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ration 소리의 생애
소리의 ‘표면’은《로스코 채플》의 촉각적 물성이 공간을 부드럽게 채우며 사방의 벽으로 스며드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이 표면은 감각과 인지 사이를 매개하는 얇은 막처럼 작동하며, 그 물질적 존재는 ‘지속’의 시간 동안 머물다 사라지는 일시적 실체로 드러난다.
음악에서 ‘듀레이션’(duration, 지속)은 개별 음이 지닌 시간적 길이, 다시 말해 소리가 발생하여 감쇠되기까지의 물리적 시간을 의미한다. 서양 음악 전통에서 이는 8분음표나 4분음표와 같은 리듬 단위를 가리키는 기초 개념이었으나 20세기에 들어 단순한 기보상의 단위를 넘어, 소리의 물리적 특성과 청취자의 시간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소리 자체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며, 물질이 머무는 시간—즉 소리의 ‘생애’—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켰다. 이때 ‘음’은 더 이상 기호가 아니라, 실제 시간 속에서 생성되고 감쇠되는 하나의 존재 상태로 이해된다. 펠드먼은 특히 소리의 어택 이후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 즉디케이–서스테인–릴리즈(decay–sustain–release)과정에 주목하였다. 그의 음악에서 느린 흐름과 긴 여백은 이 소멸의 과정을 드러내는 구조가 되며, 소리가 ‘지속’ 속에서 잠시 머무는 일시적 실체임을 밝혀준다.
《로스코 채플》에서 ‘지속’의 의미는 조심스럽게 구성된 프레이즈로 형상화된다. 예컨대 아래 악보의 110마디에서는, 곡이 시작된 지 약 10분 만에 처음으로 �의 셈여림에 도달하며 음량상의 첫 정점을 맞는다. 그러나 이 정점은 곧이어 등장하는 비올라 솔로의 짧은 프레이즈에 의해 빠르게 분산되고, 결국 ��의 셈여림으로 소멸한다. 이 프레이즈에서의 �는 이후 이어지는 비올라 솔로의 표현주의적 몇몇 악구를 제외하면 곡의 초반부에만 나타나며, 다이내믹의 정점이 초반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곡 전체가 이후 여린 음, 즉 고요와 소멸의 분위기 속에서 진행됨을 암시한다.
유사한 구조는 곧이어 나오는 마디 113에서도 반복된다. 113마디에서 합창, 첼레스타, 그리고 오케스트라 차임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115마디의 비올라 솔로를 기점으로 잔향으로 전환된다. 강한 음량이 남긴 여운은 공간 속으로 확산되고, 이어지는 여린 음량의 타악기들은 그 파장 위에 미세한 입자를 흩뿌리듯 여운을 남긴다. ��에서 �까지 급격히 정점에 도달하는 시간에 비해 남아 있는 잔향은 긴 시간 구조를 이루며 소리의 짧은 지속과 소멸의 과정을 펼쳐보인다.
기존 음악 문법에서 ‘음의 길이’는 언제나 대체될 수 있는, 반복 가능한 형식적 단위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지속’은 소리의 끝을 전제로 한 완결적 개념으로,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시간의 구조를 드러낸다. 청자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어떤 목적도 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끝을 예감케 하는 사건으로서의 소리 안에 머문다.《로스코 채플》의 고요함은 소멸을 통해 존재하고, 사라짐 가운데 드러나는 현재적 체험이 된다.
1. 전자음악의 발달은 소리의 구체적 양상을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고, 이는 작곡가들의 소리에 대한 사유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소리는 일반적으로 타격, 지속, 감쇠, 해제의 단계를 거치는 물리적 특성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시각화는 음의 길이—즉 지속을 악보 상의 기호가 아닌, 소리 파장의 과학적 구조에 근거한 청각적 질료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2. 이 그림은 필립 거스턴이 뉴욕 시절에 제작한 초기작으로, 강렬한 색채 속에 내재된 추상성이, 사라진 형체의 흔적이나 서서히 부상하는 불분명한 형태로 드러나며 실재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펠드먼은 거스턴의 초기 회화에 대해 “그의 그림이 그 공간 전체를 삼켜버리고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는 사라져가는 형상과 지각 불가능한 존재가 오히려 실체, 혹은 실체가 머물렀던 시간을 환기시키며, 공간 전체를 고요 속으로 침잠시키는 힘을 지님을 보여준다. 이러한 감각은 펠드먼이 음악에서 구현하고자 한 사라지는 실체로서의 소리의 지속의 의미와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필립 거스턴,《무제》, 1955–1956, 캔버스에 유채, 192.7 × 182.9cm, collection of Lyn and Jerry Grinstein. https://neddved.tumblr.com/post/661254600103526400/mentaltimetraveller-philip-guston-untitled-1955 [2025년 6월 5일 접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