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지안 Jun 27. 2023

'탈출은 지능순' 학교를 좋아하세요?

기간제 교사의 고군분투 교단 일기

작년 근무했던 학교에서 동교과 선생님이 연락이 왔다. 올해 병가와 육아휴직으로 결원이 생기는데 혹시 지원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교감 선생님 부탁으로 내 근황을 묻는다. 아이들이 내 유일한 변수인데, 올해는 수술을 앞두고 있으니 아무래도 기간제로 근무하는 것은 학교에 폐가 될 것 같다고 에둘러 거절을 했다. 오랜만에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두고 온 아이들도 궁금하고 동료 선생님들 소식도 궁금해서 시험기간에 학교 근처로 가서 약속을 잡았다.


학교를 떠나고 난 뒤에 소식은 궁금하긴 했어도 물어보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떠난 사람이 궁금해 한들.’이라는 생각에 미치면, 아이들 소식이 궁금해도 전화기를 다시 내려놓았다. 담임했던 아이들이 체육대회나 스승의 날에 행사 사진과 함께 소식을 전해주면 고마운 마음으로 아이들 근황을 듣되, 새 학년 새담임 선생님들과 잘 적응하길 바라며 한걸음 물러서왔다. 내 그런 행동이 아이들에게 혹시 서운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그렇게 물러서 있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


S선생님과 오랜만에 만나 근황을 나누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이전 학교에 흠뻑 가있었다. 새 학기는 생기부 정정으로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작년 1학기만 근무를 하고 떠난 A선생님은 담임이 누가 기록해야 할 생활기록부를 채워주지 않고 떠나서 2학기 선생님이 다 떠맡아 힘들었다는 이야기. B선생님은 예산을 지원받아 외부 활동을 하는 동아리를 맡았는데,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을 학교에서만 활동하게 해서 예산 집행이 거의 안 된 상태로 학기를 마쳤다는 이야기. C선생님은 전교 회장으로 활동한 아이에게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아, 아이가 한 활동은 공중으로 사라져 버리고 생기부에는 임기와 전교 회장으로 활동했다는 단 한 문장밖에 써줄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A, B, C 선생님 모두 한 학기 또는 1년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학교를 떠나신 기간제 선생님이었다. 그 밖에도 업무에 책임을 다하지 않고 떠난 수많은 선생님들. 그 피해는 아이들과 열정과 책임이 남은 소수의 교사들이 분담해야 했다.


“아니 입시가 중요한 고등학생 생기부를 그렇게…… 부장님은 뭐 하시고? 아니 학년 내 교차 검증은 안 하셨나?”

더 이상 어떤 말도 붙일 수가 없었다.


“나야 그 자리에 어떤 선생님이 오든 상관없지만, 애들 생각해서 그래. 애들 생각해서. 이 자리가 업무도 그렇고 수업도 학년을 걸쳐야 해서 힘든 자린 것도 아는데, 애들 생각하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오셨으면 하는 거지.”


기간제교사와 정교사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거리감. 그것이 나는 줄곧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계약직이 받는 차별이라고만 생각해 왔었다. 어떤 비공식 모임에서 배제되고, 내가 계약직이라 해서 경제능력이 자신보다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든가, 가르치는 능력이 부족할 것이라든가, 시험 문제에 오류가 있을 것이라든가 정말 편견을 갖고 대하는 것이 느껴지는 선생님도 있었다. 계약직인 내가 제안을 하면 거절하거나 화를 내고, 같은 내용을 정교사인 선생님들이 말해야 겨우 수긍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교감선생님이 생활기록부 기재를 미리 해달라는 연락을 반복적으로 하시는 것을 보면서 안 해도 될 독촉을 공연히 해서,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의 사기를 꺾는다고 불만도 많이 했다. 학기 초부터 아이들 생활 기록부를 어떻게 하면 좀 풍성하게 적어줄 수 있을까, 안 해도 되는 일을 만드는 교사인 나에게 어떻게 저런 독촉을 할 수 있느냐며. ‘어떻게 나에게, 어떻게 나처럼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라는 마음이 전제되어 있었다.


