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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안 Nov 30. 2022

밤을 삶으며.

투병 중이신 친구 아버지께 밤을 선물 받았다.

Y의 친정집을 나서는데 신발장 앞에 알밤이 가득 든 쇼핑백이 세 개 놓였다. 아무 말씀도 없으셨지만, 세 친구 사이좋게 나누어 가져가라는 뜻이었다.


“아버지가 주워 오신 알밤인데, 하나씩 가져가라셔.”


집에 들어서 Y와 아버지 간에 주고받는 아무 대화를 듣지 못했는데, 이미 이야기가 된 모양이었다.


집에 와 앞뒤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알밤을 꺼내 삶으며 Y를 생각했다. Y의 착한 심성과, 그런 Y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미워하던 지난 시간을. Y는 아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간절하면 쉽게 주시지 않는다고 하던 어른들의 말처럼, 10년 동안 세 번의 유산을 했다. 낳을 수 없는 아이를 10주간 품었다가 세 번을 잃었다. 그 슬픔을 이해한다는 말을 내뱉기도 어려운 Y의 상황을 이렇게 간편하게 쓰는 것에 죄책감이 든다. 그런 Y에게 기적처럼 아기가 생겼고 그와 동시에 친정아버지의 폐암 진단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 생명의 탄생과, 다른 생명이 다해간다는 판정을 동시에 들었던, 그때 Y의 심경도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 그때 유독 Y는 산책을 했다. 사는 곳에서도 바삐 갈 데가 있는 사람처럼 걸었고, 굳이 사는 곳을 떠나 여행을 가서도 내내 걸음을 종종거렸다. 산책을 하다가도 무연히 앉아 지난 시간과 남은 시간을 계산하며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오지 않을까. 원망과 미움의 지난 시간은 불현듯 후회로 남아 가슴을 찌르고 있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내 울대가 이내 뻐근하게 아파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상상 속에서 Y의 등을 쓸어 주는 것뿐이었다.


Y의 아버지는 진단을 받고도 출퇴근을 하며 일상을 묵묵하게 살아내셨다. 때때로 임신한 딸이 좋아하는 크고 좋은 알밤을 보내셨다. 알밤은 Y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였다. Y는 장터에서도 소담하게 담긴 밤을 보면 곧잘 사곤 했었다. 그런 Y에게, 아버지가 보내는 최선의 사랑표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뱃속의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당장 나의 죽음보다 ‘내 딸이 낳은 내 손주의 얼굴을 볼 수는 있으려나’하는 두려움으로 가슴 졸였던 시간을 꼭 말로 해야 짐작할까.


“아버지는 요즘 어떻게 지내셔?”하고 물으면

“그냥 똑같으셔. 일상을 묵묵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밖에 (방법이) 없으시대.”

“아버지 정말 대단하시다. 멋지시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편히 이야기 나누라며 Y품에 있던 아기를 번쩍 안고 몸을 돌리신 아버지는 등에도 표정이 있는듯했다. 작은 자극에도 웃고 우는 아이를 그저 묵묵하게 바라보시는 얼굴이 크넓은 강물처럼 느껴졌다. 친정에 손주가 와 있는 동안 아이를 업고 산을 오르시고, 호수를 보여주시고, 좋은 공기를 맡게 하고, 쌓아온 지혜를 이야기 해주시는 아버지의 일상을 Y에게 전해 듣는다. 아기의 이마에 입술을 댄 채 낮은 목소리로 당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축복을 주고 계신 것이다.


밤을 삶으며 Y의 아버지께 대신 편지를 써본다.

아버지 안녕하세요. 신체의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묻는 인사 본래의 의미를 새기며 마음을 보냅니다.

Y가 아버지 핸드폰에 자기 이름이 아직도 ‘코알라’로 저장되어 있다는 말을 했어요. 아빠 다리를 나무 삼아 매달린 어린 자식을 ‘코알라’라고 부르셨다죠. 자식을 낳고 자기 가정을 건사해도 아직 아버지 눈엔 한없이 애틋하고 작은 존재니까요.

운동회하는 날이면 집집마다 일찌감치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집에서 마련해온 간식을 푸짐하게 꺼내놓았었죠. 그런 날이면 꼭 저희 엄마는 밤과 땅콩을 삶아 오셨어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달콤한 밤을 티스푼으로 폭폭 떠서 어린 제 입에 넣어 주며 “밤 많이 먹어. 밤 많이 먹으면 밤벌레처럼 통통해진다.”하셨어요. 그때 그 말씀을 요즘도 하세요. “애기들 밤 많이 먹여. 밤 먹으면 밤벌레처럼 통통하게 살 오른다.” 밤을 보면 운동회하는 날의 들뜬 마음과, 자식을 통통하게 먹이고 싶음 엄마의 마음이 같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버지 생각이 함께 날 것 같아요.

들려 보내주신 밤을 삶으며 크고 좋은 것만 고르시던 정성을 생각해봅니다. 영근 밤을 보면 딸 Y를 배불리 먹이고 싶어 조바심이 나셨을 마음을 상상해봅니다. 못난 것은 솎아 내고 좋은 것은 맨손으로 닦아내며 한알 한알 신중하게 담아내셨겠죠. 이 귀한 밤으로 저희 아이들도 통통하게 살찌우며 잘 먹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다음 소식을 전하기까지 얼마간이라도 근심 없이, 통증으로 괴로운 날 없이 안녕히 계시길 바라는 마음도 다시 담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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