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이 흘러 어디로 갈까

by 글지안

내가 참여하는 독서 모임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주간 지낸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이는 이 소식을 나누기 위해서 일주일을 성실하게 보낼 정도라고 했다. 나도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 이번 주는 어떤 일이 있었나, 근황을 발표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회고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질문은 자연스레 한 주간 나에게 가장 큰 감동과 충격을 안겨줬던 일이나, 해결되지 않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이따금 나의 사업과 관련된 근황을 털어놓았다. 친분으로 얽힌 모임이 아니라서 나를 잘 아는 지인들보다 훨씬 더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편했다. 약간의 익명성과 나에 대한 편견 없이 사건을 사건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 틈에서 숱하게 고민을 해결해 나갔다.


말을 하면서 해결책을 스스로 찾기도 하고, 관련 없는 일화를 들으면서 번뜩 인사이트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느 날은 다이어리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500권을 인쇄해야 제작이 가능하다는 사정과, 그 금액을 예산에 미리 반영해두지 못해서 제작에 난황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먼저 모임을 이끌어주시는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실물도 없는 다이어리를 주문하겠다고 하셨다. 이어 몇 모임원도 손을 들었고, 책방 지기는 입고 제안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내가 화장품 세일즈를 할 때 아.묻.따. 5세트며 10세트씩을 척척 주문하는 큰 손들이 있었다. ‘아니 이 많은 것을 다 어쩌려고 그러세요?’라고 물으면 ‘하나는 내가 쓰고, 나머지는 내 친구들한테 하나씩 사가라고 하면 돼.’ ‘그러다 못 팔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아이고 괜찮아, 몸에도 바르고 손에도 바르고 그러면 돼.’ 하면서 주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 키운다고 바빠 자기 얼굴을 돌보지도 않는 사람이 쌈짓돈을 꼬깃꼬깃 모아 겨우 2만 원 3만 원씩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클렌저 하나, 스킨 하나. 없으면 안 되는 생필품 같은 것들을 하나 둘 사면서 가성비 좋은 로드샵이나 온라인 쇼핑몰 제품 대신 꼭 나에게 주문서를 내미는 사람들. 100만 원씩 척척 주문해 주는 사람들은 2만 원 3만 원 주문하는 사람들보다 50배 33배 고맙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우리나라처럼 온라인 배송이 잘 되어 있는 곳에서 화장품을 방문 판매로 사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쌈짓돈도 100만 원 단위의 큰 금액도 눈물 나게 감사한 일이었다.


실물도 없는 다이어리를 손들고 사겠다고 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때의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꼭 필요한지 고민하고 주문하세요.’ 이미 마음은 500권을 주문을 다 받은 것처럼 충만해졌다. 받은 만큼 돌려줄 것이 있어야 거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받기만 하고 줄 수 있는 것은 없으니 고마움을 빚졌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다정한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사랑을 받기만 하다 갚을 길을 모르게 큰 빚을 지는 것일까. 사랑을 셈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내가 받은 사랑이 에너지로 남아 있다면 준 사람에게 그대로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다른 이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사용자가 일상의 감각을 수집하면서 촘촘히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나의 다이어리는 그 지점에서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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