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 작가
홍신애의 하루는 주방에서 시작해서 주방으로 끝난다. 그에게 요리는 삶의 방식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다. 단순히 배를 채우고 식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요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원하는 맛과 기쁨을 창조한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요소가 모여 요리가 완성되죠. 재료와 재료가,
조미료가 서로의 맛을 끌어내며 완벽하게 어울리길 바라죠.
사람들은 종종 그에게 좋은 재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대부분은 ‘비싼 것, 깨끗한 것, 유명한 산지의 재료’를 떠올린다. 하지만 홍신애는 좋은 재료란 ‘원하는 맛을 정확히 구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은 밭에서 꼬부라져 자란 오이일 때도 있고 한여름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낸 알 작은 토마토일 수도 있다. 섬세하게 고른 재료는 단순히 맛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요리에 이야기를 더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제철은 달력상의 시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홍신애에게 ‘제철’은 재료가 가장 맛있고 생기 가득한 순간이다. 여름에는 맛이 없어 시금치를 먹지 않았고, 김치를 절일 때 소금을 뿌리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혔다. 토마토라면 8월의 셋째 주, 옥수수라면 풋내가 사라지고 알이 꽉 들어차는 순간이다. 그때 수확해 쪄 먹는 옥수수가 제철이다. 햇빛과 바람과 비가 맞아떨어진 절대적 시기, 그때의 재료만이 홍신애의 요리에 들어갈 수 있다. 재료마다 절대적 순간이 있는데 그는 그것을 알아차린다.
저는 셰프가 되려고 먹어온 것 같아요. 어릴 때 먹었던 음식 맛을 알기 위해
애썼어요. 평생 먹어 왔던 많은 음식 모두.
제철을 아는 것은 셰프의 본능이며 동시에 훈련이다. 그 순간을 놓치면 값비싼 재료도 무의미하다. 요리는 그가 원하는 맛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었다. 남들이 만들어준 맛의 기준이 아니고 단순히 맛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저 맛을 탐닉한다. 원하는 맛을 찾기 위해 기꺼이 평생을 걸어가는 집요한 에너지. 애써 찾아가는 맛이 아니라 원하는 맛이 자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다고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엄마가 끓여준 국, 여름방학 때 쪄 먹던 옥수수, 친구들과 양푼에 비벼 먹던 소고기 고추장 비빔밥은 모두 ‘좋은 맛’을 향한 기억이자 탐색의 기록이었다.
그가 살펴 고른 재료의 맛을 끌어올리는 것이 소금이다. 사람들은 소금을 단순히 짠맛의 도구로 생각하지만 소금은 그 이상이다. 단백질을 분해해 감칠맛을 끌어올리고 재료의 본래 풍미를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홍신애의 주방에는 항상 일곱 가지 이상의 소금이 준비돼 있다. 오늘은 3년 묵은 토판염을 쓰고 내일은 갓 만들어진 햇소금을 쓴다. 어떤 날은 굵은 소금으로 국물을 낸다.
소금 맛은 늘 변한다. 햇빛이 강한 해에 만든 소금과 흐린 해에 만든 소금 맛이 다르고 바람의 방향과 갯벌의 상태, 해수의 온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홍신애는 음식에 필요한 다양한 소금을 모으고 맛을 기억한다. 그 기억은 나중에 빈 맛을 채워 넣을 때 쓰인다.
소금이 부족하면 맛이 허전하고 지나치면 풍미가 죽잖아요. 맛의 포인트를 정확히 조준하는 게 소금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매번 홍신애는 주저앉아 새로운 소금의 맛을 본다. 머리로 기억하고, 혀로 확인하고, 손으로 맞춘다. 맛을 ‘채운다’라는 행위가 그의 요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먹어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건강한 요리를 고집하는 이유를 질문 받곤 한다. 태어나서 1년도 버티기 어렵다는 아이를 키우며 건강 요리에 관한 관심이 생겼다. 그는 아이를 살리려고 요리를 시작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쌀의 힘이었다. 백미를 곱게 갈아 먹여도 토하기만 하던 아이가 섬유질이 남아 있는 현미를 빻아 먹이자 탈 없이 소화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홍신애는 ‘좋은 재료’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배웠다. 그것은 홍신애를 건강한 요리로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좋은 것을 먹으며 자랐어요. 우리 집은 손님이 많았고, 엄마와 할머니는 늘 최고의 음식을 준비했어요. 김치 담그기 전날 소금을 햇볕에 말려야 한다는 사실을 저는 어릴 때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런 지식은 그냥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익힌 거죠. 지금도 저는 소금을 입자 별로, 쓰임 별로 나눠 쓰고, 김치를 담글 때도 두 번 절여요.”
