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내 삶이 제일 중요해서,
어느새 칠십을 바라보는 엄마의 삶은 생각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라면 1도 모르는 딸을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
엄마는 주부니까, 특별히 하는 일이 없으니까, 가까이 사시니까, 첫 손주니까.
내게 편한 이유만을 대면서 내 삶에 엄마를 끌어들이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에 대한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하고 있다는 정당화 역시 있었다.
두 아이를 맡기면서 드리는 월급은 주로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넉넉한 편이었다.
거기에 계절별 옷, 적지만 매달 드리는 용돈, 분기별 여행비, 임플란트비, 에어컨 교체까지.
엄마 집에 큰돈이 들어가는 일은 모두 내가 해드렸다.
아침에 아이들 등원 준비 1시간 남짓.
하원 후 내가 퇴근할 때까지 두 시간.
게다가 남편이 재택 하는 날은 등원 준비도 남편이 돕기에 엄마의 부담은 덜어졌다.
엄마의 하루 근무 시간은 기본 3~4시간.
물론 야근도 있다.
남편이 출근하는 날은 내가 퇴근해도 엄마는 퇴근하시지 못한다. 아이들을 각자 한 명씩 맡아 다른 방에서 재우기 때문이다. 빠르면 9시, 늦으면 9시 30분.
야근 수당은 못 드리지만, 최저시급으로 계산해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생각했다.
가끔 주말에 일이 생겨 아이를 맡겨야 하면 항상 주말근무 수당이라며 농담하고는 했지만, 식비와 수당까지 넉넉히 드렸다.
그 나이에 한 달에 이 정도 수입이면 괜찮은 편이라고, 나는 그렇게 계산했다.
'서로에게 윈윈인 관계지'
훨씬 적게 받거나 혈연이라는 이유로 무보수 노동도 있으니, 나는 이만하면 '최상의 조건'으로 엄마의 삶을 더 여유롭게 해 드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엄마 연세에 어린아이들을 보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안다. 나도 애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화가 나고 지쳤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애 둘도 혼자 키운다는데, 내 친구들이 네 딸은 왜 혼자 못 키우냐고 하더라. 엄마도 편히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네 아빠랑 여행도 다니고 싶은데.."
"엄마, 애들 보는 게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라,
엄마가 힘들어 죽겠다고 하시는 거, 누가 들으면 애를 하루 종일 보는 줄 알겠어! "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은 많았다.
아니 엄마랑 나랑 함께 봐도 이렇게 힘든 걸, 다른 사람이 혼자 애 둘을 키웠다고 하면 '얼마나 힘들었을까'가 먼저 떠올라야 하지 않나. 어떻게 '내 딸은 왜 다른 사람처럼 혼자 못하냐'는 말이 먼저일까.
그렇게 따지자면,
'엄마 내 친구들은 돈도 안 받고 그냥 키워주신대. 너 일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일하라고. 엄마가 도와준다고.'
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려다 꾹 눌러 참는다.
싸우자는 말밖에 안 되니까.
일단은 힘들다는 엄마를 이해하고 달래야지.
그냥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상책이었다.
마음 한편엔 엄마의 피로와 힘듦을 가볍게 여기는 나의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육아가 인생의 중심이 되면서,
나는 엄마의 나이를 잊어버렸다. 40대의 내가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지만 신경 쓰느라, 엄마의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은 '그 나이 돼서 안 아픈 사람은 없다'는 무심한 말로 넘겨 버렸다.
내 몸도 자꾸 고장이 나는데, 여기서 30년을 더 쓴 엄마의 관절과 뼈는 얼마나 무리하고 있을까?
아이 하나는 20킬로가 넘고, 다른 하나는 15킬로.
한 놈은 그나마 순하지만 다른 녀석은 떼쓰기 대장에 고집쟁이(별명이 진상이다.)라 얼마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지 알면서, 매달 엄마한테 쥐어주는 현금과 각종 복지 혜택에 '나는 할 만큼 했다'는 계산이 이미 끝나 있었다.
나는 엄마의 나이에 손주를 볼 수 있을까?
아이들을 다 떠나보내면, 막연하지만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상상하곤 했다.
우리 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
고된 시집살이를 겪으면서 단란한 부부만의 시간을 얼마나 꿈꾸셨을까.
엄마 아빠의 시간이 없다는 말을 나는 매번 허투루 들었다. 애들과 며칠만 붙어 있어도 얼마나 지치고 피곤했던가.
등원하고 돌아서면 하원인데, 엄마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애들 보내고 맛있는 점심도 드시고 커피도 마시면 되지!"
라고 남 말하듯 말했다.
엄마가 힘들어서 사표를 내고 싶다고 하실 때마다,
늙은 딸이 애 둘을 키우며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현실이 얼마나 힘들지 헤아려주시지 않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정당한 보수를 드리고 있다는 나의 산수가 완벽하다 믿었기에 나는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야 안다.
그 모든 게 전부 내 위주의 계산이었음을.
거리에서 단정한 매무새, 정돈된 머리, 곱게 차려입고 여유 있게 걸어가는 노부인을 볼 때마다 ,
육아에 지쳐 꾸미기를 멈춘 우리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우리 엄마도 한 때는 멋을 내고 화장을 하고 외출하던 분이셨는데, 이제는 내 아이를 키우느라 자신을 내려놓고 나의 삶에 기꺼이 편입하셨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크고 고귀한 희생이었는지, 무엇을 포기한 것인지를 계산하지 못했다. 그저 시간당 금액, 보너스, 수당처럼 숫자로 계산하기에 바빴다.
이제는 인정한다.
엄마를 나와 같은 하나의 인간으로 대하기보다는,
나의 삶이 보다 완전해지기 위해 하나의 수단처럼 대했음을.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엄마를 내 삶에 종속시키고, 언제든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힘들어서 가끔은 절뚝이기도 하는 무릎으로
엘리베이터 공사가 진행되는 한 달 동안
아이들 손을 잡고 18층 계단을 오르고 내리시던 모습.
젊은 나도 업지 못하는 아이를 오랫동안 업고 달래시던 모습.
그건 절대 숫자 몇 개를 두드려 계산할 수 없는,
너무나 크고 진한 사랑과 희생이었음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의 삶은 나의 연장선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세계여야 한다.
그것이 다 큰 딸이라면 더더욱.
가끔은 도와주고 서로에게 기댈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자신의 삶을 가장 우선에 두어야 했다.
이제 나는 그 경계를 인정하고,
엄마가 자기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길 바라야 한다.
그것이 진짜 효도라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