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참 웃기지

나를 지나간 3명의 은인중 첫 번째

by Steven Shin

난 소위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말하는 꼴통이었다.

항상 시험만 보면 거의 뒤에서 3등인 학생 하지만 국어만큼은 잘했었던 기억이 있다.


경찰인 아버지와 못된 계모 밑에서 자란지라 공부가 더 하기 싫었던 거 같다. 이건 아마 국를이라 생각이 드는데


보통 내 세대에 공부를 못하던 애들은 운동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민첩성, 유연성 체력, 습득력


학교에서 오래 달리기 하면 항상 1등이었고 힘도 덩치에 비해 강했었다. 그러던 탓이었을까 항상 오만하고 거만한 근자감만 가득 차 있었다.


태권도를 중 2까지 한 후 중 3부터는 복싱을 했는데 내 재능을 찾은 듯했었다. 맞는 게 즐거웠고 심장이 멎는 듯한 고통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네 체육관에 스파링을 하러 갔는데 나의 스파링을 눈여겨보던 체육관 관장님은 체고 전학을 제의했다.


그렇게 난 전학 준비를 다짜고짜 했고 인천체고에 테스트를 보려 갔다. 결과 참담했다. 전에 다니던 체육관에서 세게 맞으면 구역질을 했었는데


테스트 보다가도 구역질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난 테스트에서 떨어졌고 병원에 가서 ct를 찍은 결과

뇌출혈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난 복싱을 그만두었고 어릴 적 꿈이었던 특전사에 도전하기로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필기를 봐서 바로 특전부사관에 들어갔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 아쉽게도 일반 육군으로 들어가 현역으로 필기를 면제받으려 했는데


신에 뜻이었을까 코로나에 걸려 구역질을 엄청하게 됐다 정말 1주일간 24시간 동안 잠도 못 자고 구역질했다.


이유는 자대에서 코로나인지 확인을 해야 한다며 격리를 했는데 탈수까지 온 것이었다. 내가 구역질을 계속해도 외부병원으로 이송해 주지 않았다.


탈수를 거의 1주일간 겪은 것이었다. 당시 나도 코로나 때문인 줄 알았다. 그렇게 1주일 만에 살이 72킬로에서 60킬로까지 약 12킬로가 빠졌다.


외부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며칠이 지나서야 좀 진정이 됐다. 구역질을 하는 동안에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잠도 못 자고 10분에 한 번씩 토를 하러 갔는데 음식물도 없어


초록색 액이 나오더니 하루이틀이 지날수록 노란색과 초록색의 중간인 연두색 담즙 같은 게 나왔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외부병원에서는 뇌에도 이상이 있을 수 있다며 mri를 찍었는데 옛날의 다쳤던 흔적이 나오며 군 의료법 신체등급 5급으로 특전사 지원 자격이 박탈되었다.


본부에서는 내게 2가지 선택권을 줬다 병장 만기전역과 의병전역 중 선택할 수 있다 했다. 난 내 목적과 다르다 판단되어 의병전역을 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인생을 다 잃은 것 같은 번아웃이 오게 되었는데 많은 일을 했던 거 같다.


외할아버지 친구 이장님이 하는 해수욕장 파라솔 알바

그러다 해수욕장에 시즌마다 슈퍼를 하는 평택지사 항만 검수사 지사장을 하고 계시는 삼촌의 눈에 들어


검수사로도 일했다. 이때부터 내 인생에 대해 정말 진찰하고 고민을 하며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갔던 거 같다.


이대로 내가 다쳤다는 이유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아까웠다 남은 인생 80년이


그러다 골프장 캐디가 돈을 많이 번다는 소문을 들었다 월 500에서 600은 그냥 번다더라 어려서 그랬을까?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지라 사명감 있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이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특수부대는 못 갔으니까 그럼 경찰이나 교도관을 할까??


하지만 내게 공부할 돈조차 없었다. 수중에 있는 건 500만 원 남짓 이걸로는 6개월 수험준비도 턱이 없었다.


나에게는 돌아갈 집도 돈도 없었다. 친아빠는 계모랑 살고 엄마는 다른 분이랑 재혼하고 심지어 둘 다 자식도 새로 가지셨다.


이 말은 즉슨 양쪽 어른들이 내가 자기 집에 들어오는 게 달갑지 않다는 뜻이었다.


집이 없는데 나를 세상의 경험 속으로 던지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 리스크가 크고 잘못되면 내 시간과 돈을 회수할 수도 없다.


항만 검수사도 그래도 중소기업이니 아까웠다 나는 젊은데 여기서 15년 20년 버티면 저 삼촌처럼 지사장 처럼 돼서 편하게 살지 않을까???


정말 생각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했다. 난 깨달았다.

"아 난 편한 걸 추구하는 게 아니라 진취를 원하는구나 삶을 내가 만들어 나가는 걸 좋아하는구나" 이때까지만 해도 말만 하고 목표에 대한 실행은 하지 않는


말뿐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난 캐디를 하러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그 이후부터 내 삶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핸드폰의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