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모튼 펠드먼의 <로스코 채플>

3.1 통합과 완결

by Zen

마크 로스코는 텍사스 휴스턴의 예배당에 자신의 작품이 실제로 설치된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로스코에게 감상 환경은 작품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설치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채 예배당이 일반에 개방되었다는 사실은, 이 연작이 일종의 미완의 작품으로 남았음을 시사한다.




1970년 2월 예배당이 완공되고, 뉴욕 스튜디오에서 옮겨온 채플 연작이 설치된 뒤 열린 헌당식은 자연스럽게 로스코의 죽음을 기리는 애도의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예배당은 이후에도 드 메닐 부부의 초교파적 신앙을 반영하는 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이었으며, 이는 로스코의 회화와 예배당의 종교적 정체성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될 것임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드 메닐 부부가 구상했던 예배당의 초교파적 상징성과 로스코의 죽음이 남긴 어두운 분위기 사이의 간극은, 부부에게도 끝내 ‘미완의 과제’로 남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 메닐 부부는 예배당의 헌당식에서 작곡가 모튼 펠드먼에게 새로운 음악 작품을 위촉하게 된다. 로스코의 친구이자 추상표현주의 전시를 기획한 경험이 있었던 펠드먼은, 예배당을 위한 작품을 맡길 만한 적임자로 판단되었을 것이다. 드 메닐 부부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펠드먼은 새로운 곡을 완성하였고, 1년 후 로스코 예배당에서《세속적 예배》(Secular Service)라는 제목으로 초연하였다.


펠드먼의 음악은
예배당의 초교파적 신앙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암시한다.
《로스코 채플》이 연주되었을 때,
드 메닐 부부의 급진적인
범종교주의적 개방성은
제의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로스코 채플》의 초연이 제의적 성격을 띠게 된 데에는, 작품의 종결부에 유대교 시나고그 찬송가 양식의 히브리 선율이 등장하는 점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로스코 채플 연작이 지닌 미완의 분위기와 초교파주의적 지향의 모호함은, 이 선율이 지닌 친숙한 인상과 로스코의 죽음이 촉발한 정서적 분위기, 예배당이라는 공간을 둘러싼 사회적 경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펠드먼 특유의 고요한 음향이 결합된 맥락 속에서 하나의 제의적 분위기로 수렴되었을 것이다.

총 427마디로 구성된 이 작품은 비올라 솔로, 첼레스타, 타악기, 소프라노와 알토 솔로, 그리고 혼성합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연 당시의 사진을 보면, 합창단이 사방의 벽면에 걸린 로스코의 작품 앞에 일렬로 서서 연주하며 마치 로스코의 회화로부터 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한 인상을 주었을 것으로 연상된다. 실제로 펠드먼은 로스코 예배당의 음향이 일반적인 콘서트홀과 달리 청중에게 강렬한 물리적 감각을 전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1972년 <로스코 채플> 초연 당시


이처럼《로스코 채플》이 청중에게 제의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정서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작품이 쓰여진 1970–72년 사이 펠드먼이 시도한 일련의 정서적인 작품들 가운데《로스코 채플》이 속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펠드먼은 감정과 기억을 작곡의 주요 요소로 삼았으며, 이전의 극도로 추상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로스코의 채플 연작이 로스코의 전체 작품들과 맺는 관계성과도 유사한 면모를 이룬다. 로스코가 기존의 화려한 색면 회화에서 벗어나 경계면이 없는 어두운 색조와 각진 사각형을 강조함으로써 추상성과 명상성을 심화시킨 반면, 펠드먼은 이전의 추상적 음향 언어 속에 감정과 기억의 요소를 삽입함으로써 정서적 차원을 다시 불러들였다는 점에서 서로 반대되는 경향으로의 이동을 암시한다. 결과적으로 두 예술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예배당의 의미를 보완하며, 로스코 예배당에 예술적·정신적 완결성을 부여했음을 알 수 있다.




1964년 존과 도미닉 드 메닐 부부가 마크 로스코에게 작품을 의뢰하며 시작된 로스코 예배당 프로젝트는, 모튼 펠드먼의《로스코 채플》초연을 통해 비로소 내용과 형식의 통합을 이루게 된다. ‘예배당’이라는 명칭을 지니면서도 특정 종교에 구속되지 않는 이 공간은, 로스코 채플 연작이 지닌 명상적 성격을 통해 초월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여기에 펠드먼이 시도한 복합적 음악 언어가 더해지며 공동체적 경험을 내포한 하나의 완결된 제의적 공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1. 펠드먼이 직접 밝힌 다음의 일화는《로스코 채플》의 마지막 부분이 지닌 정서적 울림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언급되는 ‘카렌의 독주’는 종결부에 등장하는 히브리 멜로디를 가리킨다. “《로스코 채플》이 완성되었다. 마지막에 카렌[초연 당시 비올라 주자]의 독주를 작곡하고, 이어 합창단이 추상적인 화음을 부르는 부분을 썼을 때, 나는[펠드먼 자신]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런던에 도착했을 때 출판사에서 이 곡을 연주해줬는데, 연주가 끝나자마자 편집자는 대충 복사된 악보를 움켜쥐며 앞으로는 악보를 베끼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로스코 채플》같은 작품을 계속 쓰라고 말했다.” Dohoney, Saving Abstraction, 196.

2.《로스코 채플》의 초연 당시의 사진 Photograph by Hickey-Robertson, Houston.

Courtesy Rothko Chapel Archives. https://www.pacegallery.com/journal/atmospheric-pressure-pamela-g-smart-rothko-chapel/ [2024년 12월 4일 접속].

3. Dedication of the chapel, February 26, 1971: An interfaith service signified the official opening, and the space’s ongoing mission, as a sanctuary for all.

IMAGE: HICKEY-ROBERTSON https://www.houstoniamag.com/arts-and-culture/2021/02/rothko-chapel-50th-anniversary-celebrations-leg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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