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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 Jul 29. 2024

가난의 냄새(6)

- 커리와 사모사

"아버지는 남의 가난을 팔아 장사하는 사람", 늘 가난을 포착했으나 가난해 보이지 않은 사람들을 사진에 담아냈던 내가 존경하는 최민식 사진작가는 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엄마는 돈 밖에 모르는 사람", 가족을 위해 제 꿈 한 번도 꿔보지 못하는 엄마는 어린 시절 어린 딸이 끄적여 놓은 일기장에서 그런 글귀를 보았다고 한다, 허나 그 어린 딸은 그때도 지금도 그랬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전혀 그런 글을 썼던 기억이 없다.


모두 다 어렵던 시절, 다행히 남들과 비교해서 더 비참함과 비루함을 느낄 필요 없이 너도 나도 다 비슷하게 가난하던 그 시간들이었다며 "아무렇지 않았다"라고 나는 제법 성숙한 아이었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말들을 내뱉었던 것 같다. 비록 곧 허물어질 듯한 집에서 살았어도 그때의 가난은 내게 별 것 아니었고, 오히려 공부 좀 하고 어른들에게 인사 잘하는 삼 남매라는 칭찬이 있어 어린 시절의 결핍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일부러 더 자랑하듯 말했던 것 같다. 그 어린아이의 눈으로 엄마는 돈 밖에 모르던 사람이라 느꼈던 나는 과연 그 가난이 아무렇지 않았을까? 혹은, 그 가난에 기대어 이 글을 끄적이는 나에게 그 시절은 정말 괜찮았던 걸까 아니면 그 일기장이 기억나지 않듯 그 가난함이 주었던 모든 것을 잊어버린 걸까?


뭔가 아침식사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 음식 나왔다, 커리.

가을철 수확을 기다리는 잔뜩 익은 벼 색깔 같은 커리 혹은 카레는 늘 내게 생경한 음식, 그리고 엄마의 콧구멍에 이상한 냄새로 박혀 오래오래 남아있는 익숙해지지 않은 음식으로 기억한다.


"엄마, 이런 것도 먹어보자"며 대학로 어떤 인도식당으로 엄마를 이끌었다. 학비도 생활비도 아낄 수 있다며 지방에 있는 대학을 권하던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듣지 않고 서울로 대학을 와 근근이 지내면서 한창의 청춘에 분칠 한번 제대로 못했지만 그래도 남들이 다니는 식당도 가보고 싶었고, 그리고 그곳에 엄마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건 우리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가난의 순간을 조금씩 조금씩 지우고 그 여백에 새로운 것을 채우고자 하는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울먹이던 부유함에 대한 갈망이었을지도. 


그래서 찾은 곳이 짜장면과 탕수육, 스파게티나 피자처럼 그저 특별한 날의 식사 같은 느낌이 아닌, 이 정도는 먹어줘야지 하는 마음을 먹어야만 시도할 수 있는 우리에게 정말로 낯선 음식이었던 인도 커리와 사모사,  있는 사람들처럼 익숙하게 이런 식당에 자연스레 들어가 여러 종류의 커리에 납작한 빵도 찍어먹고, 감자와 콩 그리고 여러 채소가 들어간 사모사도 한 입 베어 물어봐야 내 가난이 티가 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메뉴판을 봐도, 그림을 봐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음식이 가득했는데 뭔가 무난해 보이는 닭고기가 들어간 커리와 군만두처럼 보이는 메뉴를 골른 후 늘 먹었던 음식처럼 "이거 주세요"하고는 엄마에게 날 보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엄마 우리가 이런 데도 왔고, 이제 이런 음식도 먹어보는 거야, 우리 삶도 평범해지는 거라고'라고 말하는 것처럼. 엄마는 처음 와 본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음식냄새가 가득하니 마치 낯선 곳에 홀로 남겨진 아이처럼 어색해하고 잔뜩 움츠려 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새로운 곳에 와 두 눈빛이 초롱초롱해 일면 귀여웠다.


"막둥아, 이런데 데려와줘서 고마운데... 냄새가 콧구멍에 박혀서 계속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몇 번 음식 맛을 보던 엄마가 결국 숟가락을 놓고는 코를 킁킁거렸다, 마치 그 냄새를 다 뱉어내려고 애쓰는 듯이. "엄마, 서울에 왔으면 이런 것도 먹어봐야지, 어디 가서 인도 카레 먹었다고 자랑도 해봐야지!". 그렇다, 나는 입맛에도 맞지 않는 커리를 억지로 먹으면서 남들과 같은 인생을 산다고 과시하고 싶었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돈만 아는 것처럼 애처롭게 살아왔던 엄마는 차라리 익숙한 가난의 냄새가 편하고 일부러 벗어나고자 택했던 낯선 삶의 냄새를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식당을 다녀온 후에 엄마는 그때를 생각하면 갑자기 그 냄새가 코를 확 찌른다며 다신 그런 음식은 먹고 싶지 않다며 가끔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게 해 준 막둥이에게 고맙다고, 우리 막둥이가 있어서 이런 것도 먹어보고 저런 데도 가본다며 꽤나 나를 기특해했다. 또 가자고 하면 같이 가지도 않을 거면서.


밥 상에 올라온 커리를 한 참 보다가 그때 대학로 인도식당에서 엄마와 둘 이 가서 냄새를 쫓던 우리 둘의 모습이 떠올라 잠깐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냄새와 맛에 익숙지 않아 커리에 섞여있던 감자와 호박, 당근을 조금 집어먹으며, 나 역시도 그 가난의 냄새가 익숙하고 편안한 듯 먹을만한 건더기만 골라먹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엄마의 온 시절을 휘감고 있었던 그 냄새가 여전히 나를 채우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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