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관조와 응시

Contemplation and the Gaze

by Zen

불확정성과 추상의 경험에 대한 펠드먼의 사유는 언제나 하나의 일관된 ‘정서적 중심’(a mood)으로 수렴된다. 이는 그의 작품이 1980년대 이후 다양한 음악 사조의 변화 속에서도 특정 이데올로기나 양식에 귀속되지 않은 채, 독자적인 미학적 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수용되어 온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후기 작품에서 연주 시간이 3–4시간에 이를 정도로 극단적으로 확장되면서, 그 정서의 일관성은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 시기의 음악은 한층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성격을 띠게 되며, 작품 연주의 긴 시간은 연주와 감상 모두가 종교적 수행에 가까운 내면적 체험의 장으로 전환되도록 만든다.




펠드먼은 생애 후반기 이슬람 문화권의 전통 양탄자에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 동양의 양탄자는 바닥을 덮는 실용적인 도구임과 동시에, 복잡한 문양과 구조를 지닌 예술 작품이자 제의의 도구로서, 긴 노동시간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각 매체이다. 양탄자의 다양한 크기와 추상적 패턴들의 비대칭적 구성, 그리고 표면에서 느껴지는 천의 질감은 펠드먼 음악에서 긴 연주 시간, 불규칙한 패턴의 반복과 비서사적 전개, 섬세한 질감으로 연결되며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듯한 고요하며 부드러운 소리의 직조라는 형태로 귀결된다.

예를 들어《크리플드 시메트리》(Crippled Symmetry)은 약 90분간 연주되는 플루트(베이스 플루트), 타악기(글로켄슈필·비브라폰), 피아노(첼레스타)를 위한 삼중주 작품이다. 이 작품은 불규칙한 반복과 변형을 통해 격자처럼 엮이는 패턴들이 고요한 질감 속에서 이어지며, 예측 불가능한 구조가 청자의 감각적 몰입을 유도한다. ‘불구의 대칭’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음악은 불확정적으로 변화하는 순간의 형태를 포착한다. 미세한 패턴의 반복이 예측 불가능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움직이지만 이는 섬세한 음색으로 조율되며 확장된 시간만큼 일관된 정서 안에 머문다.


https://youtu.be/5h1k9dnLZy8?si=RdY8hVIEfQXduWaM


다음 해에 작곡된《필립 거스턴을 위하여》(For Philip Guston, 1984)에서 연주 시간은 4시간에 이르며 음악 스케일의 확장은 더욱 극대화된다. 두 시간을 넘어서는 연주 시간은 청취를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수행적 경험으로 전환시키며, 작품을 듣는 행위를 일종의 ‘시간을 견디는 법’으로 확장시킨다. 선형적 전개와 발전의 개념이 사라진 ‘정지된 시간’이, 억제된 음량과 미세한 텍스처의 질감 속에서 청자의 감각과 사고를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향하게 만든다. 그 안에서 음악은 관조적 응시의 장(場)으로 열리며 듣기와 보기라는 감각적 구분과 경계는 희미해진다.


https://youtu.be/bPzc1iPB7Ms?si=Izc_7ZVdqRvU8GXP





잭슨 폴록과 필립 거스턴에서부터 마크 로스코, 그리고 이슬람 장인들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모튼 펠드먼은 다양한 시각예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시각예술이 지닌 사유 방식, 특히 추상 회화의 그것을 자신의 작곡 방식에 적극적으로 적용하였다. 이는 소리를 ‘정지된 시간’(suspended time)의 상태로 포착하게 하며, 본질적으로 비가시적인 매체인 음악을 마치 공간적 형상을 지닌 대상으로 지각되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적 감수성은 감각적 인상에 머무르기보다, 추상이라는 감각 이전의 형식으로서 경험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미세하게 변주되는 음향의 표면들이 하나의 장(field)을 이루도록 구성되는 펠드먼의 음악에서, 청자가 마주하는 것은 감각의 경계에서 드러나는 시간 그 자체이다. 이에 따라 청자는 ‘전개를 따라가는 경험’이 아닌, 소리 앞에 머무르며 응시하는 경험 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음악을 보다’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음악 속에서 시간의 흔적을 목도하고 그 자리에 머물며 고요히 응시하는 관조의 행위가 된다. 이때 대상과 주체의 거리는 멀어짐과 동시에 밀착되며, 음악은 추상인 동시에 경험으로 드러난다. 인간과 자연, 주체와 대상, 현재와 영원의 경계 위에서 음악이라는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펠드먼은 소리이자 시간 자체를 잠잠히 바라보는 자, 그리고 그 앞에서 귀 기울이는 자로 남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펠드먼의 작품들은
어떤 의식(ritual)을 위해 쓰이는지
알 수 없는
제의용 그릇과 같다.
우리를 외부인과
분리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생각과 감정을 놓아버리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의식적 공간을 제공한다.


tempImageZxTQNM.heic 이슬람 양탄자, 15세기




마크 로스코,《오렌지, 레드, 옐로우》, 1961, 캔버스에 아크릴, 236.2 × 206.4cm. 2012년 5월 8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 Lot 20. 현재 개인 소장.

Christie’s, Post-War and Contemporary Evening Sale, New York, May 8, 2012, Lot 20, https://www.christies.com/en/lot/lot-5559196

<홀바인 카펫>(Holbein Carpets),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 이슬람 미술관 소장. https://smb.museum-digital.de/object/130452?utm_source=chatgpt.com

Johannes Schöllhorn, “Ritual, Image and Beauty: Notes on Feldman’s Music,” in Morton Feldman: Late Works for Piano, (Vienna: Paladino Media GmbH, 202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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