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
우리 기억 속의 소금
아주 오래 전, 증도에 가서 나는 특별한 들꽃을 보았다. 들꽃이되 바다에 핀 꽃, 소금 꽃. 그 꽃이 어딘가 낯익다 했었다. 바로 트라파니에서 본 소금 꽃이었다. 트라파니는 이탈리아의 섬 시칠리아의 서쪽에 있는 도시. 소금꽃이 피는 낮은 평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을 현지에서는 ‘살리네 디 트라파니’라고 불렀다. 소금밭의 도시 트라파니란 뜻이었다. 소금밭은 뜻밖에도 도시 가까이 있었다. 나는 시내의 한 민박에 묵었다. 도시는 반짝이는 포도(鋪道)에 먼지 한 점 없었다. 옛날, 아랍 사람들이 건설한 지역이었다. 푸르고 희고 녹색의 빛이 가득한 이국적 도시였다. 마침 그 무렵, 시내에서 마피아들의 총격전이 있었지만 도시에서 긴장감은 보이지 않았었다. 민박집 사내는 차를 몰아 소금밭으로 안내했다. 소금이 거칠게 구석구석 봉긋하게 솟아 있었다.
아주 특별한 들꽃
그 아래, 막 바닷물이 마른 평평한 밭에 꽃이 있었다. “Fior di sale(피오르 디 살레)” 직역하면, 소금의 꽃이다. 이것이 프랑스 게랑드 지역에서도 똑같이 소금 꽃이라고 불린다. 꽃은 가장 정수, 정화(精華)라는 뜻이다. 아름다우니 빛난다. 한 점 씹어보았다. 크리스털을 쪼개 놓은 것 같은 모양이 바사삭 달게 부서졌다. 특별한 소금이라고 하지만, 소금 꽃의 맛은 한국이나 비슷했다. 증도의 바다로 갔다. 증도의 기억은 특이하게도 며칠이 지나면서 증발해버리고, 내 뇌리에는 반짝이는 소금 결정처럼 이미지만 선명하게 반짝인다. 크리스털처럼 단단하게 박혀 있다. 그때의 순간을 끄집어낸다. 소금밭은 하늘과 이분 경계를 이루며 시야에 들어온다. 코발트블루라고 했던가, 숨이 막힌다. 염부들은 써레질을 한다. 그들은 구도자처럼 보인다.
한 줌의 소금도 허투루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듯 쓸어모으기를 반복한다. 근육 외에 그들은 아무 것도 몸에 남겨두지 않는 것 같다. 청동빛으로 달궈진 종아리가 태양을 반사하는 소금물에 반사되어 번들거린다. 육체의 힘 말고, 그 어떤 잡념이 있으랴. 노동하는 자들에게는 누구나 경외를 표시해야 하는데, 이 소금밭에서는 종종 종교적 존중이 필요하리라. 나도 역시 고개를 숙여 그들에게 인사했다. 요리할 때 소금은 마구 버려질 때도 있다. 소금은 종종 물이나 공기에 비유된다. 소중하되 귀한지 모르는 인간의 천격을 나무라는 비유다. 소금밭의 노동을 보라고 권유한다. 소금의 귀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내 주방에는 여러 가지 소금이 있다. 트라파니의 천일염 옆에는 우리 서해의 소금이 있다. 그 시린 짠맛을 볼 때마다 나는 염부의 근육을 생각한다. 증도 소금, 태평염전의 밭에는 소금이 영근다. 나는 안내를 받아 잘 정리된 공간을 두루 돌았다. 어쩌면 이 공간이 아직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기적 같은 일이다. ‘돈 안 되는’ 소금밭을 부여안고 살아온 이들은 누구일까. 이 갯벌과 밭에 트럭을 동원하여 뭍의 흙을 쏟아붓고 경지를 만들지 않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저 옆으로는 간척이 많이 진행됐지요. 일제강점기에 이미 있었던 일입니다.” 그렇구나.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려는 인간의 고려는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렇게 우리 바다의 구불구불한 해안은 직선으로 메워졌다. 그래서 억척스레 남아 있는 증도의 소금밭이 다행스럽다.
