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없어야 감동이 배가 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넘친다.
내 첫남친은 소위 말하는 스윗한 사람이었다.
다정하고 자상한,
나의 감성적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던 사람.
내가 연애하면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채워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노랫소리,
뜬금없는 동화 각색 이야기까지
언제나 불평 없이 해주었다.
그런 것에 익숙해진 나는 남편과의 연애에서
적잖이 고비를 맞았다.
나의 요구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남편에게 번번이 막히자 실망이 쌓였다.
그리고 그의 사랑마저 의심하게 되었다.
“얘가 날 사랑하는 게 맞아?”
“이런 것도 안 해주는데?”
“대체 언제쯤 그냥 해줄 수 있는거야?”
자기 전 달콤한 언어를 속삭이던 그 시절,
노래 한 곡만 불러달라고 해도 남편은 난색을 표했다.
가사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유가 주된 레퍼토리였다.
노래방에서는 잘만 부르면서, 전화로는 끝내 불러주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음료처럼
사랑의 노래가 쉽게 나오던 과거와 달리,
남편은 그 노래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노래 한 곡조차 불러주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는 곧 사랑의 지표였다.
그렇게 기대가 점점 사라지고,
사랑의 언어는 침묵했다.
나는 그를 이해하기 보다는
나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모습에 서글펐다.
미움보다는 서러움이 더 정확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점차 전화기 너머로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혼자 끝내버렸다.
헤어지자.
짧은 말로 이별을 고하고
여러 달간 그의 연락을 무시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다시 시작해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매일 아침 문자를 보내고, 받지 않는 전화도 했다.
그래서일까.
예전에 우리가 함께 썼던 일기가 생각나 찾아 보았다.
그곳에는 헤어진 후에도 여전히 그가 혼자
써 내려간 일기가 쌓여 있었다.
하나씩 읽어보며, 표현하지 못했던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꿈을 꾸었다.
그와 내가 영영 헤어지는 꿈.
다음 날,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잘 지내?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게 맞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가끔씩 전화기를 꺼놓고 공부했던 내게
불평도 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조심스러운 시간들이었다.
어느 날 전화기를 켜니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있었다.
“공부하는 것 같아서..집 앞에 쿠키랑 작은 거 놓고가.
시간이 없어서 기다리지는 못했어. 담주에는 꼭 보자.”
20분 전에 온 문자. 이미 역에 도착했을 시간.
나는 급히 전화를 걸었다.
“왔으면 얼굴은 보고 가야지, 그냥 가면 어떡해?
연락도 안 되는데, 왜 여기까지 와?”
"미안해.."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화가 났다.
그의 집은 물건만 두고 갈 정도로
우리집과 가깝지 않았다.
오히려 연애를 하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서로 만나기 위해 오고 가는 시간이
너무 길어 안타까울 정도로.
그걸 알기에, 그 먼 거리를
연락도 안 되는 사람을 위해
그냥 왔다는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알면서도
나는 도리어 서운함에 화를 내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서,
작은 카드와 함께 문 앞에 두고 뒤돌아 갔을 사람.
혹시나 하고 전화를 걸었을 사람.
내가 그렇게 눈치를 줘도 안 하던 그였는데,
부끄러워서 못한다던 그 일,
작은 액세서리와 과자가 바구니 안에 있었다.
연애 내내 원했던 감동의 순간이,
한 번 헤어진 후에야 찾아왔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프로포즈를 하지 않아 화가 났던 내게,
말도 안 통하는 신혼여행지에서
초를 사고 편지를 써가며 미안함을 전했다.
결혼기념일에는 회사 앞에서 불쑥 나타나
가까운 펜션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이벤트를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하트 촛불과 작은 선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나와 다른 표현법을 가진 사람이었을 뿐이다.
혼자 기대하고 실망했던 20대를 지나자,
이제 나와 같은 시선으로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
여전히 기본결은 다르고,
기대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나를 위해 원하는 것을 해주려 노력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어쩌면 기대가 없어야 감동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대를 맞춰가는 과정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맞춰주려는 노력이
감동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느새
서로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으로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