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외할아버지가 소천하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일 년 조금 넘은 일이다. 한여름 아내의 장지에서 관을 메던 장정들을 불호령으로 진두지휘하시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남은 생명을 단축해서 사용하신 듯 급속도로 쇠락해지셨다.
남편에게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무척 아꼈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전설처럼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자신을 한 팔로 안고 부표보다 먼바다에서 수영을 하던 차가운 바다의 촉감과 스틸 컷이 자신이 가진 추억의 전부였다. 장례식장에 가서 영정을 봬야 실감이 나려나보다. 부모를 여읜 내 부모가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우는 모습을 보고 비로소 슬픔이 전이되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외할아버지가 너를 사랑했다.’ 고 전해 들은 사랑의 ‘기억’처럼 그제야 슬픔을 ‘알게’될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 명절에 내 남편을 유독 찾는다는 할아버지를 만나 뵙고, 품에 손주의 자식들을 안겨 드리며 사진을 남겼다. 할아버지 댁을 나서는 남편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예언같은 말을 남겼다. '설에도 뵐 수 있겠지. 섬망이 조금 있다 할 뿐 아직 체력은 좋으신 것 같은데 무에 그런 말을 하냐'며 나무랐는데,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친손주와 외손주의 서열이 엄격하셨다. 친손주도 아들 손주와 딸 손주까지 정확하게 가려 당신 마음에 있는 친소를 가감 없이 드러내시곤 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예외로 아끼던 외손주가 내 남편이었다. 어릴 적부터 영민한 탓인지 막내딸에 대한 애틋함이 그의 아들에게 대물림된 것인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자주 내 남편만 데리고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알려주셨다고 한다.
부고를 듣고 출근하던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온 남편의 얼굴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남편에게 다시 부고를 전해 전해 들은 손부는 고지서에 나온 숫자대로 공과금을 보내고, 자식의 끼니를 챙기려 따뜻한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인다. 죽음 앞에서 냉담함이 아니라, 한 세대가 저물고 또 다른 세대의 생명을 이어나가야만 하는, 남은 세대의 숙명같은 것이었다. 남은 세대는 이렇게 또 살아낼 궁리를 한다.
성인이 되어 받은 사랑은 갚아야 할 빚으로 남지만 유년에 받았던 무조건적인 사랑은 가슴에 남습니다. 한 세대를 일구고 가슴에 따뜻한 기억을 남겨주신 할아버지께, 당신 희생과 남겨주신 기억으로 다시 일어설 힘이 되었노라 대신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받은 사랑을 감히 가늠하지 못해 오열로 발인해드리지 못하는 손부의 불효를 용서하시고, 부디 편히 영면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