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환 작가
매머드와 미라
인류 문명은 소금과 함께 발전해왔다.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소금을 찾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길이 생겼고, 그 길을 통해 소금 무역이 이루어졌다. 소금을 팔기 위해 시장이 생겼고, 사람이 몰리면서 도시가 형성되었다. 소금을 중심으로 고대 문명이 시작되었다.
소금은 세계사를 바꿀 정도로 중요한 물질이었다. 생존과 생활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다 보니 금에 버금갈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쉽게 갖기 어렵다 보니 이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다. 소금 때문에 전쟁이 벌어졌고, 과중한 세금을 견디다 못해 항쟁이 일어났다. 소금은 권력이자 재력이었다.
이집트와 할슈타트 미라
빙하기 유라시아 대초원에 매머드 무리가 떠돈다. 이 무리 주위를 원시 인류가 어른거린다. 매머드는 단순한 먹이감이 아니라 인류 생존을 결정짓는 원천이었다. 최근 연구들은 1만3천년 전 클로비스(선사시대) 사람들이 식생활의 대부분을 매머드와 같은 거대 동물에 의존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인류는 매머드의 피와 살, 뼈와 가죽으로 목숨을 이어갔다.
동물의 생존에서 소금은 빠질 수 없다. 많은 초식동물이 먼 길을 걸어 소금이 포함된 토양, 소금 샘, 미네랄 오아시스를 찾아갔다. 매머드 역시 소금을 찾아 이동했고, 이들의 이동 경로는 인류 초기 정착지와 겹친다. 숲과 초원의 언저리, 육지와 습지의 경계엔 언제나 소금의 흔적이 뚜렷했다. 고대 인류는 사냥한 식량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냈다. 동물의 살코기를 찬물 속이나 진흙, 혹은 소금이 섞인 땅에 묻어 부패를 늦췄다. 소금은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해 식량을 장기 저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인류가 소금을 다양하게 활용했다는 최초의 증거는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발견된다. 나일강이 가뭄으로 마르면 강바닥에 소금 침전물이 생겼는데 이집트인들은 이를 ‘나트론’이라 불렀다. 염화나트륨(NaCl)은 여기서 유래한 명칭이다. 이집트 땅에는 소금이 많았다. 강과 호수, 바다와 바위에 염분이 풍부했다. 염장기술도 발전해서 절인 육류와 물고기를 유럽과 중동지역에 수출했다.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환생한다고 믿었기에 시신을 썩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내장을 꺼낸 시신에 헝겊에 싼 소금을 채워 넣고, 시신 전체를 ‘나트론’에 묻었다. 40일이 지나 수분이 빠진 시신을 꺼내 기름과 송진에 절인 붕대를 감아 관에 넣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라는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1573년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소금광산에서 온전하게 보전된 남자 미라와 곡괭이가 발견되었다. 연구결과 기원전 400년경 소금을 채굴하던 켈트족 광부가 광산이 붕괴되면서 그대로 묻힌 것으로 나타났다. 켈트족은 기원전 600년경 다양한 소금 생산 방법을 개발하고 활용했다. 자연 증발법, 끓임법, 광산법 등을 통해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발전을 이루었다. 소금을 통해 성장한 켈트족은 철로 만든 무기로 유럽대륙을 정복했다. 로마는 무려 40년 동안 켈트족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켈트족은 ‘갈리아’라고도 불렸는데, ‘갈’은 그리스어로 소금을 뜻했다.
로마 또한 소금으로 성장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로마는 기원전 3세기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2세기 중엽 지중해를 통일하면 고대 서양에서 가장 큰 제국으로 성장한다. 이처럼 강대한 제국도 처음에는 작은 소금시장에서 출발했다. 소금의 정치, 경제적 가치를 잘 알고 있던 로마는 다른 민족을 침략하면서 반드시 염전을 장악했는데. 여기서 생산한 소금을 로마로 운반했다. 이 길이 소금길, ‘비아 살라리아’다.
사하라 사막과 이슬람 문명
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에는 낙타를 타고 오가는 상인들이 있었다. 사하라 사막은 중세 아프리카 문명의 경제와 문화 교류를 연결하는 거대한 무역로였다. 그 중심에 소금 무역이 있었다.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는 타우데니(Taoudenni) 소금 광산이 있었고, 타가자(Taghaza) 또한 중요한 소금 채굴 중심지였다. 이 소금을 수천 마리의 낙타가 줄지어 수천 킬로미터를 오가며 벽돌 모양의 소금을 날랐다.
소금은 남쪽의 왕국들(가나 왕국, 말리 제국, 송가이 제국)에서 금, 상아, 노예, 곡물과 교환되었다. 대표적인 무역의 중심 도시는 팀북투(Timbuktu)와 가오(Gao)였는데, 이곳을 통해 이슬람 문화와 학문이 아프리카 내륙에 깊숙이 전파되었다. 13~16세기, 말리 제국과 송가이 제국의 번영기 동안 팀북투는 사하라 무역의 요충지로 성장한다. 금과 소금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왕국은 학자들을 초청하고 이슬람 도서관이자 교육기관(마드라사)을 세운다.
사하라 소금 무역은 단순한 상거래가 아니라 남북 아프리카를 연결하고, 서아프리카 문명의 번영을 만든 동맥이었다. 소금 덕분에 서아프리카 왕국들이 부를 축적하고, 학문·종교·문화가 발전했던 것이다. 소금은 생명이 생존하기 어려운 극한에 사막에도 문명을 꽃피웠다. 소금은 서양문명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단순히 식재료를 넘어 문화와 경제, 종교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고대 로마가 강성한 제국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재정적 원천이었고, 유럽 전역의 교역로 형성에도 기여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에 소금을 국가가 독점하거나 과세 대상이었고, 이로 인해 잦은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종교적으로 순수함과 불멸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신앙인의 자세와 역할을 의미하기도 했다.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소금은 음식 보존에 필수적이었다. 햄, 소시지, 절인 생선이나 올리브 등 유럽의 전통 음식 발달에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이처럼 소금은 경제적 교역 자원, 정치적 권력 수단, 종교와 문화의 상징으로 서양문명을 움직이는 숨은 원동력이었다.
※ 참고문헌
<문명과 역사를 만든 소금 이야기> 사계절, 2012
<물질의 세계> 인풀루엔셜,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