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남편과 나의 소리 없는 전쟁이 또 시작된다.
잠이 덜 깬 채 아이들 아침을 챙기다 보면 정신이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몽롱하다.
어서 다시 침대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래도 간신히 아이들의 요구에 맞춰 아침을 차려주다 보면,
나는 늘 식탁 바로 위 불 대신 싱크대 쪽 불을 켜곤 했다.
아침 햇살이 아직 완전히 환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칠흑같이 어두운 것도 아니었다.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먹을 수 있고, 오히려 은은해서 좋았다.
눈도 안 시리고, 자연스럽게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
게다가 우리 집 채광이 아주 뛰어나진 않아도,
어둠 속에서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었다.
아이들의 소리에 억지로 깬 남편은 이미 짜증이 한가득 올라와 있다.
내 눈에는 은은한 아침인데, 남편 눈에는 동굴 속의 아침으로 보였나 보다.
졸린 눈으로 식탁 곁에 서자마자, 아무 말도 없이 불을
‘탁!’ 켜버린다.
아이들은 괜찮아 보이는데, 나는 그 순간 정말 놀란다.
누군가 곤히 자고 있는데 갑자기 불 켜서 확 깨운 기분이랄까.
심지어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부탁도 안 했는데,
‘탁!’ 켜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남편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불 안 켜도 충분하거든. 자연광이면 됐어.”
“어둡잖아.”
“아침부터 누가 저 불을 켜. 눈 부셔 죽겠는데!”
탁.
그리고 남편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아니, 아이들이 어둡다고 했나?
내가 불을 켜달라고 했나?
다 괜찮다는데 왜 굳이?
그것도 식사 준비를 돕지도 않은 사람이?
이 전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몇 번이나 차분하게도 말해봤다.
짜증 섞어서도 말해봤다.
내가 왜 불을 안 켜는지 설명도 해줬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다.
“알았어.”
“알았어. 다시 끄면 되지?”
그러고 나서 또
탁.
한 집에서 산다는 건 서로 맞추고 양보해야 하는 일임을 잘 알지만,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싸워야 하나 싶다.
조명의 세기 하나 맞추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어느 날은 이런다.
“알았어. 앞으로 절대 불 안 켤게. 당신이 알아서 해.”
그런데 이런 말은 언제나 선언에 그친다.
기껏해야 일주일? 다시 원위치다.
게다가 그 동안은 내가 더 눈치를 본다.
해가 구름에 가려졌다가 다시 나오면,
혹시 저 사람 말대로 너무 어두운데 내가 불을 안 켜나 싶어 조마조마했다.
불빛 전쟁은 그렇게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시작됐다.
아이들이 밥을 먹고 있는데, 남편이 슬쩍 다가와서
탁.
“불 왜 켜! 괜찮다고 했잖!”
탁.
남편은 내 말을 끊고 방으로 들어간다.
이 전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생각해보면,
우리 둘만 살았을 때는 괜찮았다.
주말 아침은 늘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이사 오기 전의 우리집은 조명이 이렇게 밝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는 늦잠은 꿈도 못 꾸게 하는 어린 아이들이 있고,
새로 이사 온 집의 조명은 모두 최신식 LED등이다.
내게는 너무 밝은 세기다.
주방에 은은한 조명 하나만 있었어도,
이렇게 싸울 일이 없었을까?
생각해 보면 불빛 말고도 이런 사소한 전쟁은 많다.
오래된 수건은 걸레라고 몇 번을 말해도,
여전히 수건이라고 생각하고 욕실에 걸어둔다.
매번 알았다고는 한다.
인덕션 위 좀 닦으라고 하면,
매번 알았다면서 그대로 둔다.
깜박했다는 말도 이쯤 되면 반복되는 패턴.
나는 결국 또 소리친다.
“그거 진짜 병이다. 병! 도대체 입력이 왜 안 돼?!”
이제 와 생각하면 이건 불빛 문제가 아니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도 불빛 때문이 아니라,
내 말이 제대로 존중받지 않는다는 기분 때문이다.
애들도 불편해하지 않는데, 왜 굳이 본인 기준만 앞세우는 걸까.
남편은 “알았다” 하고 돌아서지만,
그건 진짜 이해했다는 뜻이 아니라 대화를 끝내려는 말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반복되는 사소한 전쟁 속에서 늘 같은 답답함을 느낀다.
결국 문제는 불빛이 아니라,
내 기준과 감정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서운함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돌아보면,
남편도 나처럼 자기 기준의 편안함을 찾았을 뿐이다.
그는 밝은 빛에서 안정을 느끼고,
나는 은은한 어둠에서 안정을 느낀다.
나는 자연광처럼 은은한 불빛으로
서서히 하루를 시작하는 타입이라면,
남편은 일어나면 바로 불을 켜고 움직이는 쪽이다.
단순히 ‘불빛’의 취향 차이가 아니라,
아침에 몸과 마음을 깨우는 속도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이다.
그저 다를 뿐인데, 나는 늘 ‘내 방식이 맞다’고 주장해온 건 아닐까.
아마 이 글 읽으시는 분들 중에도,
사소한 것 때문에 몇 번이고 같은 잔소리를 하다 결국 폭발한 경험, 있지 않나요?
그럴 때 화나는 게,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불빛 전쟁을 통해 다름과 존중을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