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주기성

Periodicity 끊임없이 변형되는 순간들의 연쇄

by Zen

주기성은 소리의 지속과 여백이 만들어내는 느린 호흡의 리듬으로, 자연의 시간에 내재한 반복성을 반영한다. 거의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것처럼 인지되지만, 기계적 규칙성에 따라 조직된 리듬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주기성은 느슨하게 감지되는 맥박(pulse)의 형태로 나타나며, 시간을 분절하기보다 지속적인 흐름으로 체험하게 한다.


나는 각 소리를
그 소리의 음향적 실재에 맞춰
구조화하고
긴장감, 중력, 또는
박자의 느낌 없이
숨 쉴 수 있는 맥박을 찾았습니다.


본 인용문은 주기성이 시간적 단위를 구조화하는 방식이지만, 일반적인 음악 형식 단위로서의 리듬과는 다른 개념임을 보여준다. 펠드먼은 소리 자체의 지속, 비율, 그리고 비례에 기초한 시간 구조의 연쇄를 통해 주기성이 형성되도록 하였으며, 이러한 구조는 미세한 음향적 층위들과 겹쳐지며 그의 음악 특유의 느리고 고요한 시간 감각을 만들어낸다.






《로스코 채플》에서 주기성은 악곡의 시간을 조직하는 핵심적인 작곡 기법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구조는 작품 전반에 걸쳐 네 차례 반복되며, 전체 시간 구성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음향의 흐름은 밀물과 썰물, 혹은 파도의 왕복과 같이 느리게 진행되며, 각 주기는 약 4초에서 15초 사이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느린 주기적 흐름은 인간의 호흡이나 심박과 같은 생리적 리듬과는 구별되며, 오히려 자연 현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주기에 가깝다. 특히 평균 약 8초 내외의 파도 주기와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데, 이러한 시간적 구조는 작품 전체에 자연의 시간성이 스며든 고요한 정서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위 악보의 46–62마디에서는 합창과 테너 드럼이 하나의 음향 덩어리를 이루며, 매우 긴 호흡의 주기적 구조를 형성한다. 다이내믹은 ppp에서 시작해 점차 증가하고, 반복이 거듭될수록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차례로 합류하게 된다. 여섯 번째 반복에서 음악은 mf에 도달한 뒤 곧바로 pp로 수렴되며 마무리된다.




다음의 악보에서는 합창이 최소한의 다이내믹 대비 속에서 유동적인 프레이징을 형성하고, 그 사이를 첼레스타, 비브라폰, 비올라가 일정한 맥박으로 반복한다. 이 구간에서 혼성합창의 움직임은 섬세하고 풍부한 질감을 만들어내며, 전체 음향에 미묘한 색채적 생동감을 부여한다. 이렇듯 징검다리처럼 놓인 반복 음형과, 그 사이를 유영하는 음향은 고요한 주기성 속에서 청자에게 심리적 안정과 공간적 깊이를 느끼게 한다.






주기성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순간들의 연쇄이다. 다시 말해, 이는 소리의 본질적 속성을 바꾸는 변화가 아니라, 그 본질을 유지한 채 일어나는 ‘변형’에 기반한 반복이다. 이러한 반복이 만들어내는 시간 구조는 앞으로 나아가는 흐름이라기보다, 멈춰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이 주기성을 통해 체험되는 동일성과 멈춤의 감각이 시간의 흐름이 유예된 초월적 체험의 구조로서 고요함을 이루게 된다.


https://youtu.be/QdymO5COvRc?si=3GKGVloJ8Il1FELX

Morton Feldman - Bass Clarinet and Percussion (1981)




1. 머레이 셰이퍼(R. Murray Schafer)에 의하면 파도의 리듬은 평균 8초의 사이클을 이루며, 이는 주기적 박절의 평균 시간과 유사하다. 머레이 셰이퍼,『사운드스케이프: 세계의 소리를 듣는 방법』, 이은주 옮김 (서울: 글항아리, 2011), 346–347.

2. 마크 로스코(Mark Rothko), No. 61 (Rust and Blue),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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