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한국 천일염의 역사_고려

이하나 작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들에게 소금이 어디서 올까요? 물으면 대부분 ‘바다’라고 대답한다. 한국인들에게는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의 풍경이 익숙하다. 뜨거운 땡볕 아래 작열하는 아지랑이, 갯벌에 펼쳐진 너른 소금밭, 부지런히 오가는 염부들, 소금밭에 반짝이는 빛들, 더욱 하얗게 빛나는 소금산. 소금에 대해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바로 염전이다. 가보지는 않았어도 소금은 염전에서 오는 것으로, 소금은 당연히 바다에서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바닷물을 가두어 자연스럽게 햇빛에 말려 불순물을 정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천일염이다. 그럼 모든 소금은 천일염이고 모두 바다에서 올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천일염은 전세계 공통의 생산물이 아니다.

현재 천일염을 생산하는 국가는 중국, 미국, 인도, 호주, 독일, 칠레, 멕시코, 캐나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칼 등이고, ‘게랑드소금’으로 알려진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천일염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기후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 강렬한 햇빛이다. 햇빛이 강하고 뜨거울수록 바닷물이 빨리 마르고 소금의 결정이 잘 만들어진다. 한국에서는 보통 4월에서 10월 사이에 대부분의 소금이 생산되는데 장마가 시작되기 전 한달과 끝난 시기 한두달 간에 생산량이 집중된다.


두 번째는 바람이다. 바깥에 빨래를 말릴 때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바람이 불어야 한다. 바람이 약하지도, 지나치게 강하지도 않게, 습도가 적어 건조하다 싶을 때 소금이 잘 만들어진다. 온도가 높고, 습도가 낮은 고온저습한 환경이 좋다. 비가 많이 오면 소금결정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장마가 길거나, 태풍이 잦으면 생산량이 줄어든다. 지리적인 여건도 중요하다.


쉽게 이해할 수 있듯이 첫 번째는 깨끗한 바다다. 오염이 적고, 갯벌이 넓어야 미네랄도 풍부하다. 한국은 전남 신안, 영광, 무안 등의 서남해안의 갯벌이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해안선이 완만하지만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바닷물을 염전에 끌어들이기 좋다. 또한 깨끗한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염전 주변에 논과 밭, 축사는 없어야 한다. 농업과 축산업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완전히 정화하기 어렵다고 본다. 청정한 자연환경만이 소금을 만드는데 중요한 조건이다.


2024년의 경우 국내 최대 천일염 생산지인 신안군은 9월까지만 소금을 생산했다. 10월부터는 햇빛이 줄어들 때 소금을 만들면 나트륨함량이 높아져 소금이 쓰고 딱딱해진다. 염전에서는 이걸 고질염이라고 부르고 품질이 낮은 소금으로 평가한다. 신안군은 한국 천일염 생산량의 82%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의 천일염 생산지다. 그렇다면 천일염이 나지 않는 나라는 어떻게 소금을 얻을까.


보통 가장 많은 방법은 암염광산을 채굴하는 것이다. 지하에는 고대의 바닷물이 증발해 생긴 소금층이 있는데 이 소금층을 파악해 암염을 깬다. 이 암염을 계속 깎아내면서 이 속에 있는 소금을 캐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네랄을 같이 얻기도 한다.


두 번째는 뽑아내는 방법이다. 앞서 말한 암염층에 물을 넣어서 소금을 녹인다. 소금물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소금물을 말리는 기계를 사용해 소금을 얻는다.


세 번째는 사해나 우유니 소금사막과 같이 염분이 높은 호수에서 물을 길어 내륙에 염전과 같은 연못을 만들고 바람으로 증발시킨다. 이 방식은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아야 해서, 이스라엘이나 요르단, 볼리비아, 중국의 내륙지방이나 미국의 유타주와 같은 곳에서 가능하다.


