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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구마구 Jan 13. 2024

클락스빌, 군부대 근처의 삶은 뭐가 다를까?

많은 한인들과 빠른 결혼연령

미국에 가기 전, 저는 백인과 흑인으로 가득한 곳에서 동양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제 상상 속의 미국 사회에는 아시안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와는 다른 사람들로만 가득할 것 같았습니다. 막상 미국에 도착하니 제 상상과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마트에서 쇼핑을 하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익숙한 한국어가 제 귀로 흘러 들어오고, 길 가다가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괜히 눈길이 가더라고요.



'헉 한국어다!', '오 저분 한국인 같은데..?'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습니다. 낯선 땅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엄청 반갑더라고요. 그렇게 혼자만의 한국인 찾기 챌린지를 하고 있던 중 이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 한국인이 많은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포트캠벨이라는 부대가 있었습니다

혹시 이 동네에 오래 살았던 친구는 알까 싶어 물어보니 "미군 부대가 있잖아!"라고 하더라고요. 그 대답을 들어도 제 궁금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미군 부대가 있는데 그게 한국인이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되물으니 "주한 미군들과 결혼한 한인들이 많이 살아"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간의 궁금증이 사르르 풀렸습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 세대 분들이 꽤 자주 보였던 이유와 한식당, 태권도 학원 등이 1980년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그 한 문장으로 설명되었습니다.




미국 이민의 역사는 1900년대 초반, 노동자들의 이주로 시작되어 미국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사진을 보고 신부를 한국에서 데려오는 '사진신부'라는 제도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새로운 세상을 찾아 많은 한국인이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죠. 이러한 이민의 역사 속에, 저희 동네의 한인들은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주한미군과의 결혼으로 비롯되었던 것이죠.



한국에 주둔해 있는 미군 인구는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 독일에 이어 약 28000여 명으로 전 세계 3위입니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죠.



통계에 따르면 1962-1968년 사이 미국 이주자의 40%는 국제결혼에 따른 이주였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직후, 1900년대 중반에 이주해 온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과, 태권도 학원에는 자연스레 그 시절의 감성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인형들이 있는 식당들이 꽤 있습니다

궁서체 간판, 한복을 입은 인형들을 볼 때면 50년 간의 세월을 저절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군 부대 근처에는 또 어떤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바로 결혼 문화입니다.



미국 시골의 경우,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닙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 나이로 23-25세에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즘의 한국보다 결혼을 빨리 하죠. 그러나 열아홉, 스물에 결혼하는 것은 미국에서도 흔한 일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수다를 떨다 내 친구 남편이~, 내 친구 딸이~라는 말이 나올 때면, 저는 "친구가 벌써 결혼을 했어?"라는 질문을 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너 친구 남편이 군인이야?"라고 물어보더라고요. 남편이 군인이라고 하면 다들 "아~~"라고 수긍하더라고요.



미군들은 결혼 시 집을 주고, 가족에게도 의료보험혜택을 주는 등 어마무시한 혜택 덕분에 스무 살 언저리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어릴 때 결혼하는 만큼 충동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큰 고민 없이 결혼해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혜택을 준다고 해도 저는 스무 살에 결혼을 절대 결심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 친구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며 대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멋있더라고요. 다양성을 존중하는 미국의 문화가 그들을 지지해 주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엄마와 대학생, 두 역할을 함께 해내는 이에게 닿는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으니까요.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부럽다는 것도, 결혼을 늦게 하는 한국이 별로라는 것도 아닙니다. 삶의 다양성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미국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던 시절 용감하게 새로운 땅으로 떠난 이들의 용기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본인의 삶을 꾸려나가는 이들의 용기를 보며 제 자신에게 안전하고 보장되어 있는 길만 걸어가려 했던 건 아닌지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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