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젊었던 시절,
부모님은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셨다.
결혼할 때 집을 얻는 문제도, 부동산 복비와 서비스 범위를 따지는 일도,
이삿짐 하나까지 다 부모님의 영역이었다.
나는 그저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무늬만 어른이었을 뿐.
육아가 시작된 뒤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기저귀 가는 법, 아기 목욕시키기조차 친정엄마가 없었다면 감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부모님도 달라졌다.
예전엔 뭐든 해내시던 분들이었는데,
이제는 할 수 없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특히 스마트 기기와 비대면 업무가 일상화되면서
부모님의 활동 영역은 줄어들었고,
그만큼 내가 대신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 하나일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부모님의 자잘한 부탁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둘째가 태어나자, 내가 가진 시간은 반의 반으로 쪼개졌다. 그때부터 엄마의 사소한 요구들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엄마는 원래 시장을 직접 보시던 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게 말했다.
“쿠팡으로 사는 게 더 싸네. 네가 좀 대신시켜 줄래?”
처음엔 괜찮았다.
내 물건 살 때 같이 사면되고, 캐시백도 쌓이니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누적되다 보니 점점 귀찮고 피곤한 일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필품을 시키고, 돈을 다시 정산받는 과정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엄마, 내가 핸드폰에 쿠팡 어플 깔아줄게.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만 하면 돼.”
“그래? 해줄래?”
엄마는 흔쾌히 동의하셨고, 덕분에 나는 휴지나 케첩 같은 사소한 주문에서 조금은 해방됐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있었다.
바로 의류 쇼핑.
나는 예전부터 온라인 쇼핑을 좋아했고, 부모님 마음에 드는 옷을 잘 골랐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나는
엄마의 ‘퍼스널 쇼퍼’가 되었다.
문제는 내 옷, 남편 옷, 아이들 옷까지 챙기다 보니
일이 네 배로 늘어난 상황에서,
엄마의 요구는 점점 세밀해졌다.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길이,
넥은 깊이 안 파이고,
분홍색인데 너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예쁜 분홍색 있잖아."
“이건 어때?”
“뒤가 안 가려져서 불편해.”
“이건요?”
“팔이 너무 길어.”
“그럼 이건?”
“어머! 너무 비싸. 그냥 입을 건데 좀 더 싼 거 없니?”
“……그냥, 엄마가 찾아서 링크를 보내.”
“링크 어떻게 보내는데?”
결국 엄마에게 링크 보내는 법까지 알려드렸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다.
옷을 고르면서 사이즈나 색상을 빼먹고 보낸다든지,
66이라 해놓고 막상 들어가면
품절이거나 사이즈 체계가 다른 경우였다.
내가 꼬치꼬치 물으면 “센스 없는 딸”이 되고,
알아서 시켰다가 틀리면 “무능한 딸”이 된다.
“제발 꼼꼼하게 보고 보내줘.”
“알았어. 이년아, 엄마 눈 아파. 오래 못 봐.”
“나도 아프거든!!”
엄마 눈이 건조해 안과에 자주 가신다는 걸 잘 알지만,
나도 엄마를 닮아서 눈이 시큰거렸다.
그런데 왜 나는 늘 ‘참아야 하는 쪽’이어야 할까.
그리고 결국, 그날.
어느 때처럼 출근해 일을 하고 있는데,
지이잉~
“핑크, 66.”
링크와 함께 온 메시지.
퇴근 후 보내도 될 걸, 왜 꼭 내가 일할 때 보내는 걸까.
그래도 혹여 품절될까 싶어 급히 결제한다.
퇴근 후 아이들 밥까지 먹이고 한숨 좀 돌릴까 싶으면 다시
지이잉~지이잉~
“화이트, 105.”
이번엔 아빠 옷이다.
대체 어디 다니시려고 이렇게 옷을 많이 필요로 하시는 건지…
그래도 은퇴 후 적적해하는 아빠가 후줄근하게 다니시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다니시는 게 낫겠다 싶어 말없이 결제한다.
그런데 다음 날,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웃고 떠드는 시간.
어김없이 울리는 핸드폰.
지이잉~지이잉~
“체크 7부 바지, M.”
‘하 … 진짜..’