홍신애가 식당 이름을 ‘솔트(SALT)’라고 지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의 요리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물, 불, 소금, 쌀 중에서도 소금은 더 특별하다. 가장 기본적이고 동시에 가장 변화무쌍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처음 식당을 열고 음식을 팔기 시작했을 때는 힘들었다. 최상의 재료를 쓰고 발효 간장으로 국물을 냈지만 손님들은 "소금을 더 넣어 달라"고 했다. 사실 그들이 원하는 맛은 소금 맛이 아니라 화학조미료 맛이었다. 홍신애는 그때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잘못 요리하고 있다는 자책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손님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의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왔고 재료 본연의 맛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손님들이 다시 찾아와 전골을 먹고 감탄하며 돌아간다. 홍신애는 그 순간에 다시 한 번 내가 왜 요리를 하는지 확인했다.
홍신애는 돈을 벌기 위해 재료를 포기하는 순간, 자신이 지키고 싶은 맛도 함께 잃는다고 생각한다. 비싼 소금, 좋은 간장, 토종 흑돼지를 포기하지 않는 대신 사치품을 사지 않는다. 그것은 요리에 대한 자존심이자 삶의 방식이다. 어쩌면 요리는 기후와 가장 가까운 친구일지 모른다. 오늘의 날씨, 올해의 바람, 비의 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홍신애는 자신이 내고 싶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농부에게 전화를 걸고 재료를 부탁한다. 자연농법으로 자란 재료는 수확량이 적고 값이 비싸지만 그 재료가 아니면 홍신애가 원하는 맛을 낼 수 없다. 그 과정에서 그는 늘 자연과 대화한다. 때로는 비 오는 냄새를 맡으며 염전에서 바람의 방향을 읽는 장인들처럼 오늘의 맛을 상상한다.
“소금은 유통기한이 없어요. 대신 맛의 전성기가 있죠. 갓 만든 소금이 줄 수 있는 신선한 떫은맛, 몇 년 묵힌 소금이 주는 깊은 맛, 모든 소금의 시간과 두께가 요리 안에 들어갑니다. 어떤 날은 사과에 소금을 살짝 뿌려 단맛을 끌어올리고, 또 어떤 날은 구운 가재와 새우에 묵힌 토판염을 쓰죠.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은 그날 날씨와 재료와 소금의 상태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요. 저에게 제철 소금이란 이렇게 극치의 맛을 끌어내는 마법의 물질이죠.”
그는 미래 요리가 로봇으로 완전히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요리는 머리와 가슴과 혀가 동시에 작동하는 일이다. 소금 한 꼬집의 양을 정하는 것은 손끝이 아니라 머릿속의 기억과 경험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손맛’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손맛은 손에서 나오지 않고 결국 사람의 삶에서 나온다는 믿음이 있다.
“저는 여전히 작은 식당에서, 여전히 여러 가지 소금을 쓰며, 제철을 기다립니다. 세상이 효율과 속도를 말할 때 저는 느림을 택합니다. 그것이 저의 저항이며 계속 요리를 하는 이유입니다. 소금 한 줌으로 완성되는 맛, 그 맛의 깊이를 느끼기 위해 나는 내일도 주방에 설 테니까요.”
홍신애는 자신의 요리가 세상의 순리에 어긋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순순한 마음에서 완성된 요리, 그것을 먹는 이가 평온을 느낀다면, 소중한 무언가를 채운다면 그 힘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슬픔과 고난을 털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기운찬 뒷모습에서 그는 무한한 행복을 얻는다.
빛이 있고 홍신애가 있다. 그는 이 세상에 소금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