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제의적 고요함

Ritual Stillness

by Zen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밤이 지나가고
커튼 없는 북동쪽 창이
짙푸른 박명을 들여보낼 때



"고요에게" from 한강 <흰>



《로스코 채플》에서 히브리 멜로디의 도입은 작곡가의 자전적 회고를 넘어, 유대적 정체성을 환기하는 동시에 로스코의 죽음에 대한 애도, 더 나아가 포용적 가치관을 담은 예배당의 지향과 맞닿는다. 하나의 개별 작품이 공간의 다층적 서사와 만나 공동체적 경험으로 확장될 때, 그것은 자연스럽게 제의적 형식을 띠게 된다.


실제로 1972년 로스코 예배당에서의 초연 당시 청중이 느꼈을 정서는 애도와 회귀의 정서가 교차하는 공적 예배에 가까웠을 것이다.《로스코 채플》의 초기 제목인《세속적 예배》(Secular Service)에서도 암시되듯, 히브리 선율은 펠드먼의 추상적 음향 공간에 ‘제의’적 깊이를 부여하며, 작품을 공동체가 함께 머무는 열린 장(場)으로 이끈다.


익숙하지 않은 비범한 것을 위해 자유롭게 됨으로서의 축제의 거행(휴식)은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방식 속에서 이미 익숙하지 않은 비범한 것에 귀속해 있음이다. 이렇게 기대하면서 끈덕지게 기다리는 것이 학수고대함(Erharren)이다. 하루가 이렇게 기대하는 기다림(Erwartung)으로 가득 차면 찰수록, 그날은 더욱더 직접적으로 축제일이 된다.


이 인용문에서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공동체적 제의를 일종의 멈춤이자 기다림으로 해석하며, 이러한 축제의 의미를 “익숙하지 않은 것을 위해 자유롭게 되다”, 즉 반복되는 일상과 예측 가능한 시간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것이 도래할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여기에서의 열림 가운데 기다림은 강박적인 새로움의 추구나 불예측성에 대한 불안과는 다른 것으로서, 참된 기대(Erwartung des Wesenhaften)와 결합하여 하나의 정조(a mood)안에 머무는 경험으로 제시된다.


이는 어떤 결과를 미리 예측하거나 이미 설계된 목표에 자신을 종속시키는 것이 아닌, 완전한 열림 속에서 경외감을 품고 익숙하지 않은 것과 함께 머무르는 태도를 의미한다. 기대를 품는 방식으로서의 기다림은 현재를 충만하게 만들며, 제의의 내용을 이룬다. 멈춤과 머무름은 시간의 선형적 구조를 지우고, 그 빈 자리—곧 부재의 자리—에서 현재적 체험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비워짐을 통한 열림, 그리고 기다림으로 충만해지는 현재의 순간들이 축제(Feier), 즉 휴식의 내용을 구성한다.


히브리 선율의 ‘도래’는 바로 이 기다림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과 함께 머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펠드먼이 10대 시절 작곡한 단순하고 친숙한 히브리 선율은 그의 추상적이고 고요한 언어 가운데 등장하는 순간, 완전히 낯선 것으로 변모한다. 이는 그가 20–30대에 걸쳐 구축한 음악 언어, 그리고 1970년대에 하나의 도그마처럼 굳어가던 추상표현주의의 잔상 속에서 과거의 형식 즉, 선율과 서사를 향해 다시 열리는 개방성이다. 이때 펠드먼의 전형적인 추상의 언어는 ‘도래할 과거’를 맞아들이는 비어 있는 장이 된다.


https://youtu.be/YRL-HhCuhM0?si=wQHPTK8Ke9fi2Zw4

로스코 시그램 벽화에 관한 명상 - by Orizen



로스코 채플 연작의 텅 빔과 예배당의 급진적 개방성이 펠드먼의《로스코 채플》을 탄생시킨 무언의 장이 되었다면, 새로운 기억으로 도래한 히브리 선율은 공동체적 제의의 순간으로 펼쳐진다. 예측할 수 없는 매개 변수들 사이로 소리의 고요한 질감은 회귀와 역행이 공존하는 시간의 두터운 층위를 이룬다. 실재와 비실재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구조로서, 그 사이로 흐르는 선율은 대립이 아니라 상호적 머묾 속에서 부재를 견디는 하나의 제의적 형식이 된다.





