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번쩍’하는 한마디

기간제 교사의 교단일기

by 글지안
돌이켜보면 지난 인생은 어떤 말들이 가슴에 깊이 박히던, 그런 섬광 같은 순간들의 ‘연결’이었다.


점심을 혼자 먹고 산책을 하는데 누군가의 잰걸음이 등에 가까워진다.


수학선생님이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다.

아마도 보석 같은 신간을 찾았거나, 저자와의 만남에 다녀오셨거나, 작은 책방에서 귀한 시간을 보내셨겠지.


국어교사라, 책벗들이 나를 말벗으로 삼는다.



“선생님 저는 다시 태어나면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국어과 선생님들만의 그런 언어 직관력이 부럽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하고 싶으신가 보죠? 저는 사범대는 안 갈 겁니다. 하하. 그래도 교사가 된다면 제 희망도 국어교사입니다.”


“어째서요?”


“성숙이 능력이 되는 교과이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암기력은 떨어지는데, 이해력은 넓어져요. 방금 들은 말도 깜빡깜빡하는데, 소설에서 이 인물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지 알 것 같단 말이죠.


그런 면에서 인강도 듣고 풀이법도 늘 연구하시는 수학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살다 온 애들’ 틈에서 외국어로서의 언어를 가르치는 영어 선생님들도 존경하고요.”


“부럽습니다.”


“내친김에 자랑 한 번 더 해도 될까요? 국어과만큼 다른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교과가 없어요. 삼천포로 빠져도 배경지식이고, 지문이랑 연관 지을 다른 이야기가 늘 존재해요. 그런 이야기 할 때는 모든 아이들 눈이 반짝반짝한답니다. 수학 선생님, 그 눈빛 모르시죠? “



수업시간에 뭘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선생님들이 힘을 빼고 사는 이야기 해주신 것들은

살면서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번쩍 하고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지난 인생은

어떤 말들이 가슴에 깊이 박히던, 그런 섬광 같은 순간들의 ‘연결’이었다.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되더니 말라가던 때가 있었다. 검사를 해보아도 원인은 없는, 마음의 병이었다.


한의원을 찾아갔더니 생년월일과 생시를 묻는다.


맥을 짚으며 의사가 말했다.


“양손에 무엇을 가득 쥔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눠주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한쪽 손을 비워야 그 손이 채워집니다.”


울고 난 후 카타르시스인지, 침술이 용해서인지 그날 이후로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양손 이론’은 내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별이 되었다.


첫째는 작게 태어나 분유를 먹여 키웠다. 아이가 백일쯤 지났을 때, 유방에 양성 종양을 몇 개 제거했다. 집도 하던 의사가 말했다.


둘째를 낳으셔야겠어요. 최소 6개월은 모유 수유를 하셔야겠고요.


둘째를 임신하고 몇 백씩 하는 비싼 유축기를 구하고 마사지를 받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출산 후 조리원에서 지독한 젖몸살에 오케타니 마사지를 받으러 외출을 했다.


“원장님 저 완모(통상 돌 전후의 모유수유)할 수 있겠죠? “


“잘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필패합니다. 이제 출산한 신생아 엄마예요. 완모 하겠다고 이것저것 준비하며 마음이 벌써 아기 돌까지 가있어요. 무게를 내려놓으세요. ‘해보자, 안되면 말고.’”


모유 수유를 하며 갑작스레 출근을 하게 되었다. 모두들 단유를 하고 출근을 해야 한다며 조언을 했다. ‘우선 출근해보고. 아기가 아직 모유를 찾으니 먹여보고. 유축해서 먹여보자. 안되면 말고.’


‘4교시가 끝나면 여교사 휴게실의 문을 걸어 잠그고, 보냉백에 유축모를 담아 어린이 집에 보내고…’


내 계획이 치밀하고 원대했다면 나는 완모에 실패했을 것이다.


오케타니 원장님 말씀도 내 인생에 중요한 별이 되었다.



나는 본업에 충실하고자 말들을 채록한다.


내가 가르치는 내 아이들이 자음 체계표는 기억 못 해도, 고난도 비문학 지문은 떠올리고 싶지 않더라도,


문장 하나는 가슴에 남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