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시기
펠드먼은 생애 전반에 걸쳐 추상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다양한 음악적 탐구를 지속해왔다. 그 가운데《로스코 채플》을 전후한 약 2년간의 작품들은 이전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양상을 드러낸다. 이 시기 그는 보다 전통적인 기보법과 표현 양식으로 선회하였으며, 여기서 사용된 전통 어법은 작품의 내적 구조를 지배하기보다 하나의 기호로 기능하며 상징적 층위를 형성하게 된다.
이 때의 작품으로는《마담 프레스 90세의 나이로 사망하다》(Madame Press Died Last Week at Ninety),《하이네를 퓌르스텐베르그 거리에서 만났다》(I met Heine on the Rue Fürstenberg),《내 인생의 비올라》(The Viola in My Life) 연작, 그리고《로스코 채플》등을 들 수 있다.
특히《로스코 채플》과 네 개의 시리즈로 작곡된《내 인생의 비올라》에서는 비올라라는 솔로 악기가 전면에 부상하며, 현악기의 지속음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다이내믹 변화를 기보법을 통해 보다 정교하게 제어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현악기 특유의 밀도 높은 지속음과 단편적인 선율의 도입은 악기의 물리적 특성이 전통 기보법의 도입 및 선율적 구성과 긴밀히 교차하는 지점을 형성하며, 이를 통해 기억과 정서의 층위는 보다 구체적인 음향으로 드러나게 된다.
https://youtu.be/JB8ncajXFyc?si=t8sIbXzmPC-cHLwS
이와 같은 변화는 동시대 시각예술의 전환기적 흐름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추상표현주의가 주류를 이루던 1950년대를 지나 1960–70년대에 들어서며, 예술계는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을 중심으로 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이 본격화되었다. 이 시기 펠드먼은 변화하는 미학적 조류 속에서 자신의 ‘추상’에 대한 근본적 사유를 바꾸기보다는, 선율과 전통적 기보법을 문학적·상징적 제스처로 도입함으로써 급진적 전환이 아닌 오히려 전통으로의 회귀를 통해 변화의 징후를 내면화하게 된다.
이러한 ‘회귀’는 단순한 양식적 변화를 의미하기보다, 기억과 회고에 기반한 정서적인 제스처로 읽힌다. 중년에 접어든 펠드먼의 자전적 경험, 로스코를 비롯한 동시대 예술가들의 죽음이 남긴 상흔, 그리고 뉴욕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각자의 길을 찾아 흩어지던 그 시기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감정의 환영’은 단순한 시대적 변화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변화에 역설적으로 맞서며 오히려 내면으로 향하려는 펠드먼 특유의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1. 펠드먼 스스로 1970년부터 1972년 사이에 쓰인 일련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감정의 환영’(illusion of feel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는 이후의 작업들을 ‘예술의 환영’(illusion of art)이라 지칭함으로써, 앞선 국면이 지녔던 표현적 성격의 의미를 대비적으로 드러낸다. Morton Feldman, “Slee Lecture”(1973), Morton Feldman Collection, Paul Sacher Stiftung(PSS), Dohoney, Saving Abstraction, 180–181쪽에서 재인용.
2. 로버트 라우셴버그는 추상표현주의 이후 새로운 미술적 전환을 이끌었던 작가로, 초기 뉴욕 예술가 네트워크 안에서 펠드먼과 교류하였다. 그의 White Paintings(1951)은 존 케이지의 4′33″(1952)에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펠드먼은 젊은 시절 비교적 낮은 가격에 라우셴버그의 작품을 구입한 바 있으며, 이후 해당 작품의 가치가 크게 상승했다는 일화는 당시 예술가 네트워크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이러한 동시대적 예술 환경 속에서 라우셴버그의 인용과 삽입, 콜라주 실험은 펠드먼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선율의 단편적 등장과 같은 콜라주적 흔적을 이해하는 간접적인 참조 지점으로 읽힐 수 있다. 본 작품 「시민 애슈빌」에서 나타나는 직사각형 구성과 배치는 로스코적 색면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포스트 모더니즘의 경향을 드러낸다.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78902
3. https://www.diariodesevilla.es/ocio/morton-feldman-centenario_0_20059112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