다시 트라파니 소금밭으로 간다. 이 지역 소금은 증도 태평염전의 토판염 밭처럼 소금을 얻는다. 우리가 자염을 만들었듯이, 이탈리아의 원형인 로마시대에도 자염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트라파니의 천일염은 더 귀한 것이었고, 지금도 옛 시대의 흔적을 남겨 놓고 있다. 고대 페니키아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지중해 염전 문화의 핵심지다.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일정한 해풍, 그리고 낮은 해안선이라는 세 조건이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곳. 사람들은 이곳의 자연 조건을 이용해, 기계 한 대 없이 순전히 태양과 바람만으로 소금을 얻는다. 우리가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염부들이 어깨로 밀어낸 소금을 식탁에서 우리가 써왔듯이, 이탈리아 사람들은 트라파니 소금을 쓴다.
염전은 산업이자 생태계
이 두 동네의 소금은 만드는 과정도 판박이다. 봄 늦게 작업이 시작된다. 해안의 넓은 웅덩이에 바닷물을 들여보내고, 조심스럽게 물길을 조정한다. 바람이 수면을 훑고 지나가면 물 위에는 미세한 파문이 일고, 시간과 햇빛이 그것을 서서히 농축시킨다. 6월이 되면 첫 결정이 떠오르고, 8월이면 소금밭은 하얀 눈밭처럼 변한다. 이 모든 과정은 오로지 인간의 손과 감각에 의존한다. 수위를 맞추는 나무 문을 여닫는 각도, 물이 옮겨가는 속도, 햇빛의 강도, 심지어 구름의 움직임까지가 작업의 일부다. 천일염에서는 단순히 짠맛이 전부가 아니다. 요리의 맛에 입체적 질감을 주는 미네랄이 그 역할을 떠맡는다. 일반 소금보다 훨씬 섬세한 맛을 지닌다. 강한 짠맛 대신 미묘한 단맛과 미네랄 감각이 느껴진다.
트라파니의 염전에는 지금도 붉은 지붕의 풍차가 서 있다. 과거에는 풍차가 물을 끌어올리고, 증발지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증도에는 수차가 있다. 둘의 또다른 공통점은, 이제 사용하지 않은 역사 유물이라는 것이다. 소금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소금밭의 과거를 보여주는 중요한 학습자료다.
수확기가 되면 염전은 거대한 백색 산맥처럼 변한다. 노동자들이 삽으로 모은 소금을 작은 언덕처럼 쌓고, 그 위를 점토 타일로 덮는다. 비바람이 닿으면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이 타일 덮개는 소금을 보호하는 동시에, 먼 미래를 기다리는 표식이 된다. 다음 세대의 장인이 그것을 다시 벗기고 새로운 바람을 맞이한다. 태평염전에서는 이 과정이 더 길다. 언제든 비가 올 수 있는 자연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창고에 옮긴 소금은 가공장으로 옮겨 선별하고 세척하고 숙성하는 섬세한 과정이 더 필요하다. 우리가 만나는 태평염전의 소금은 그렇게 탄생한다.
트라파니의 소금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시칠리아 수출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대량생산의 시대가 오면서 전통 염전은 급격히 사라졌다. 1960년대에는 30곳이 넘던 염전이 이제는 몇 곳 남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한국과 그리 비슷한다. 염전은 산업 시설인 동시에 살아있는 생태계다.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남긴 미네랄은 미생물과 조류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철새들은 이 물길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한다. 소금을 만드는 일은 동시에 생명을 이어주는 일이다. 우리가 요리를 해서 사람을 먹이고, 인류를 이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증도 소금밭을 지켜야 할 이유다.
다시 트라파니에 갈 수 있을까. 최근 증도의 소금밭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바다는 우주가 다 이어져 있고, 그래서 소금의 맛도 서로 형제처럼 닮아 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불끈 그 먼 소금밭에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 다시 소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