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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안 Jan 17. 2023

아줌마 취업 도전 실패 진행기

필사를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다 만보 걷기와 필사에 관한 기사를 보고 식탁정리보다 노트 사는 것이 더 급해졌다.


최근 학예사 공채에 지원했었다. 교사 외에 내게 다른 어떤 직업도 추천하지 않는 내 남편이 채용 공고문을 가져왔다. 대상에 쉽게 감응(또는 감동)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네 성격에 적합하다고. 문학작품이나 지문을 주제에 맞게 선별하고 조직하는 수업이 일종의 큐레이션이 아닌가 하는 근거가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무턱대고 지원을 했다. 그렇게 서류와 필기시험과 논술시험까지 통과해 최종 면접을 보았다.


전공자들이 수년씩 계약직 경력을 쌓아가며 석사 학위를 기본값으로 갖고 있다는 과열된 채용 시장에서 나처럼 객기만 지닌 지원자가 가당키나 했을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면접에서 유려하게 아는 것처럼 꾸며대던 모습이 급히 창피해왔다. 말을 하며 얻는 부끄러움을 줄이려면 말 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는데, 가볍게 종종거리던 답변들을 모두 거둬오고 싶었다.


전화번호와 팔로워를 정리했다. 내 삶이 단순해지려면 내 정신을 산란하게 만드는 애매한 관계부터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처를 우후죽순 받아 저장해 놓고, 사용자가 바뀌어 애초에 누구를 저장했던 것인지 잊어버린 관계들. 연결이 무의미하거나 일방적이거나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관계들을 털어냈다. 미움이나 증오와는 또 다른 이유였다.


무모함 때문에 그것이 부끄러움인지도 모르고 취향을 밝히고 적성을 논하고 실패하면 현실을 자각한다. 40대를 앞둔 애 둘 엄마가 감히 젊은이들의 채용 현장에 그렇게 발길을 들였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좀 더 유연하게 밟지 못하고 생각나는 대로 발끝에 힘을 주며 그렇게 살아왔다. 내가 운전하는 내 차는 급출발과 급정거를 하며 쉽게 흔들렸다.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그러나 그 속에도 질서가 있어 지금껏 무탈히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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