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의 망망대해에 제 글로 만들어진 작은 집을 하나 지었습니다. 무인도와 다름없는 공간에, 그마저도 인기척을 내지 않았습니다. 살아가는 흔적을 남기지 않아 뽀얀 먼지만 쌓인 제 집에 발자국이 하나 둘 남겨져 있네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퇴고 없이 일필휘지로 갈겨 전시해 둔 글만 남아 있습니다. 그 글은 써 내려갈 때의 얕은 성찰은 사라지고, 과잉된 감정만이 남아 헌 것 (지나간 것, 낡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헌 글만이 가득한 집에 찾아와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구독)도 해주시고 응원(공감)도 남겨두고 가셨네요. 빨양 c작가님의 방명록을 보고 오랜만에 용기 내어 인기척을 내봅니다.
주 3일 출근하는 시간강사 자리를 구해, 중학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만 만나다 중학교 아이들을 만나니, 무척 귀엽고 때때로 당황스럽습니다. 규칙에 순응하지 않는 순수함이라 할까요, 학교에서 중요한 것이 성적이나 입시로 합의되지 않은 다양성이라 할까요. 수업을 열심히 하면 고등학생 아이들은 좋아했는데, 중학생 아이들은 싫어합니다. 하하.
공교롭게도 제 두 딸들이 모두 수술을 앞두고 있어 휴무일과 일과 후에는 주로 병원을 다닙니다. 경과 관찰같은 일상적인 방문은 엄마인 저만, 서울로 가는 정기 검진은 남편과 휴가를 맞춰 다닙니다. 아이들이 아프면 사소한 변화에 쉽게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럴수록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앞으로의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해내는 것과,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선택지를 탐색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배웁니다.
주말에는 짐을 꾸려 집을 나서 하루나 이틀을 외지에서 보내고 돌아옵니다. 아이들이 아파도 관성이 되니, 건강에 속도를 맞춰 주말을 보내는 노하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책은 많이 못 읽었습니다. 밑줄 그으며 인사이트가 되는 문장들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머리를 잠시 쉬게 하고자 소설을 좀 읽었습니다. 에세이나 실용서와 다르게 한 번 열면 쉬이 덮을 수 없는 몰입감이 좋아 빠져들어보았습니다. 비정기적이지만 울 수 있는 사건이 생긴다는 것도 좋더군요. 울면서 우울의 압력을 좀 낮추지 않으면 하루하루 고된 일상이 더 버거웠을 것 같네요.
그 김에 드라마도 몇 정주행을 했습니다. 수능준비를 안 하니 교재연구 시간이 많이 줄었습니다. 시간강사라 업무가 없으니, 자투리 시간에 OTT와 좀 친해졌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며 나의 존재가치도 확인할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일자리. 지금의 최선인 자리에서 성실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책은 못 읽어도 작가님들의 근황은 제법 읽어봅니다. 출간 이후 더욱 바빠지셨을 작가님. 절필이 아닌 휴(休)필을 선언하시고 돌아오신 작가님. (마음이 많이 편해지셨으리라 기대합니다.) 신 것에서 달콤함을 만들고 계신 작가님. 필명을 바꾸고 더 멋진 글을 쓰고 계신작가님. 언어를 가르치기보다 그 언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삶을 더욱 사랑하는 작가님. 결혼, 출간, 가르치는 일 사이에서 정확하게 계산된 무게중심에 단단히 손가락을 받치고 계시는 작가님. 흩어지는 일상에서 묵직한 인사이트를 붙들고 계시는 작가님들.
작가님들 덕에 ’언젠가는’의 꿈을 놓지 않고 있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브런치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언젠가는 다작을 하며, 언젠가는 성실하게 글쓰기 습관이 몸에 배고, 언젠가는 저자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꿈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