육아와 업무에서 해방된 잠깐의 시간조차 나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엄마에게 나는 언제든 말만 하면 알아서 대령하는 비서인가?
나는 집에 가자마자 엄마 핸드폰을 찾아 아무 말 없이
쇼핑몰 어플을 깔고, 회원가입을 했다. 그리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이제 엄마가 직접 해. 여기 눌러서 장바구니에 담고.”
“알았어. 근데 결제는 어떻게 해?”
“여기서 이걸 누르고…”
엄마는 순순히 나의 설명을 들었다. 드디어 내 역할에서 조금 벗어나는가 싶어 뒤를 도는데, 등뒤로 엄마의 한마디가 나를 찌른다.
“아유, 자식 키워봤자 다 소용없어.
이게 뭐라고 귀찮다고. 이년이.”
“엄마, 왜 욕을 해!! 내가 일부러 그러나?
나도 회사에서 일하고 애 키우면서 힘들어!!
그런데 엄마가 며칠을 연속 보내니까
진짜 숨이 막히잖아!! “
“에이~그거야 그냥 생각나서 보낸 거지.
꼭 급한 건 아니야.”
“급한 게 아니면 왜 일하는 데 보내는데?!!”
“그냥 보낸 거라니까.”
“그럼 나 만나서 얘기하라고.
일할 때, 친구 만날 때 그렇게 꼭 보내야 해?!!”
말싸움은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 밥상에 놓인 된장찌개와 계란말이를 보니 눈물이 났다.
엄마는 여전히 무늬만 어른인 나를 위해 밑반찬을 해주셨다.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늘 채워주셨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왔다.
그게 귀찮음으로만 남을 때도 있었다.
내 말은 논리적으로는 맞았다.
하지만 엄마는 단순히 ‘생각나서’ 보냈을 뿐,
큰 부담을 지우려던 건 아니었다.
그저 떠오르는 순간 내게 통보했을 뿐이다.
한때는 나도 효녀 소리를 들었다.
결혼 전, 취업을 하면서 부모님께 생활비도 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각종 집안 물건들을 바꿔드리면서 친척들에게 자랑하는 그런 착하고 대견한 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잘한 부탁도 귀찮다고 투덜대는,
그래서 엄마를 더 늙고 섭섭하게 하는 불효한 딸이 되었다.
“어머니가 나이 드셔서 그래, 당신이 이해해.
우리 각자 부모님께 잘하자.
상대방 부모님께 아무리 잘해봤자 소용없어.
내 자식이 나한테 잘해야 그게 가장 큰 행복이야.
안 그래? 우리도 자식 생기니까 알겠잖아.
내 자식이 나한테 자주 연락하고 살가운 말 하면
얼마나 좋아.”
아이러니하게도 시어머니와 전화하는 무뚝뚝한 남편을 보면 내가 종종 하는 말이다.
세상 착한 며느리처럼,
세상 현명한 부인처럼,
타인에게는 공감하고 이해심을 발휘하면서,
나의 부모님께는 세상 옹졸하고 날카롭다.
아마 이제 나의 ‘오리지널 가족’이
아이들과 남편으로 옮겨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은 어느새 ‘두 번째 가족’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그러나 분명한 건,
나를 귀찮게 하는 나이 든 엄마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기억하는,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내 가족이라는 것.
나 또한 여전히 엄마가 사랑하는 딸이라는 사실.
효녀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효녀는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본다.
"엄마 미안해.. 아까 내가"
문자를 쓰고 있는데,
지이잉~지이잉
“수연아, 울 딸 참 효녀인데…
엄마가 잘 알면서도 자꾸 욱한다.
나이 드니 마음이 좁아지나 봐.
늘 후회하면서 또 그랬네.
미안해. 사랑해♡”
엄마의 메시지를 읽는데,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아이가 내게 조금만 퉁명스럽게 말해도,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서운한 마음의 소리가 흘러넘치곤 했다.
우리 엄마는 그때 어땠을까..
효녀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러나 엄마 앞에서 짜증 내는 딸도,
미안하다며 문자를 쓰는 딸도 결국 나였다.
그리고 엄마는 여전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변함없다.
♡ 글을 읽는 여러분도 혹시 비슷한 경험 있으신가요?
특히 엄마와 딸 사이라면, 다들 조금씩은 이런 애증의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