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tness
나의 주된 관심은
최소한의 대비만을 사용하여
‘평평한 표면’(flat surface)을
유지하는 것이다.
《로스코 채플》가운데에서도 특히 211마디부터 약 3분간 지속되는 ‘보다 정적이고 추상적인 구간’(a more stationary “abstract” section)에서는 펠드먼의 추상적 어법의 형태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구간에서 펠드먼은 음고, 리듬, 형식과 같은 음악의 주요 매개 변수를 희미하게 만들며, ‘음색’이라는 감각적 실체를 전면에 남긴 채 소리 자체에 집중한다.
미세한 결을 지닌 음들이 서로 겹쳐지면서 하나의 정지된 음향 덩어리를 이루고, 비물질적 실체처럼 공간 전체를 메운다. 이때 청중은 단일한 음향의 장 속에 머물며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동일성을 지닌 음향의 연속체가 일종의 부동성을 형성할 때, 흐르는 시간은 더 이상 선형적으로 인식되지 않고 시선 속에 포착되어 하나의 ‘평평한 표면’으로 전환된다.
https://youtu.be/CXULsghOD4o?si=sQqQKQDHlXnhUuZm
이처럼 ‘소리’를 단순한 청각적 현상이 아니라 시간과 더불어 존재하는 하나의 양태로 이해하는 펠드먼의 사유 방식은, 그가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추상에 대한 사유와 시각 예술과의 연계를 통해 음악의 수용을 보다 복합적인 감각의 층위로 확장하려는 시도와 긴밀히 연결된다.
본래 회화 비평에서 출발한 용어인 ‘평면성’은 20세기 회화의 전개에서 중요한 미학적 전환점을 이룬 개념이다. 이는 캔버스의 ‘평면’을 의식하는 태도, 즉 원근법이라는 재현의 환영(illusion)을 거부하고 표면(surface) 그 자체를 인식하려는 미술가들의 사유 방식을 가리킨다. 색채와 형태의 배치, 구성을 통해 시각적 깊이를 얻으려 했던 원근법적 시도들을 해체하며, 회화의 고유한 실재로서의 평면을 탐구하는 과정은 지각의 초점을 ‘깊이’에서 ‘표면’으로 이동시킨다.
《로스코 채플》의 추상적 섹션에서도 이와 유사한 해체의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음악의 주요 매개변수들은 지워지고, 음색을 드러내는 음향의 층만이 남아 감각의 표면을 구성한다. 선율적 서사나 극적 대비가 최소화되며 부동성을 형성하는 이러한 해체의 방식은, 20세기 회화가 평면성을 통해 시각적 지각을 갱신했던 과정과 구조적으로 호응한다. 색채만이 남겨진 채 캔버스의 표면이 감각적 사건의 장으로 전환되듯, 펠드먼의 음악에서 시간의 선형적 전개라는 환영이 제거되며 소리는 하나의 존재로서 드러난다.
위 악보의 ‘보다 정적이고 추상적인 구간’에서 음향은 부동의 층을 이루며 감각의 표면을 형성한다. 두 그룹으로 분리된 여성 합창의 각 음은 고요하게 이어지고 서로 겹쳐지지만, 그 움직임은 거의 감지되지 않으며, 오케스트라 차임은 느린 주기로 반복되어 미세한 파동처럼 음향의 표면을 가볍게 흔든다. 이 부분은 모두 극도로 여린 음량으로 연주되며, 그 음향은 옥타브 내의 12음을 모두 포함하는 매우 밀집된 층위를 내포한다.
이 구간에서는 선율, 동기, 리듬 등 전통적 구성 요소가 제거되고 오직 음색만이 남는다. 특히 남성 합창이 배제된 음색은 차갑고 얼어붙은 듯한 인상을 주며, 211마디 이전까지 저역 타악기와 함께 형성되던 따뜻한 음향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소리는 서로의 경계를 지우며 하나의 음향적 표면으로 수렴되고, 선율 단위가 아니라 동일한 감각의 층위로 작동한다. 그 결과 청자는 소리를 더 이상 ‘진행’으로 듣지 않고, 그 자체의 부동성—질감과 밀도—로 경험하게 된다.
《로스코 채플》의 추상적 섹션에서 드러나는 정지된 시간의 구조와 그 내부에서 미세하게 진동하는 감각의 밀도는, 로스코의 채플 연작이 보여주는 깊이를 제거한 표면을 환기시킨다. 로스코의 화폭이 캔버스의 평면적 실체를 전면화하면서 오히려 감각의 가장 미세한 결을 일깨우듯이, 이 추상적 구간 역시 구조적인 유사성을 가지고 작동한다. 이는 회화에서 논의되어 온 평면성이 음악적 환영의 형태로 구현되는 지점을 가리키며,《로스코 채플》의 고요함을 지각 체계가 교차하는 보다 초월적인 사건의 장으로 확장시킨다.
1. 모튼 펠드먼은 “회화에서 사용되는 부동성(stasis)이라는 개념은 전통적으로 음악의 구성 장치(apparatus)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론 음악도 일정 정도의 비이동성 혹은 그 착각을 구현할 수는 있다… 로스코나 거스턴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정지의 다양한 양상은, 어쩌면 내가 회화로부터 음악에 가져온 가장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한다. 그는 이 발언을 통해 시각적 용어와 청각적 용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지적한다. Feldman, Give my Regards, 149.
2. 평면성 개념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회화의 전개 속에서 점차 정립된 것으로, 이를 근대 회화의 핵심 원리로 체계화한 비평가는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였다. 그는 회화가 사진이나 조각과 구별되는 고유한 매체적 조건, 즉 공간의 환영을 투사하는 캔버스가 아닌 자신의 평면적 조건(a flat surface)을 자각해야 한다고 보았다. Clement Greenberg, Art and Culture: Critical Essays (Boston: Beacon Press, 1961), 136.
3. 리게티의 Lux Aeterna는 펠드먼의 Rothko Chapel 가운데 추상적인 섹션의 음향과 매우 유사한 결을 이룬다. 이 작품 역시 빛과 영원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어, 음향적 깊이를 지우고 방향성을 최소화한 음악적 질감이 오히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초월성에 대한 경외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각인된다. 음들은 개별적인 선율이나 화성 진행으로 인식되기보다, 시간 속에 부유하는 하나의 음향 장(sonic field)으로 경험되며, 이러한 비정향적이고 비중심적인 조직은 청자를 물리적 공간의 감각에서 점차 분리시켜 내면적·초월적 지각의 상태로 이끈다. 결과적으로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작곡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밀도와 정지된 시간 감각을 통해 ‘빛’이라는 개념을 청각적으로 환기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미학적 지향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