‘어떻게 나에게, 어떻게 나같은 사람에게!’라는 마음이 이성을 가리면, 종종 박완서 선생님과 이해인 수녀님의 대화를 떠올린다. 상부(喪夫)를 당하고 같은 해에 교통사고로 아들마저 잃은 박완서 선생님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르겠다.”며 고통스러워하자, 수녀님은 “왜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반문한다. 선생님은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를 비켜가길 바라는 것은 큰 교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으셨다고 했다. ‘어떻게 나한테’는 교만이라는 것을.


내 화에 내가 못 견뎌 파르르 떨던 일들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싶다.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완전히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일, 만의 하나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학교 집단에서, 나의 실수나 직무유기는 ‘블랙스완’만큼 치명적인 것이니까.


S선생님과 대화하며 내가 떠난 학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를 거의 처음 들어본 것 같았다. 그간 책임을 다하지 않고 떠난 계약직 교사가 많으며, 계약 기간이 종료된 후에 학교는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느라 고되다는 것을. 내가 속한 집단에도 S선생님이 속한 집단에도 그간 서로의 집단에게 쌓인 불신으로 인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거리가 필요했음을 이해했다. S선생님을 통해 들을 이야기로 학교에서 왜 나에게 불신과 실력과 책임감 미달의 전제를 깔고 대하는 것인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것이 온전히 받아들여졌다.


다른 사람(개체 또는 종의 범위까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상상력의 부재 때문이라고 한다. 12년 만에 중학교에서 근무를 한다. 고등학생은 수업 시간에 눈빛만으로도 상황이 진정이 되는데, 중학생 아이들은 아직 그런 상황판단이 잘 안 된다. 이 아이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잔소리가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중학생은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는 시기다. ‘자기 중심성’이라 함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로,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바꿔 말하면 타인은 나에게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벗어나, 자기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반대의 경우도 있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니 내가 주목받아야 한다는 교만을 버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언행(평가)과 행동에 나 또한 상처를 받듯, 타인도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사람인가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떤 잘못된 행동을 할 때, 잘잘못을 다그치기보다 어떻게 해야 성숙한 사람인지를 알려주면 중학생 아이들도 이내 숙연해진다. 그 잔소리는 매번 나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잔소리 끝에 나지막이 나에게는 한 가지 메시지를 덧붙인다. 쓸데없는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자고.


내 처지가 불만이면 속한 집단을 바꾸면 된다.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를 돌아보면 된다. 나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태도가 지속된다면 그이의 상상력이 부족함을 연민하면 된다. 중학생부터 벗어나야 할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인의 삶에 대해 통찰해 보려는 의지와 능력이 부족함을 딱하게 여기면 그만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겨우 손바닥만 한 스노클링 안경을 쓰고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이 생각난다. 자신이 경험한 것밖에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그 경험치가 정말로 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타인의 삶이 바다라는 것을 절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많은 책임감 없는 교사들이 서로에게 피해와 불신을 심어놓았다. 인지적으로 간소화 하려고 그 문제를 집단의 특성으로 정리했다. 그렇게 서로를 불신하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해왔던 것이다. S선생님께 전해 들은 소위 ‘개판 치고 떠난 기간제 교사들’ 이야기는 비로소 집단의 프레임에 갇혀 있던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주었다.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할 정교사들에게, 계약기간만 근무하는 기간제 교사들은 수습할 일을 남겨놓고 떠난 존재로 인식되었다. 새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기간제 교사들은, 잔뜩 경직된 정교사 집단에 융화되고자 노력하는 것이 왕왕 서운해졌다. 각자 그럴만한 상처와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마음이 자유로워진 나는 이제 학교를 떠날 준비를 한다. 계약 만료로 떠나야만 했던 내 직장. 평생직장과 직업이 없는 시대에 교사도 예외는 아니며, 젊은 교사들에게 탈출은 지능 순이라고 불리는 학교를. 아이들과 충돌하고 학부모 민원을 간접 경험하다 보면 지금껏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천운(天運)이었다. 천운(天運)이 가득했던 꽃길 내 직장을 떠나는 순간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나에게 맡겨진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쏟으며, 학부모 민원이 걱정되는 순간에도 쫄지 말고 ‘인성 교육’ 잔소리나 하는 교사로 남아 있다가, 그렇게 훨훨 자유롭게 이곳을 떠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절친 없는 사람 여기여기 모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