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terminacy
앞 장에서 살펴본 마크 로스코, 필립 거스턴 등의 뉴욕파 작가들 가운데, 특히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미국 회화를 세계 무대에 각인시킨 인물로서, 1950년대 펠드먼에게 주요한 미학적 참조점이 되었다. 캔버스에 물감을 자유자재로 흩뿌리는 폴록의 작업 방식은 작가의 직접적 통제를 최소화하고, 물감의 흔적 그 자체를 창작의 과정이자 결과로 드러낸다. 이로써 높은 몰입도 가운데 이뤄지는 직관적 창작 행위는 완성된 이미지와 함께 회화를 이루는 주요한 축이 된다.
이러한 방식은 음악의 매개 변수들을 비선형적 시간의 흐름 속에 자율적으로 놓아두며, 예측 불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펠드먼의 작업 방식과 유사성을 지닌다. 펠드먼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불확정성은 폴록이 붓과 화폭 사이의 거리를 넓힘으로써 화면에 대한 직접적 제어를 부분적으로 내려놓았듯이, 자연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 속에서 시간의 전개를 규정하지 않은 작곡적 선택을 의미한다. 이는 우연적 사건에 대한 전적인 위임이라기보다, 작곡가의 높은 몰입과 직관을 전제로 한 수용성에 가깝다. 다시 말해, 펠드먼 음악의 불확정성은 자연의 시간성과 순간의 즉흥성 가운데 발생하는 감각적 판단과 선택이 축적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https://youtu.be/seQsmYSnQn8?si=d-s1KYyOa94uM1ab
예를 들어 1950년 작품인 첼로를 위한《투사 I》은 오선보 대신 격자 형태의 그래픽 악보를 사용하여 시간의 흐름, 음의 높낮이, 그리고 지속 시간을 직사각형의 배치로 시각화한다. 이 악보는 연주자에게 구체적인 음형을 지시하기보다 연주 행위의 조건만을 제시하며, 이후 공간으로 투사되는 소리 자체의 궤적에 작곡가의 관심이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이때 첼로는 소리의 물성과 질감을 드러내는 매개로 기능하며, 느린 템포 속에서 교차하는 피치카토와 지속음은 긴 침묵과 잔향을 동반한 여백의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열린 구조는 연주자의 순간적인 행위가 펼쳐지는 시간을 하나의 경험의 장으로 인식하게 한다. 특히 펠드먼에 의해 형성되는 경험의 장은 폴록의 작업에서처럼 외부로 분출되는 격렬한 에너지의 표출이 아니라, 극도로 절제된 음향 속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고요함을 특징으로 한다.
이처럼 시간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흐름 속에 소리를 놓아두는 펠드먼의 작곡법은, 청자를 목적을 지닌 서사적 시간이 아니라 끝을 기다리는 유한한 시간을 목도하게 하면서도, 몰입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생한 현재성의 경험으로 이끈다. 이 현재성은 작곡가의 작업 과정에서 요구되는 깊은 몰입과 직관, 그리고 연주 행위의 순간성을 포함하며, 시간이 목적지나 방향성을 갖기보다 그 가운데 지속적으로 ‘머무는’ 상태로 경험되도록 만든다.
불확정적으로 매순간 투사되는 소리의 흔적은 섬세하고 고요한 음향의 질감 속에서 인식된다. 이는 의식적 판단 이전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직관(直觀), 즉 감각이 분절되기 이전의 단일한 경험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말하는 단일성은 매 순간 달라지는 소리들의 복잡성 속에서도 하나의 감각적 일관성이 유지되는 역설적 상태를 내포한다.
즉, 고요함이라는 잠잠한 표면 아래에 잠재된 복잡성과, 그 복잡성을 감싸는 감각의 일관성이 펠드먼 음악에 나타나는 불확정성의 내적 의미를 이룬다. 자연이 그 고유한 생성 원리를 따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듯, 소리는 인간의 통제를 넘어선 질서 속에서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시간성이 스스로를 드러내듯 생성 소멸을 반복한다.
Jackson Pollock Number 23 https://www.tate.org.uk/art/artworks/pollock-number-23-t00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