소리가 사라지는 찰나와 발생 직전의 순간이 정확히 맞물리며 고요함은 참된 기대 속에서 공동체적 애도와 포용을 실현한다. 이 순간이 바로 기다림으로 충만한 항상적 전야(前夜, Vortag)이자 ‘고요한 밤’(Stille Nacht, heilige Nacht)으로서의 제의적 고요함이다.




1. 마르틴 하이데거,『회상: 횔덜린의 송가 <회상> 프라이부르크 대학 1941/42 강의록』, 신상희·이강희 옮김 (서울: 나남, 2009). 108.

2.「관조와 응시」에서 논의한 바 있는 ‘a mood’는 펠드먼에 의하면 순간적 감정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정조 혹은 세계관을 가리킨다. 하이데거가 말한 ‘학수고대함’(Erharren)은 이러한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서 안에 머무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3.《로스코 채플》은 추상적 음향과 구체적 선율, 오스티나토의 주기적 구조와 비선형적 전개, 그리고 완전히 추상적인 섹션이 교차하는 매우 복합적인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 예를 들어 고요한 음색의 지속 가운데 비올라는 매우 표현적인 악구를 연주하며, 이는 순간적으로 고전적 협주곡의 제스처를 환기시킨다. 더불어 소프라노와 알토 독창으로 이루어진 단편적 모티브는 합창과의 댓구를 형성하며 오페라 양식을 암시한다. 특히 여성 독창자의 전면적 제시는 고대 제의에서 여성 사제가 수행하던 역할을 상기시키며, 고대 제의가 지녔던 공동체의 의례로서의 예술 형식을 다시 호출한다.

4. 하이데거가 말하는 ‘익숙하지 않은 것’(das Ungewohnte)은 단지 일상적 경험 바깥의 낯섦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초월적 차원을 가리킨다. 본 논문에서 이 개념을 펠드먼의 음악에 적용하는 것은 펠드먼 고유의 추상적 언어와 히브리 선율 사이의 대립을 부각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 요소 모두 ‘익숙함의 경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각각 다른 층위에서 기다림의 구조를 지탱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5.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대중적 찬송가는 전쟁과 결핍의 시대 속에서 태어난 선율로서, 단순한 멜로디가 지니는 보편적이고 정서적인 힘을 환기한다. 1818년 오스트리아의 한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전날 밤 오르간이 고장 나자, 사제 요제프 모어(Joseph Mohr)는 오르가니스트 프란츠 크사버 그루버(Franz Xaver Gruber)에게 기타로 반주할 수 있는 찬송가를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루버는 그날 밤《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완성했다. 이 노래는 이후 유럽 전역으로 퍼지며 성탄이 주는 평화와 위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노래에서 ‘고요’는 신성한 존재의 탄생을 앞둔 전야의 긴장과 기다림을 표상하며,《로스코 채플》의 제의적 고요함과 마찬가지로 현재와 초월의 경계에 머무는 고요한 침묵의 상태를 드러낸다. 이 멜로디 자체의 단순성과 친숙함은 히브리 선율이 지니는 소박한 보편성과도 공명한다.

6. 로스코 채플 작업 이전에 제작된 시그램 벽화는 여러 측면에서 이후 채플 회화에서 지워진 인간 감정과 비극의 깊이를 환기시키는 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시그램 벽화에 응축된 어두운 색면과 감정의 긴장은, 한강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죽은 이들의 호출을 떠올리게 하며, 이러한 공명 속에서 한강의 문장과 로스코의 이미지를 교차시키는 시도를 진행하였다. 로스코 채플에 이르러 그 감정의 농도는 표면적으로 사그라든 듯 보이지만, 감정이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어와 서사를 넘어선 사유의 깊은 층위 속에서, 비극의 흔적은 더욱 미세한 형태로 남아 관람자를 침묵 속의 성찰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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