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 작가
기후 조건이 나빠져서 소금 생산이 줄어든다면. 소금값이 급격하게 오르고 구하기가 어려워진다면, 결국 소금 생산이 사라진다면. 겨우 잠깐 생각했는데도 우울한 기분이 든다. 물론 기후 위기는 소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직접,간접 삶을 위협하는 갖가지 일들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중이다.
인류 역사를 바꿔온 거대한 사건은 언제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에 있었다. 불씨 하나로 문명이 시작되었거나 곡식 한 톨에서 출발해 도시가 세워진 사실들. 소금 한 알도 인류의 생존과 문명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소금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하지만 사라진다면 우리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중요한 조건이다.
소금은 단순히 음식 맛을 내는 양념이 아니다. 인간의 생리적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전해질이다. 체액 균형을 잡고 신경 신호를 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인체라는 복잡한 생명 시스템을 지탱하는 숨은 기둥이다.
역사 속에서도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었다. 고대 로마 군인들이 받던 급여 ‘살라리움(Salarium)’은 소금에서 비롯된 단어다. 화폐와 같은 가치를 지니며 제국의 팽창과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현대 사회에서도 소금의 역할은 여전히 지대하다. 식품 보존과 가공, 제설, 의약품 제조, 석유 정제, 화학 공업 등 산업 전반을 지탱하는 기초 자원이다. 소금은 인간의 몸을 유지하는 동시에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는 핵심 에너지다. 인류 문명의 발전 뒤에는 늘 소금이 있었던 셈이다.
인천과 강화도에서 충남 당진, 전남 신안까지 이어지는 염전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해 천일염 생산의 최적지로 꼽혀왔다. 바닷물이 깨끗하고 미네랄과 무기질이 풍부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국산 천일염을 생산한다. 하지만 최근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이 환경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급격한 기후 변화는 소금 생산량 감소에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기 때문에 일정한 날씨와 기후 조건에 크게 의존한다. 장마철 집중호우가 늘어나면 염전의 바닷물이 희석되고 염도가 낮아져 생산 효율이 떨어진다. 갑작스러운 폭우가 염전 구조물이나 소금 결정판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많은 것은 소금 생산에는 좋은 환경이지만 최근 폭염은 좋은 일조량을 넘어섰다. 치솟는 온도로 인해 작업자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는다. 또 바닷물 온도에도 영향을 준다. 바닷물 온도에 따라 염도가 변화한다. 온도가 높아지면 미생물 번식도 활발해진다. 아무래도 소금 품질 변화도 크다.
기후 변화로 인해 폭염과 폭우뿐 아니라 가뭄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비가 적게 내려 염전 구조물이나 결정판에 영향을 덜 주니 소금 생산도 높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가뭄으로 인해 바닷물 유입이 제한된다. 그러면 생산량 자체가 줄어든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기후는 염전의 안정성을 무너뜨리고 소금 생산량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또한 해양 오염도 소금의 안전성을 위협한다. 바닷물에서 길러지는 소금은 해양 생태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바다는 이미 미세플라스틱, 중금속, 석유 유출, 각종 화학 물질로 오염되어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먹는 식탁 소금 속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된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소금이라는 생명 자원이 더 이상 순수한 결정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날씨 변화는 인간의 영역일 수 없지만 해양 오염은 오로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다.
해수면 상승은 전통적 염전 지역을 직접 위협한다. 낮은 지대에 위치한 많은 염전은 바닷물에 잠길 위험에 놓여 있다. 만약 해수면이 계속 상승한다면 인류가 수천 년간 이어온 전통적인 소금 생산 방식을 더는 지속할 수 없을지 모른다.
대한염업조합에 따르면 경기 연안 염전 면적이 지난 9년 사이 축구장 119개 규모가 사라졌다고 한다. 같은 기간 생산량도 45% 가까이 줄었고 기습 폭우나 폭염이 잦아 생산 적기를 맞추는 어려움도 큰 몫을 했다. 생산량을 넘어 이제는 염전을 지켜내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기상은 계속 불규칙해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금은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지금은 소금의 풍요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기후 위기가 어떤 미래를 만들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천일염 생산량 감소는 가격 불안정과 공급 부족 현상 발생시킨다. 품질이 저하로 인해 소비자 신뢰도 하락, 수입산 소금 의존도도 증가한다. 악순환이지만 이로 인해 염전 종사자들의 생계도 위협당하게 되며 이는 전통 염전의 유지와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은 소금조차 기후 위기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무심히 흩뿌리는 하얀 알갱이에도 지구의 기후 위기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염전을 친환경적으로 관리하고, 오염된 바닷물을 정화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공업용 소금 생산 과정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기술 전환도 필요하다. 기후 조건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실내 증발 시스템이나 태양열을 활용한 대체 방식도 연구되고 있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된다.
소금은 작은 결정이지만 기후 위기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소금을 통해 우리는 인간과 자연, 기후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소금 한 알 속에 담긴 바다와 태양, 바람의 흔적을 느낀다면 우리는 기후 위기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금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까지 당연한 것이 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지금 이 순간 두렵게 자각해야 한다. 모든 것이 우리 의지에 달려 있음을, 그래서 무거운 각오가 필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소금을 지키는 일은 결국 인간의 삶과 지구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실행해야한다. 어서 서두르자.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