바다가 없는 곳은 소금이 섞인 샘물이나 바닷물을 대형 용기에 넣고 불로 끓여서 물을 날려버리고 소금을 얻는다. 이를 끓일 자를 써서 자염(煮鹽)이라고 한다. 현대로 넘어와서는 큰 공장에서 다양한 곳에서 채취한 소금물을 진공 상태에서 빠르게 증발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주로 정제염과 산업용 소금을 만드는 방법이다.

그림1.jpg 터키의 소금광산

한국도 처음부터 천일염 방식으로 소금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소금채취 방식은 자염이었다. 화염(火鹽)이라고도 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 생산법으로 알려졌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미천왕 때의 기록에 “왕이 젊었을 때 소금 장사를 하며 망명 생활을 하였다.”라고 쓰여 있다. <삼국유사>에는 ‘소금 장수 사위를 보았다’라는 기록도 보인다. 이 자염의 생산방식은 원나라의 방식이라고 하는데, 원나라는 그 이전인 송나라의 생산방식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원나라의 소금 제조법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이 매우 짠 흙을 채취해 큰 더미를 만들고, 그 위에 물을 부어 흙을 통과하게 해서 염수가 되도록 한다. 이 염수가 관으로 흘러가게 해서 모은 뒤 커다란 금속 솥에 넣고 끓인다’는 것이다. 마르코폴로는 이 소금이 희고, 고우며, 질이 좋다고 평가했다. 마르코폴로의 이 기록은 서양권 기록 중 가장 정확하다고 인정받는다.


자염생산 재현모습(AI 이미지)

자염은 끓이는 과정에서 미네랄이 농축되어 소금의 풍미와 영양이 뛰어나고 대규모 설비가 없어도 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장작을 계속 때는 등 연료를 써야 하기 때문에 환경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작업 자체가 고되고 힘들지만, 생산량은 적다. 물론 기술의 발달로 현대에 와서는 자염방식을 기계화와 자동화로 전환했지만 대규모 개발이 따라붙게 되어 토지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즉 효율과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천일염은 인공적인 힘을 쓰지 않고 햇빛과 바람으로만 증발시키는 것이다. 조건을 갖춘 해안가가 있다면 자연에너지를 활용해 얼마든지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갯벌과 바다에서 나오는 미네랄 성분도 고스란히 축적되어 만드는 데 드는 품과 비용에 비해 성과가 좋다. 천일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깨끗한 바다가 필요해, 청정해역 유지를 위해 노력하니 환경적 측면으로도 긍정적이다.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을 쓴 유승훈은 고려의 충렬왕이 원나라에 볼모로 잡힌 사이 원나라의 소금관리법을 보고 배워와 고려에 적용한 것으로 본다. 충렬왕 시기 고려는 재정이 부족하고 국가 체제가 많이 흔들렸다. 소금에 대한 제도가 중구난방인 것을 알게 된 충렬왕은 각 지역의 소금 생산자를 점검하고 소금세를 걷기 시작했다. 처음 징수를 시작한 이후 9년이 지난 충렬왕 14년에, 소금의 생산과 유통에 대해 국가가 통제하도록 했다. 곧이어 경상, 전라, 충청등의 소금 생산지에서 염세별감이라는 소금세 감독관을 파견해 직접 세금을 걷게 했다.


충렬왕 시기에는 소금의 가격을 국가가 정하고 소금을 사려면 국가가 지정한 창고에서만 살 수 있도록 제도를 정립했다. 그러나 소금이 필요한 사람은 정해진 곳에서만 소금을 사야 하고, 소금을 팔아야 하는 사람은 세금을 내게 되었으니, 소금세를 책임진 관료는 부패하고 백성들은 소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다만, 소금유통을 장악하던 지방의 호족과 권력층이 이익을 중앙정부가 회수하여, 통제력이 회복되는 영향이 있었다.






※ 참고/사진 자료

우리역사넷 (한국학중앙연구원) /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 (유승훈) / Marco Polo Was in China: New Evidence from Currencies, Salts and Revenues (2012, Hans Ulrich Vogel)


작가의 이전글01. 세상의 기본, 어디에나 있는 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