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없는 노래’(無言歌, Lieder ohne Worte)
약 20여 분간 고요한 음향 가운데 이어지던《로스코 채플》은 종결부에 이르러 구체적인 형태의 선율이 등장하며 청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유대교 찬송가 형식의 히브리 선율은 외부로부터의 인용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펠드먼이 10대 시절 작곡한 선율의 재현이다. 이 선율의 등장은 작품 전반을 지배해 온 추상적 음향과 긴장 관계를 이루며,《로스코 채플》의 미학에 또 하나의 층위를 더한다.
오르페우스의 소네트 23번
오, 언젠가는 비행기 엔진을 끄고
나는 것 그 자체만을 위해
하늘의 고요한 기류를 타고
그저 새끈한 유선형의 기체로
곡예 비행이나 일삼는 바람의 아들
그런 가벼운 날개짓에 만족하지 않을 때
비로소 순수한 어딘가로의 행로가
잘 작동하는 기계를 즐기는 아이 같은
만족을 넘어설 때, 저편에 다다르려는 자는
그 비행 거리만큼의 하늘을 얻게 되리라.
from 라이너 마리아 릴케
https://youtu.be/4sLmw_dFZks?si=n5nDr7Y_Bhlz13h1
십자가 없는 예배당, 색채가 지워진 회화, 리듬과 서사가 결여된 음악이라는 극도로 추상화된 조건 속에서, 역설적으로 선율—혹은 노래—가 울려 퍼질 때, 이른바 ‘감정의 환영’은 구체적인 표면을 얻는 듯이 보인다. 이는 추상의 세계가 외부 요소의 개입이 아니라, 스스로 내부를 열어 균열을 드러내는 행위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추상은 더 이상 고정된 음향 상태가 아닌, 끊임없이 변형되는 고요함의 과정으로 성격이 확장된다.
《로스코 채플》에서 비올라의 표현적 악구와 추상적 음향을 거쳐 종결부의 선율로 응결되는 과정은, 이 작품을 단순히 서로 다른 양식이 병치된 전환기의 곡으로 환원하는 해석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히려 추상을 구성하던 형식적 일관성이 일시적으로 해체되며, 고요함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는 새로운 국면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경계적 순간에 청자는 더 이상 단순히 ‘듣는 자’에 머무르지 않고, 이 변모의 과정을 목도하는 증언자(證言者, witness)의 위치로 이동하게 된다.
결국 히브리 선율의 도입은《로스코 채플》의 고요함이 하나의 상징적 외피—즉 히브리적 선율이라는 정체성을 입음으로써 정서적·의례적 차원으로 수렴되는 지점을 드러낸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예외적인 선율이 펠드먼의 음악 세계 안에서 ‘가사 없는 노래’(無言歌, Lieder ohne Worte)로 기능하며, 하나의 시적 장치로 작동하는 방식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펠드먼의 전반적 추상 어법 속에서 나타나는 ‘서정적 종결부’(Lyrical Ending)가 단순한 형식적 변주가 아니라, 작품의 종결부에 떠오르는 일종의 ‘환영적 표면’(illusive surface)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1. 펠드먼은 이 선율을 자신의 글에서 ‘quasi-Hebraic melody’라고 지칭하며 민족적 뉘앙스를 암시한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로스코 채플》 안에서 이 선율이 수행하는 상징적·정서적·구조적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히브리 선율’이라 명명한다. 여기서 ‘히브리’는 본래 ‘경계를 건너온 사람’을 뜻하는 고대어 ‘Ivri’에서 유래한 용어로, 본 연구에서는 유대인의 종교적 정체성에 더해 작품 전반의 ‘경계적 성격’을 환기하는 의미에 주목한다. Feldman, Give My Regards, 126.
2. 본 논문은 펠드먼이 스스로 ‘감정의 환영’(illusion of feeling)의 시기였다고 밝힌, 약 2년에 불과한 비교적 짧은 기간의 작품들이 그의 전 작품 가운데에서도 오히려 유의미한 고찰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작곡가의 의도와 수용의 관점을 분리함으로써,《로스코 채플》이라는 독보적인 작품에 대한 분석을 넘어, 이러한 고유성이 펠드먼의 다른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더불어 본 논문에서 ‘illusion’을 ‘착각’이 아닌 ‘환영’으로 번역한 것은,《로스코 채플》을 시각 매체와의 교차 지점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연구 관점과도 맞닿아 있다. 엄밀히 말해 ‘illusion’은 ‘허상’이나 ‘속임수’를 의미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그것이 상(像)을 동반한다는 점, 다시 말해 표상과 연관된다는 점에 주목하여 ‘환영’으로 옮긴다. 이를 통해 펠드먼의 음악 전반이 시각 예술과 맺는 연관성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고자 한다.
3. 여기에서 ‘증언’의 개념은 청자를 단순한 감상 주체를 넘어, 역사적 현실 앞에 위치시키는 윤리적·존재론적 태도를 가리킨다. 펠드먼의 음악이 지속적으로 ‘보기’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논의되어 왔다는 점에서《로스코 채플》의 음악적 경험은 청자를 침묵 속에서 호출되는 역사적 현실을 목도하는 증언자로 위치시킨다. 로스코의 죽음, 예배당 앞에 놓인 바넷 뉴먼의 작품, 그리고 채플을 구성한 예술가들이 공유한 유대적 배경은 이 공간이 당대의 역사적 상처와 분리될 수 없음을 암묵적으로 환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선율의 등장은 말해지지 않은 진실과 마주하게 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제시되며, 작품 전체에 ‘증언’의 구조를 부여한다.
4. 펠드먼이 20세였던 1946년에 작곡한 무반주 가곡 <Only>는,《로스코 채플》 종결부에 드러나는 서정성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시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제23편에 곡을 붙였으며, 중음역대에 머물며 큰 도약 없이 진행되는 선율은 자연스럽고 절제된 표현을 띠며, 펠드먼 음악의 고요한 분위기를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