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은 다른 엄마들을 불안하게 한다

by 글지안

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질문을 바꿔보겠다. 타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야말로 ‘어쩌다 창업’의 길에 접어든 나는 아직 성공을 논하기엔 초보 중의 초보다. 투자사들이 나의 가능성에 대해 평가한다면 성공할 가능성보다 실패할 가능성에 더 큰 무게추를 올려 둘. 경험도 없는데 계획까지 부실한 그런 무모한 도전자. 그게 내가 파악하는 나의 위치였다.


일을 시작하게 된 과정부터 진행 상황까지 근황을 묻는 자주 만나는 지인들-주로 아이 친구의 엄마들-에게는 속속들이 공유를 했다. 나의 사업은 창대한 목표를 가지고 진행한 것이 아니었고 해프닝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업데이트를 했다. 얼마나 어이없는 실수를 했는지, 내가 아직 모자라도 한참이 모자란다는 자괴감과 소소한 깨달음 같은 것들이 주를 이뤘다. 듣는 이들은 박장대소하면서도, 꼭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너는 이렇게 일을 시작했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에이, 아니야. 뭐가 그래. 나도 아직 내 진로가 뭔지 찾지 못한 방황하는 사람일 뿐인걸. 이런 이야기 누가 들으면 크게 웃는다? 도토리 키재기야.’


나의 반응은 진심이었으나, 내 이야기가 이미 상대방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비슷한 류의 상황이 연출될수록 나는 말을 아껴야 했다. 사업 중반부로 들어서며 더 이상 일상의 이야기를 나눌 만한 여유로운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의 실수담이 누군가에게는 성공담처럼 크게 느껴질 수 있었다. 일상을 공유하겠다는 의도가 다른 사람의 상대적 박탈감을 쓸데없이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육아기를 방황하며 스스로 혹독하게 보냈다고 생각하는 내가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실제로는 대동소이하다 해도 나만 빼놓고 모두 전력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착시효과가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물론 그들의 축하가 진심인 것도 알았다. 다만 어떤 사건을 대하는 사람의 감정은 단편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어떤 긍정적인 감정이 조금, 부정적 감정도 조금. 모든 일에 양면이 있듯 축하도 진심이고 불안도 그들의 진심이었다. 그런 복잡하게 섞여있는 감정들은 나에게도 양가적인 감정이 들게 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냈다는 후련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미안함이 반복되면 죄책감이 들었다.


사업과 관련된 일상을 공유할 때 원치 않는 훈수는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요소 중에 하나였다. 결국 결정은 대표의 몫인데, 시장의 반응을 조사하기 위해 여기저기 묻고 다니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것을 알았다. 해당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고, 업계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은 배가 산으로 가기에 딱 좋은 선택이었다.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대표의 브랜드 철학과 감을 믿으라며 쉽게 조언하려 들지 않았다. 사업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기대치 못한 곳에서 해결책이 생긴다는 것을 몸소 겪어본 사람들이었다.


직관적으로 선택하되 기준점이 있어야 했다. 그 기준점은 브랜드를 만들고자 했을 때, 내가 지향하고자 했던 가치. 브랜드 스토리였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타깃으로 박리다매의 상품을 생산하는 것은 대기업의 몫이었다. 작은 브랜드에서 성공은 시장이 뾰족할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공식 정도는 책으로 충분히 익혔다. 읽기와 쓰기로 자기를 발견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문장과 자연에 감응하며 하루치의 행복을 채워가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움튼다’는 말을 좋아한다. 씨앗이 땅속에서 충분한 물을 만나 둥그스름하게 부풀어 오르는 자리. ‘씨앗’이 가능성이라면 ‘움’은 현실이고 실현이기 때문이다. 독서 모임. 나는 그곳에서 발아할 수 있었다. 나의 시작점이 되어 주었던 그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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