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나간 3명의 귀인중 1번째 2
그렇게 다짜고짜 퇴사를 하고 캐디를 하러 갔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1달의 무급 실습생생활을 했는데
5시간 동안 항상 뛰어다녔다 4명의 플레이어의 12개 정도의 채를 다 외워야 드리고 이 사람이 몇 미터 쳤는지 또 친볼이 어디 있는지
몇 미터 남았는지 이 모든 걸 하며 운전도 동시에 했다 물론 스코어 계산도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재밌었다.
다양한 연령 때의 동료들이 있었는데 20대 초반 중반 후반은 기본이고 가끔 40대도 보였다. 같이 기숙사를 쓰는 룸매 형이 있었는데
등장부터 신기했다 콧수염에 쇠골에 레터링 뭔가 교포 같아 보이는 느낌 엉뚱하면서도 신기했다.
웃긴 건 그 형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적어도 내게는 잘해 보였다. 맨날 학교에서 자고 시험지를 찍고 제출했으니 말이지
또 우리 골프장 기숙사는 회장이 별장으로 쓰다가 버린 거 같은 데를 썼는데 넓고 쾌적했다 인테리어도 나무로 내부를 쫙해놓고 2층짜리 단독 주택이었는데
바로 앞에 골프장이 있어 나무와 호수가 같이 보이는 정말 힐링되는 곳이었다.
난 그 형에게 물었다 영어 왜 이렇게 잘하냐고 신기하다고 정말 대화가 되는 거냐고 그러면서 유튜브에서 영어 영상을 보여 주며 테스트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우린 친해졌고 같이 숲에서 캠핑식으로 라면도 끓여 먹고 고기도 구워 먹었다. 가끔 밤에 몰래 필드에 나가 티를 꼽고 골프도 쳤었다.
왜냐하면 너무 시골이어서 할 것이 진짜 없었는데 외식은 걸어서 15분 걸리는 백숙집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튼 이 사람이 내 첫 번째 귀인이다. 내가 말했다
"나 영어 좀 알려줘 잘하고 싶어" 그 형의 대답은
"내가 너를 잘하게 해 줄 수는 없어 근데 공부하는 법은 알려줄게 하며" 한 유튜버 채널을 알려주며
이걸 끝낼 때까지 달달 외우라고 했다. 나에게는 뭔가 하기 싫은걸 꾸준히 해야 하는 습관이 필요했다. 정말 큰 도전이었고 귀찮았다
근데 이렇게 살기 싫었고 맨날 말만 하는 나 자신이 싫어 시작했는데 정말 be동사 , 5 형식, 주어, 목적어
Abc만 아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하루도 빼지 않고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했다. 결국 6개월 뒤 나는 기초문장으로 기초회화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항상 나는 그 형에게 검사를 맡으려 했는데 항상 내게 이렇게 답했다
"나한테 자꾸 검사 맡지 마 너 인생 네가 사는 건데 왜 나한테 검사해 달라고 그래 난 네가 공부를 하든 말든 상관없어" 이 말에 나는 아구 배트로 머리를 가격 당한 느낌이었다.
이거다 남들은 내 인생에 관심이 없다. 내가 잘되던 노력을 하던 안 하던 내가 정말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었다
이 이후로 영어공부는 내 습관이 되었고 꾸준히 하게 됐다 캐디를 그만두고 모은 1000만 원으로 3개월간 쉬며 교정직을 돈을 벌며 준비하려고 적십자 라이프가드를 준비해 땄다.
수영도 못하던 나였지만 패기 하나는 최고였다.
여기서 독자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왜 돈을 모아서 쉬면서 저렇게 날리지?
라이프가드 뭐가 대단하다고? 그리고 머리 다쳤다는데 왜 멀쩡해? 교도관 준비하러 안가??
내 답은 1000만 원을 쓰며 쉬면서 자격증을 딴 대신
그 자격증으로 앞으로 2년간 나를 성장하게 했으며 다른 걸 준비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둘째 교정직은
왜 공부하러 가지 않았나? 집이 없는 압박감은 생각보다 크다 돈을 쓰고 실패했을 때는 경험이 있겠지만 너무 리스크가 컸다 그리고
난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페인트를 옷에 튀기며 자연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교도관이라는 경찰이라는 것이 아빠에게 떳떳하고 싶어서 하고 싶은 일이었는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다쳤던 이력 때문에 채용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난 임용시험에 필수인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심화도 땄다 영어공부도 꾸준히 했고 언제는 뭘 할 수 있도록 아마 이때 내 진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다.
아 그리고 다행이던 복싱하다 다쳤던 뇌출혈은 아무런 부작용이 없었다. 캐디와 라이프가드 후에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거 같다 인간관계 때문에 싸우고 퇴사하고
난 아무것도 못하는 루저 뭐 하나 성과를 못 내는 패배자라는 생각은 잊히지가 않았다. 아마 내 계획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번 아웃이었던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