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만드는 기억의 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봤다

by 민승연

생일이나 기념일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결국 다 같은 하루 아닌가? 특별할 게 있나 싶다. 어떻게 보면 참 냉소적인 사람이다 싶기도 하다. 누구는 생일을 지나치면 유독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니까. 한 동안 이런 생각이 스쳤다. 사람들이 유독 특정한 날을 기념하거나 남다르게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결국 나를 붙드는 힘을 키우는 게 아닐까 하는 결론을 냈다.

여태까지 살면서 별 일이 없었으면 오히려 축복받은 인생이다 싶을 정도로 사는 건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 궁리를 찾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고 또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들이 참 대단하다. 이렇게 무너지는 하루에도 다시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는 건 무너지던 기억들 사이사이 부대끼며 끼어있는 그날의 작은 좋은 감정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12월 초 받았던 건강검진에서 올해도 역시 우울증 의심 소견을 받았다. 재작년에 이은 2번 째로 받은 성적표라 그런지 별로 놀랍진 않다. 그리고 올해도 마찬가지로 그냥 그대로 흘러갈 것이다. 왜 사나 싶은 마음 반, 그래도 살아야 된다는 마음 반. 그 반반의 마음들이 업치락 뒤치락하면서 어떻게든 살아지긴 하더라. 잘 살고 있다고는 말 못 하지만.

아무튼, 이미 생긴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굳이 새로운 좋은 감정의 기억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그래서 올해 크리스마스를 위해 굳이 안 하던 케이크 예약을 하고, 굳이 한파주의보에 롱패딩을 입고 당일에 찾으러 가서, 굳이 엄마와 함께 케이크를 잘라먹는 기억을 만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기억이 내가 또 무너질 때 나를 붙드는 무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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