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튼 펠드먼(Morton Feldman, 1926–1987)의《로스코 채플》(Rothko Chapel)은 미국 텍사스 휴스턴의 로스코 예배당을 위해 작곡된 약 25분 길이의 작품으로, 합창과 소프라노 및 알토 솔로, 비올라, 첼레스타, 타악기를 위한 곡이다. 로스코 예배당은 특정 종파를 초월한 명상적 공간으로 설계되었으며, 그 내부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대형 회화로 꾸며져 예술과 종교 간 경계를 허무는 대표적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로스코 채플》은 이러한 초교파적 예배당의 열린 영성을 반영하는 한편, 예배당 완공을 1년 앞두고 세상을 떠난 로스코에게 바치는 헌정이자 추모의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러한 공간적·정신적 배경은 곧 이 작품이 지닌 음악적 구조와 미학적 특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필자는 사실 로스코 예배당을 직접 방문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펠드먼의《로스코 채플》에 대해 글을 쓰게 된 데에는 하나의 강렬한 연주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몇 해 전 서울 외곽의 한 미술관 로비에서, 다양한 가상 악기를 활용해《로스코 채플》을 연주한 적이 있었다. 로비는 끊임없는 소음으로 가득했고, 특히 불안 증세가 있는 듯한 한 아이의 울음이 규칙적으로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곡의 마지막 부분, 히브리 선율이 연주되었을 때 놀랍게도 주변의 소음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불안하던 아이조차 잠잠해졌다.
모든 이가 음악 속으로 깊이 침잠한 그 순간, 필자가 감지한 것은 단순한 침묵이 아닌 외부로부터 밀려드는 듯한 고요함이었다. 그 경험은 오랫동안 필자의 뇌리에 남아 있었으며,《로스코 채플》을 논문의 주제로 선택한 계기가 되었다.
본 논문은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로스코 채플》의 미학적 특성을 ‘고요함’(stillness)이라 명명하고, 그 성격과 의의를 탐구하고자 한다. 여기서 ‘고요함’은 단순히 조용하거나 자연의 상태를 묘사하는 일상적 의미를 넘어, 펠드먼 음악의 음색과 질감, 공간적 암시, 그리고 청자의 정서적 수용을 아우르는 미학적 명명으로 사용된다. 특히 마크 로스코의 회화와 로스코 예배당의 공간적·종교적 배경을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는 《로스코 채플》은, 고요함이라는 다층적 의미를 지닌 명명을 통해 그 구조가 한층 더 풍부하게 드러난다.
글의 전개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1장은 필자가 펠드먼의 예술적 사유의 특성으로 제안하는 ‘음악을 보다’라는 역설적 개념에서 출발한다. 여기서는 ‘감각의 전이와 수렴’이라는 관점에서 펠드먼 음악 전반에 스며 있는 시각예술과의 연관성을 살피며, 이러한 특성이 작품 전반에 걸쳐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검토한다. 이어서《로스코 채플》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2장은 작품이 탄생한 종교적·문화적 맥락에 주목한다. 로스코의 채플 연작과 예배당의 공간적 특성을 중심으로, 이러한 요소들이《로스코 채플》의 작곡 과정과 미학적 성격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논의한다. 더 나아가 펠드먼의 중기 양식으로 이행하던 시기에 나타난 몇몇 작품들과 공유되는 특징들을 중심으로,《로스코 채플》이 그의 음악적 사유 속에서 지니는 특성을 규명한다.
3장은 작품 내부로 시선을 돌려, 본 논문이 제시하는 미학적 명명으로서의 ‘고요함’을 음악적 구조의 차원에서 탐구한다. 여기서는 고요함을 소리와 침묵 사이에 형성되는 경계적 영역으로 다루며,《로스코 채플》의 특성을 음색이라는 음악적 매개 변수를 통해 살핀다. 이를 통해 소리의 물성과 질감, 그리고 시공간 속 존재로서의 소리가 어떻게 ‘고요함’이라는 음색적 특성으로 드러나는지를 일곱 가지 범주로 나누어 고찰한다. 아울러 회화 및 건축 미학과의 비교를 통해,《로스코 채플》의 고요한 음향이 어떻게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체험으로 확장되는지를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작품 종결부에 약 3분간 등장하는 히브리 선율의 의미를 해석하며,《로스코 채플》이 펠드먼의 음악 세계에서 차지하는 독자적 위상과 그 시적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다.
본 논문은 음악을 ‘소리’라는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보는 펠드먼의 사유를 따라가며, 음악을 듣고 창작하는 행위가 하나의 생생한 체험이자 질문이 될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고요함이라는 상태로 경험되는 지각적 체험의 영역을 전면에 두고,《로스코 채플》의 다층성과 심층적 의미를 고찰한다. 이를 통해 펠드먼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인《로스코 채플》이 어떻게 다수의 청자에게 보편적인 울림으로 수용되는지, 동시에 존재와 예술을 향한 열린 질문으로 남는지를 묻고자 한다.
https://youtu.be/VhkGLztFdZM?si=_zCUgmtCWmkwEyk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