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소금의 사계절

주은 작가

염전의 사계


소금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면 야트막한 산 밑 증도의 집들이 보인다. 균일하게 규격화된 염전과 인근의 시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뜻밖의 감정을 불러온다. 시끄럽던 마음이 고요해지는 신비. 소금 만드는 일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바람을 느끼고 풍광을 마음에 그릴 수 있는 여유. 단순히 일터가 아닌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소중한 장소다.


소금의 경로

7Z2A0302aa.jpg 태평염전 낙조전망대에서 바라본 염전 모습_photo by 박여선 작가


염전은 알지만 소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구체적으로 아는 이는 드물다. 마트에서 발견하는 흔한 조미료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오래 힘든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지 알게 된다면, 사라져가는 식문화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진심을 다 바쳐 소금을 묵묵히 소금을 만드는지 안다면 좀 특별한 재료로 여겨지지 않을까. 천일염전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으면 좋겠다. 소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단순한 생산지가 아니라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이 모여 일구는 삶의 터전임을 알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까.


바다에서 유입되는 해수는 수로를 따라 염전 근처 저수지에 고인다. 이는 염전에서 생산될 소금을 위한 바닷물이다. 좋은 소금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햇볕, 바람, 바닷물, 그리고 갯벌. 이 중 어느 하나라도 균형이 깨지면 좋은 소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장 맛있는 소금은 대개 5월 중순에서 8월 사이에 만들어진다. 송화가루가 날리기 시작할 즈음 바람이 적당하고 햇볕이 강하지만 너무 뜨겁지 않은 시기 함수가 잘 농축되고, 결정지의 소금꽃이 가장 투명하게 피어난다.


비가 오면 소금은 단숨에 녹아버리고 햇볕이 강하면 탁해진다. 그래서 생산자들은 예민하게 날씨를 살핀다. 첫 번째 수확한 소금에 대한 애정이 큰데 아무래도 자연이 주는 첫 결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손바닥에 갓 수확한 소금을 올렸을 때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따뜻하고 투명한 햇살이 소금 결정에 스며들어 있는 느낌. 입안에 넣으면 짠맛 느껴지는 묘한 단맛. 여름의 시간과 사람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봄에는 곧 생산을 시작하게 될 염전의 작업 준비로 바쁜 시기다. ‘호흡’ 같은 계절이다. 겨울 동안 굳어 있던 땅을 갈아엎고, 갈라진 둑을 보수하고, 소금 창고를 청소한다. 소금 생산이 잘 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바닷물을 끌어올려 함수를 만드는 준비도 이때 이루어진다. 바쁘게 움직이는 환경 속에서 염전의 주변은 녹색의 식물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염생식물원, 증발지 등에는 삐비꽃의 하얀 물결이 바람에 흔들린다.


브런치_31편.jpg 낙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태평염전의 염생식물원_photo by 박여선 작가


봄의 증도는 소금이 만들어지기 전의 여름의 화려함이나 가을의 붉은 물결은 없지만 염전이 조금씩 깨어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염전 사람들이 분주해진다. 따뜻한 봄바람이 갯벌 위를 지나면 사람들은 그 바람을 따라 움직인다.


여름의 증도는 눈부시게 하얗다. 본격적으로 소금이 자라고 생산하는 때라 힘들고 바쁘다. 덥지만 천일염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점이다. 태양은 염전 위로 무자비할 만큼 쏟아지고, 공기는 뜨겁고, 바람은 소금 냄새를 실어 나른다. 사람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햇볕 아래에서 일한다. 피부는 거칠어지고 까맣게 그을리지만 결정지 안에서 소금꽃이 하얗게 피어나는 걸 보면서 모든 수고를 잊는다.


소금 생산의 핵심은 ‘결정지’다. 함수(바닷물을 농축하여 소금 결정지에 투입하는 물)가 고이고 햇빛과 바람을 만나면 소금 결정이 자란다. 이때 바람이 너무 약하면 함수가 마르지 않고 햇볕이 강하면 소금이 탁해진다. 반대로 바람이 거세면 함수가 증발하면서 좋은 소금이 만들어진다. 모든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만 맑고 단단한 소금꽃이 피어난다.


결정지에 들어가 소금을 걷는 일은 단순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다. 무릎까지 물에 잠긴 채 삽으로 소금을 모으고 무거운 짐을 지게에 실어 옮겨야 한다. 소금이 산처럼 쌓일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함 대신 묘한 뿌듯함이 스며든다. 햇빛 아래 사비지땀을 흘리는 사람들과 간간이 부는 뜨거운 바닷바람. 소금이 섞여 만들어낸 여름의 풍경이 환하게 빛난다.


브런치_31편_01.jpg 계절이 완성한 소금_photo by 박여선 작가


소금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라 자연이 길러낸 결실이다. 바람이 있고 햇볕이 있고 갯벌과 함수가 있다. 모든 조건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므로 여름 염전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내는 거대한 들판이다.


기후가 불안하면 소금도 흔들린다


가을이 오면 염전의 공기는 다시 달라진다. 여름 내내 뜨겁게 달궈졌던 염전은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바람은 선선해지며, 햇살도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가을은 좋은 소금의 생산이 끝나간다. 예전에는 가을까지 소금을 생산했지만 지금은 품질 저하 때문에 생산을 중단한다. 햇빛의 세기가 약해지고 일교차가 커지면 소금에 쓴맛이 생기기 때문이다.


생산은 멈췄지만 염전은 여전히 살아 있다. 염생식물원에는 붉은색이 짙게 물들고, 그 위로 가을 햇살이 내려앉아 따뜻한 색의 물결을 만든다. 많은 관광객이 이 시기에 증도를 찾는다. 그만큼 가을 염전은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생산자들에게 가을은 한숨 돌리는 시간이다. 여름 동안 쌓아놓은 소금을 창고에서 외부로 출하하고, 다음 해를 위한 계획을 세운다. 여름에는 숨 가쁘게 돌아가던 염전이 잠시 쉼표를 찍는 시기다.


염생식물원의 가을 전경_태평염전 제공


겨울에는 염전을 보수한다. 사방이 뚫려 매서운 바람이 불지만 지난 일년간 생산했던 증발지의 갯벌이 썩거나 망가지지 않도록 갈아엎고 다지는 작업을 진행한다. 갯벌 생물로 인해 구멍이 난 둑과 염전을 보수하고 정리한다. 그동안 사용했던 함수를 다시 만들고 함수 창고에 쌓인 갯벌을 제거하는 등 많은 업무를 한다. 한해의 소금 생산을 결정지을 준비 작업을 겨울부터 시작하여 봄까지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겨울 염전은 춥고 황량해 보이지만 다음 해 소금 생산을 위한 ‘기초 작업’을 하는 계절이다.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는 시기다.


요즘 소금 생산에서 가장 큰 걱정은 기후 변화다. 예전보다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 날이 많아졌고, 햇볕은 더 뜨겁고 강해졌다. 여름의 폭우는 결정지에 고여 있던 함수와 소금을 한순간에 녹여버리고, 뜨거운 햇빛만 내리쬐면 소금의 품질이 떨어진다.


소금 생산은 자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작업이다. 기후가 흔들리면 생산량도 품질도 흔들린다. 염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대응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살아가는 법, 변하지 않는 소금의 본질을 생각하며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한 줌의 기적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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