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래전 이야기긴 하다. 7년 전이었으니~
그래도 내겐 특별한 시간이었고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기에 정리해 보고자 한다.
당연히 내 느낌대로 써보려고 한다.
물리적 사실들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난 그저 내 감성이 이끄는대로...
딸이 대학교 3학년부터 휴학하고 KOICA 봉사 프로그램으로 2년간 외국에 다녀올 기회가 있다며 신청을 하겠다고 했다. 더 나이 들면 기회도 없고 못할 수도 있으니 마음먹었을 때 다녀온단다.
몇 개월을 준비하며 태권도 5단까지 마스터 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딸은 출국만 기다리고 있었다.
말린다고 들을 딸이 아닌 걸 알고 있으니 잘 다녀오라고 기도하며 보냈었다.
원하는 지역은, 부전공으로 스페인어를 했었고, 태권도 평화봉사단에서 우루과이에 한 달간 다녀오기도 해서 그곳으로 가고 싶어 했지만, 아프리카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5시간 거리에 있는, 태권도 불모지라는 도시,
동부주 음발레’군으로 파견되었다. 예전에 영연방이었던 곳이어서 영국식 영어를 사용한단다.
헉!! 그렇게나 먼 곳으로?! 너무 어렵게 느껴졌지만 딸은 망설임이 없었다.
일 년쯤 후, 오빠 결혼식 때 휴가 내고 한 달간 다녀갔었고, 그 후에도, 각자 다른 일을 하는 동료들은 있었지만 혼자 생활하며 저 보다 더 큰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딸은 처음 도착해서 적응 기간 이 주일 동안 홈스테이 가정에 배치되고, 혼자 살 집 알아보고, 계약하고, KOIKA 사무실로 봉사 요청 들어온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만나 어떻게 진행할 지에 대해 브리핑하고, 교실 확보하고, 태권도장으로 꾸미는 인테리어도, 일일이 다 바닥 매트부터 벽 페인트까지 직접 다 준비해 놓고, 학생 모집에서 필요한 물품 구입까지 해서 잘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바쁘게 열심히 살았어도 낯선 곳에서 늘 집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는지, -당연히 있었겠지-
기간이 끝나갈 즈음에 계속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 왔다 가라~ 나 있을 때 왔다 가면 좋잖아. 따로 숙소 정할 필요도 없고~”
“엄마! 나 들어올 때 같이 들어오게 한 달 전에 오면 좋은데~”
“언제 아프리카를 와 보겠어~ 와라~ 엄마!”
“생각해 볼게”라고만 몇 번을 말했는지.
‘참내! 엄마 맞아?!’
매일 야근하고 들어와서 저녁 먹는 여보도 걱정되고, 그렇게 피곤하게 일하고 들어온 여보가 콩콩이, 가루를 잘 돌볼지도 걱정되었다. 집안 꼴은 어떻게 될지?! 이미 내가 근종 제거 수술로 병원에 입원했던 일주일 간 집안 꼴은 정말 엉망으로 변해 있었던 걸 아는지라 온통 걱정거리만 떠올라서 결정하기가 참 힘들었다. 또 당진 이사 온 후, 내 허리가 엉망이어서, 잘 버텨낼 지도 걱정되었다. 사실은 가게 될까 싶어 미리 시술도 받았고, 재활도 열심히 했었지만 괜히 딸한테 짐이나 되지 않을까도 걱정되었다.
딸은 “엄마 없어도 아빠가 다 잘하겠지~”
여보도 “내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내가 알아서 살고 있을게~ 주말 부부도 했었는데 뭘 못 하겠어~ 당신 몸만 괜찮으면 딸이 그렇게 오라고 하는데~ 다녀와~”
쓸데없는 걱정 한다고 다들 어찌나 삐질, 삐질 땀나게 뭐라 하던지.
내가 생각해도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같아서,
“그래 알았어! 갈게”
드디어 결정을 했다.
‘
그래 가보자! 어린 딸도 가 있는데 뭐! 가서 같이 오자!! 죽기야 하겠어?!’
가자고 마음을 먹고 나니 오히려 편안했다.
딸이 비행기표 예매해서 보내주고, 필요한 절차를 다 알려줘서 출국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그렇게 그렇게 내 58년 인생의 첫 해외여행을 혼자 출국해서 아프리카 우간다로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