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 흉내 내기
불편함이 불편함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
열심을 내느라 땀방울 송골송골
치열하게 살아내는 그들의 일상 속으로..
넓은 들판 한가운데 덩그마니
세찬 바람에 봄을 찾으며
날마다 소풍
세 시간의 일감에
하루를 다 담고
내려오는 눈 치뜨며 독서 삼매경
에너지 만들 시간 필요해
'I' 형 인간의 생활공간 IN-SIDE
때론 묻혀 있고 싶은 요즘
모이토 4월 토론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토론을 마치니
겸허하고 묵직한 마음이 되었다.
과학은 어려워도 읽다 보면 어찌어찌 알아가는데 인문학은 더 어렵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가야 하니 나의 한계는 코앞이다.
글을 쓸 수 없어서, 쓸 수 있는 글을 쓰셨단다. (p67)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세 줄로 된 글로 채워가고 있으셨다는 스승 이어령.
스승 흉내 내기. 그 러 나
토론 시간 15분 전, 흉내도 낼 수 없어서 세 줄짜리 네 개를 쓰니 '내 하루'가 되었다.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라고 하시며,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셨는데 마음에 닿은 것은, 애잔함, 경건함, 천재로 살아오신 스승의 외로움, 쓸쓸함, 스승의 고독이 내게로 전해졌다.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서 더 외로웠고 차라리 그 외로움을 즐기며 일을 일로 생각하지 않고 즐기며 하셨다는 스승 이어령.
많은 것들 중에 찌르르하게 가슴에 남는 이야기는..
"글 쓰고 후회하고 또 쓰고 후회하고, 책 나올 때마다 후회한다고 내가."
-이런 대가도 글 쓰고 후회하는데, 일개 나 같은 사람이 후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하잖아.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라네. 그래서 일관 되게 얘기하는 것은 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니라는 거야. 까마귀 소리나 깜깜한 어둠이나 세계의 끝, 어스름 황혼이 아니지."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지. 장미 밭 한복판에 죽음이 있어. 세계의 한복판에. 생의 가장 화려한 한가운데.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야. 고향이지."
"선생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미소 지으며)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p293)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있는 것들의 힘이야."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p294)
( 출처:어어령의 마지막수업)
다 읽었어도 쉽게 놓아지지 않는다.
다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