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도, 꿈도 없다는 아이들에게

기간제 교사의 교단일기

by 글지안

“탐구과제입니다. 지금 나눠 주는 종이에 학번과 이름, 진로를 적습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수업 외에 해줄 수 있는 건 생활기록부다. 계약 기간 중에 성실하고 꼼꼼하게 관찰해서 수시로 대학 가는 아이들은 진학에 도움을 주고, 학교 생활에 무기력한 아이들은 사기라도 북돋아주자.


단원마다 에세이나 탐구과제를 받고, 특이사항이 있는 학생은 인터뷰를 틈틈이 한다.


“선생님. 저희 탐구 그만하고 싶어요. 다른 과목들도 다 탐구하고 진로 적어내라는데 전 잘하는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꿈이 없어요.”


과제를 열심히 설명하던 펜을 내려놓고 칠판에서 떨어져 나와 잠시 숨을 고른다.


나는 이럴 때가 병원으로 치면 코드블루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주 희망적인 코드 블루.


더 많은 것을 내려놓은 아이들, 이미 우울감으로 빠져든 아이들은 질문이나 불만조차 없기 때문에.
청소년기 우울감의 양상은 성인과 달라, 분노와 불만이 가득찬 학생으로 착각하기 쉽다.


진로가 직업이라 본다면

나도 반쯤 실패한 인생이라,

조언을 해주기가 어렵지만


진로를 행복한 인생이라 여긴다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다.


“얘들아, 선생님도 말이야. 대학에 실패했어. 엄마가 공부하라해서 그저 공부하는 척했고, 사범대 진학하라 해서 사범대 갔지. 대학교에 가서 잠깐은 행복했어. 사범대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라며 다른 과 친구들이 부러워하더라. 그런데 너희 지금 사범대 가고 싶은 애가 몇 명이나 되니?

부모님이 여자는 교사가 최고라니 그저 그런 줄 알고 살았는데, 내가 고민한 진로가 아니라 대학을 다니면서도 고민이 많고 임용고사에 떨어지니 더 고민이 많아지더라.”


아이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눈을 맞춘다.


“나는 고등학교 때 예체능 애들이 그렇게 부럽더라. 입시랑 실기랑 이중부담이니 뭐니 당사자들은 힘들다 해도 진로가 명확한 게 어디야. 미술 안 할 거 아니고, 악기 그만둘 거 아니잖아?


그만큼 선생님도 진로가 참 고민이었고, 그 고민이 30대까진 지속 됐어. 내가 정규직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데 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할까 행복에 초점을 맞추니 관점이 조금 달라졌어. 먼저 나를 잘 알아야 해. 내 적성과 진로를 알라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어떤 것에 화나고, 어떤 것에 행복한지. 그런 것들 말이야.


그러면 너넨 이런 의문이 들지?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취향을 가져야 해.


취향은 어떻게 가질까?”


아무도 대답이 없다.


“책.”


“아…”

국어 선생님에게 속고 말았다는 탄식이 들린다.


“결론이 책이어서 미안하다. 그런데 잘 들어봐. 취향에는 돈이 들어. 선생님 친구 중에 부자가 있어. 나 말고 다 부자 같지만. 캠핑을 가고 싶다더니 어느 날 2억 되는 캠핑카를 사더라? 그리고 작고 예쁜 감성 캠핑 소품들을 샀어. 접이식 우드 테이블 30만 원, 음질 좋은 스피커 100만 원, 캠핑카 침구류, 각종 집기들…”


‘캠핑을 취향으로 가지는 거?

아 나는 못하겠다. 그냥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운동을 해보자’


“필라테스? 좋다!

우선 학원 등록하고, 주 3회 4:1 수업 50만 원, 옷도 있어야지, 세탁해야 하니 2벌은 기본, 하다 보니 폼롤러도 필요하고 운동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 보니 단백질도 보충하네? 그럼 셰이크…”


“어때? 부모님 지원 안 받으면, 부모님이 취향에까지 돈을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도 몇 없지만, 너희 그만큼 돈 있니?

가장 돈 안 드는 취향이 독서야.”



“눈곱만큼이라도 관심이 가는 주제의 책을 빌린다. 재미없어? 그럼 다른 주제!

탐색의 시간을 가져야 해”


“주제 탐색이 끝나면 덕후가 되어봐.

1만 시간의 법칙. 어떤 분야든 1만 시간을 들이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잖니?


“책이고 뭐고 다 싫다. 유튜브라도 봐. BTS 리액션 영상만 열심히 보지 말고, 고양이 좋아해? 그럼 고양이만 파. 그러다 보면 나도 취향이라는 것이 생겨.

흥미가 있음 취향이 생기고, 취향이 쌓이면 적성이 돼.”


별안간 잔소리 끝에

아이들의 막연한 불안이 걷히고, 해야할 것이 조금 선연해지길 바란다.


어른이 되고 나서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가

더이상 부모가 내 고민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물어볼 스승이 없다는 것이었다.


믿고 의지할 스승의 부재.


어른이 되기 전부터 이미 그러한 아이들이 문득 안쓰럽지만

한편으론 이들이 가진 생명력을 믿는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의 독백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평온하고 쓸쓸한 무드에 젖어 가슴이 미어지곤 했다.

"무서운 꿈을 꾸었으냐?"
“슬픈 꿈을 꾸었느냐?"

풀피리를 불 듯 그 질문을 내 입술 바깥으로 밀어내 달싹거려보았다.
인간이 아니라 시간이 주인공인 세계에서 속절없이 미끄러지는 기분이 뜰 때마다, 나는 막막했다. 그리고 그리웠다. 울고 있는 내게 '왜 그리 슬피 우느냐?'고 진지하게 물어주는 이가, 그런 스승이.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프롤로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