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Experience
20세기 초, 유럽에서 발생한 두 차례 세계 대전은 사회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고, 예술 역시 기존 관념과 방법론의 해체라는 급진적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전통적 예술 방식에 머물러 있던 뉴욕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럽 모더니즘의 유입은 새로운 예술 형식에 대한 열망을 촉발시켰다. 이 시기 미술에서는 추상표현주의가, 음악에서는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의 우연성 음악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1950년대 뉴욕의 실험적 예술 환경 속에서 활동하며 특별히 동시대 추상회화 작가들과 개인적·예술적 접점을 형성했던 펠드먼은, 추상회화의 특성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음악적 사고와 긴밀하게 연관시킨다. 특히 펠드먼은 자신의 글에서, 추상회화에서 드러나는 비구상적 형태와 색면 그 자체가 오히려 수용자의 감각적 몰입을 유도하며 보다 생생한 내면적 체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언급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인식을 펠드먼이 사용한 ‘추상의 경험’(Abstract Experience)이라는 표현에서 해석의 단서로 삼아, 그의 전반적인 음악적 사유와 미학적 태도를 고찰하고자 한다.
추상은
철학자들조차 범주화하는 데 실패한
하나의 감정(emotion)이다.
내가 묘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분류되지 않은 감정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추상의 경험’(Abstract Experience)
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
이 글에서 펠드먼은 범주화될 수 없는 감정 혹은 체험의 영역을 ‘추상의 경험’이라 지칭하며, ‘추상’을 회화사나 예술사의 형식적 경향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것은 분류될 수 없기에 분석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바로 그 점에서 해석 이전의 체험적 영역으로 향한다. 재현적 예술이 다루어온 구체적 대상이 아닌, 언어화되기 이전의 감각과 내면의 층위가 이 경험의 중심에 놓인다.
다시 말해 추상이란 고정된 의미나 형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경계적이고 비결정적인 영역을 가리키며, 그 안에서 수용자는 이를 해석의 대상으로 파악하기보다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주체로 머무르게 된다. 해석이 지연되거나 유보될 때 감각과 지각은 더욱 활성화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추상은 감각적 형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각을 세밀하게 조율하고 직관을 활성화하는 방식의 새로운 구체성을 창출한다.
특히 ‘경험’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추상의 경험’은 주체성을 넘어서는 자연, 신비, 죽음 등 초월적 차원을 수용하는 태도를 포함한다. 범주화될 수 없거나 언어화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수용성은, ‘추상’이라는 경계적 개념과 ‘체험’이라는 생생한 실제 사이의 간극을 매개하며, 예술적 경험이 구체적이면서도 동시에 초월적인 성격을 지닐 수 있음을 드러낸다.
추상의 경험은 대답 없는 은유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위 문학적 예술,
즉 종교와 관련된 논쟁에
관여하는 예술과 달리,
추상적 경험은
종교와 더욱 가까운 실제이다.
신비와 실제라는 두 차원을 아우르는 ‘추상의 경험’은, 언어화되지 않은 감정이 단순히 침묵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닌, 고유한 리듬과 속도, 그리고 빛과 색채의 형태로 드러남을 의미한다. 가장 비실제적인 존재는 추상적 예술 형식 안에서 오히려 생생한 현재적 체험으로 변모하며, 그 과정에서 감각은 전이되거나 수렴되면서 통합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펠드먼의 음악이 청자로 하여금 ‘보게’ 하고, 로스코나 거스턴의 회화가 ‘듣게’ 하는 방식은 감상자를 다차원적 현재와 감각의 장 속에 위치시키며, 소리와 침묵 사이의 미세한 틈에서 드러나는 초월적 현재를 체험하도록 이끈다.
Morton Feldman, Give My Regards to Eighth Street: Collected Writings of Morton Feldman, ed. B. H. Friedman (Cambridge, MA: Exact Change, 2000), 75.
필립 거스턴,《다이얼》(Dial), 1956, 리넨에 유채, 182.9 × 194cm, 휘트니 미국미술관 소장. ⓒ The Estate of Philip Gu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