나온 이들이 이 얘기를 들었다.
“자, 내가 가서 네가 왕비의 병을 고쳐라.” 소금장수는 자신은 병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군졸들은 그를 궁궐로 데리고 갔다.
궁궐에 도착한 소금장수는 어쩔 수 없이 왕비를 살펴봐야 했는데, 척 보니 왕비는 그저 뱀에 물린 것이었다. 소금장수는 시치미를 뚝 떼고, 제상에게 말했다.
“산신령이 노한 게 분명하오. 내가 날씨를 맞추는 이유를 아시오? 그것이 다 산에서 내려오는 기운이오.
내가 잘 아는 산신령이 있으니 가서 좀 빌어보고 오리다.”
소금장수는 자기가 제사를 지내는 산이 따로 있다며 휘적휘적 궁궐을 벗어나 가장 가까운 산에 올랐다. 소금장수의 발바닥이 물컹해서 보니 뱀이었다. ‘이노무 뱀! 너로구나. 왕비를 물더니 나까지 무느냐. 왕비가 일어나지 못하면 나는 죽은 목숨인데 이를 어찌할꼬.’
소금장수는 뱀을 떼어내다가 뱀을 훅 밟아버렸다. 행여나 이 영물을 해쳤다가 더 나쁜 일이 닥칠까 두려워졌다. 옷고름을 찢어 뱀의 상처를 묶었다. 뱀독이 올라 끙끙앓던 소금장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그 뱀이 약초를 물고 있었다. 소금장수는 한달음에 궁궐로 갔고, 왕비는 약초를 먹고 병이 나았다. 소금장수는 나라에서 큰 상을 받았다.
이렇듯 소금장수는 신묘한 능력으로 여러 구비설화에 등장한다.
대표적인 소금장수 설화에는 여우 퇴치설화도 있다. 소금장수가 먼 길을 가다가 묘지 옆에서 잠이 들었다. 설핏 잠이 깬 소금장수는 묘지 옆에서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하는 장면을 본다. 소금장수는 호기심에 여우를 따라 마을로 내려간다. 마을에는 마침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소금장수는 저놈의 요망한 여우를 때려잡아야겠다 생각하고 마을사람들에게 신기한 것을 보여주겠다고 으스댄다. 그는 가지고 있던 소금지게 막대기로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를 내려치고, 여우는 쓰러지며 본 모습을 되찾는다. 여우가 죽자 마을사람이 그를 칭송하며 잔치를 이어간다.
이 이야기는 한국의 구비설화에서 여우는 요망한 것, 나쁜 것, 불운 등을 상징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에 반해 소금장수는 신성하고 용감하며 정을 물리치는 존재가 된다. 이처럼 소금장수는 신성한 것을 몰고 오는 사람이었다. 부정한 것을 내쫓고 마을과 사람들에게 안정을 주는 존재였다. 물론 이러한 설화 외에도 소금장수를 개인의 욕망을 해결해주는 이방인으로 설정하거나, 귀신의 원한을 풀어주는 등 수십 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
소금장수는 전국의 산간벽지를 떠돌아다니다 보니 들은 것, 본 것, 겪은 것 많았다. 한 곳에 머물러 농사만 짓던 이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인생과 자연의 섭리를 알고 있었다. 오늘날 천일염전에서 습도와 온도, 바람을 알아차리는 염부, 소금장인처럼 그들만 아는 것이 있었다.
소금장수 설화 연구자들은 말한다. 소금이 부패를 막고 음식의 성분을 바꿔내는 것처럼 민중은 소금과 소금장수를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심지어 ‘토정 이지함 선생도 비범한 사람이지만 소금장수만 못하다’는 평가마저 생겼다. 가혹한 수탈과 폭정, 전쟁, 전염병에 시달리던 민중들에게, 소금장수는 부패와 부정을 막아주는 소금장수는 의인이자 비범한 해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