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눈이 내려야 진짜 겨울이라는 첫째 아이의 말대로 어제는 제법 눈다운 눈이 내린 진짜 겨울을 실감했다. 찬바람이 불면 새로운 채용을 준비한다. 올해는 위탁으로 시험을 치르는 사립학교에 지원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분야의 일에도 지속적인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 이번에 어느 기관 채용에 지원했어.’라고 말하면 남편은 ‘스트레스받지 말고 잘하는 일 해. 누가 정교사 되래?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자기 에너지 다 안 쓰고 70프로만 써도 되는 일하면서 그렇게 즐겁게 일해. 괜히 안 맞는 일 하면서 일에서 자괴감 느끼지 말고.’ 맞는 말이다. 나를 20여 년째 보고 있는 내 남편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 같다.
그런 남편이 다른 일을 권했다. 학예사를 지원하라고 한다. 쉽게 대상에 감응하는 당신 성격과 잘 맞는 일이라고, 더군다나 당신이 해온 일이 어쩌면 문학작품과 지문을 큐레이션 하는 일 아니었냐고. 마음이 설렜다. 마감 하루 전 날, 급히 이력서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를 써서 온라인으로 지원했는데,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해버렸다. 여태 처음 있는 일이다. 필기시험도 무사히 치러 2차 합격을 했다. 한 단계씩 일을 진행하다 보니 과연 내가 교사가 아닌 다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부터 시작해서 내가 그동안 갖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가치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원하는 것이 고작 종신토록 고용되는 것이었나? 새로운 일에 지원하며 고작 내가 가지지 못한 가치가 정년까지 종신고용을 담보하는 것이었나 문장으로 단어로 선명하게 적고 나니 선뜻 그렇다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문득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반평생 매달린 내 전공보다, 난생처음 보는 NCS와 박물관학이 내게 더 쉽게 느껴졌다. 범인의 상식으로 풀어내려 간 남의 전공은 나에게 과정이지만 ‘합격’이라는 글자를 선명하게 보여줬고, 내 전공은 ‘합격’을 몇 번 보여주더니 이내 ‘불합격’의 자리에 나를 앉혀놓았다.
정답도 공개되지 않고 채점기준도 공개되지 않는 미궁 속에 있는 시험을 치르며 나는 왜 침 한번 뱉지 못했던 것인가. 수험생의 알 권리라며 헌법소원까지 내지는 못하더라도 왜 허공에 대고 고함 한번 치지 못했었나. 결과에 순응하며 나의 못남만 번번이 확인했었나.
‘정교사여야만 한다’였다가 ‘교사면 된다’였다가 ‘교사가 아니어도 될지도 모른다고’ 시선을 확장해 본다. 눈물을 거두고 기쁜 마음으로, 지금 문이 닫히고 어떤 새로운 곳의 문이 열릴지 기대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