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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점선 Sep 06. 2024

일기

20년 12월

2020. 12.01

한 줄 쓰기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2008년 12월 1일 

부산영도 터미널에서 일본가는 크루즈에 탔습니다. 조선일보가 주최한 ‘신사유람단 방문길 체험단’에 들게 되어 6박 7일의 오사카 교또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600여명의 승객 속에는 남한의 사회과 교사들이 있었고 각 시도의 유공교사도 섞여 있었습니다.  600명을 수용하는 강당과 극장과 수영장, 갑판 위의 조깅장, 스기노이 뱃부, 동대사, 오사카성, 우스키 석불군, 유후인 고분군, 그리고 정호승 시인과 함께 한 일주일 

좋아하는 시인은 아니었지만 그 때 조선일보에 소속되어 있어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두 번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크루즈 안의 세미나실은 거대한 공연장이었고 두 번째 강의에서 시론을 강의 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말을 일기장에 있는 대로 옮겨봅니다. 

 2008년에도 시는 내 옆에 있었고 지금도 내 옆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 끗을 깊이 다가서지 못합니다. 그 한 끗 차이로 끝빨(?)을 못낸다. 글도 공부도, 인생도. 그럼에도 오늘 이렇게 살아가고 또 시를 써야지 하면서 다른 곳으로 피한다. 이것도 심리적인 데서 오는 인간형이라고 한다. 이것은 어린 시절 형성된 성격이고 성정일 것이다. 어느 순간에 파괴된 인성의 한 파편이 완성형을 만들지 못한다. 완성된 모습은 또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지만 지금의 이 모습도 거부하진 않습니다. 다만 가장 하고 싶은 이에 집중하는 자신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건 12월 2일 아침의 한 줄 쓰기에 올릴 글이다.

12월 2일에 쓴 일기를 찾다가 2003년 12월 1일에 쓴 일기를 찾았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달에는 물로 된 돌이 있는가? 

금으로 된 물이 있는가?      

     

                                                           - 遊星 / 파블로 네루다

     

불끄고 자리에 누우면 달은 머리맡에 있다.      

깊은밤 하늘호수에는 물이 없고, 엎드려 자다가 고개 든 아이처럼      

달의 이마엔 물결무늬 자국.      

노를 저을수 없는 달은 수심없는 호수를 미끄러져 가고,      

불러 세울수 없는 달의 배를 탈 것도 아닌데 나는 잠들기가 무섭다.      

유난히 달 밝은 밤이면 내 딸은 나보고 달보기라 한다.      

내 이름이 성복이니까, 별 성 자 별보기라고 고쳐 부르기도 한다.      

그럼 나는 그애 보고 메뚜기라 한다.      

기름한 얼굴에 뿔테 안경을 걸치면, 영락없이 아파트 12층에 날아든 눈 큰 메뚜기다.      

그러면 호호부인은 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는다.      

벼랑의 붉은 꽃 꺾어 달라던 수로부인보다 내 아내 못할 것 없지만, 내게는 고삐 놓아줄 암소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산다.      

오를수 없는 벼랑의 붉은 꽃처럼, 절해고도의 섬처럼,      

파도 많이 치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절해처럼.     

     

                                                                                                                       - 이성복


2020. 12.02.

어제 국어 시간,  띄어 읽기 단원에서 띄어 읽기가 되지 않았다. 모두 다 읽기를 해 보았다. 유일하게 읽기가 안되는 다온이 차례가 되었다. “다온아, 읽을 수 있는 글자만 읽어 봐. 모르는 건 선생님이 가르쳐 줄게.‘ 조심스럽게 말해 주었다. 혹시 또 삐질까봐서였다. 다온이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7줄의 짧은 문장이었지만 다온이는 한 자도 틀리 않고 띄어 읽기까지 지키며 다 읽어 냈다. 난 글을 읽고 있는 다온이를 향해 엄지를 슬그머니 올려 보여주었다. 가슴에서 뭉클한 놈이 치솟아 오르다 눈가로 삐져나올려고 했다.각막이 젖으려고 하는 걸 겨우 늘렀는데 다온이의 눈도 나와 똑같이 뜨거운 어떤 걸 감추고 있는 눈이었다. 나도 다온이도 뭉클한 순간이었다. 우리 반 이이들이 박수를 쳤다. 다온이 글을 잘 읽었으니 오늘 상금으로 자유시간 다섯 개 줄게. 나중에 받아가.” 했는데 다온이는 자유시간도 안 받고 집에 가 버렸다. 우리 반에서 유리하게 한글 해득이 안되어 고민하는 아이였다. 2학기가 되어 받침 없는 글자를 읽어나갔다. 다른 학생은 방학 중 한글교실에 불러 지도 했지만 다온인느 기독유아원에 있는 아이였다. 유아원에서 보재주지 않고 오히려 도움반(특수반)에 넣어 달라느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2학기에 한글 기초 학습지로 잠깐 지도를 했지만 제대로 하지는 못했다. 오후엔 버스로 같이 가야하기 때문이 남길 수도 없었다. 11월초, 아침에 교실에 오기를 꺼려하는 것 같았다. 꼭 어디서 놀다가 늦게 들어왔다. 아이들보고 찾아오라고 했지만 한번도 나무라지는 않았다. 이야기 나눌 기회도 없었다.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것을 만지작 거렸다. 지적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다온이에게 한 마디 했다. “다온아. 우리 반에 한글 모르는 학생이 너만 있는 게 아니야. 그 아이들도 받침없는 글자, 어려운 말은 잘 못 읽어.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과 같이 공부하는 거야. 같이 읽고, 같이 쓰고 하고 있어. 그러니 너도 그렇게 하면 좋겠어.” 난 급하게 야단치는 본래의 태도를 꾹 누르고 한 마디 했다. 아무래도 그 말이 다온에게 용기를 주었던 걸까? 교실에 늦게 오는 걸 금방 해제하고 들어왔다. 그리고 어제가 되었다. 난 오랜 만에 감동이라는 걸 해 봤다.     


2020. 12.04

 대한민국에서 수능을 치루면 못 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수능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격어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 어제 수능을 치룬 학생들이나 부모님들은 가슴조리는 하루를 보내고 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치러야 야 할 또 다른 일들을 준비해야겠지요? 국가가 문을 만들어 놓고 ‘이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리라.’ 국민을 몰아넣은 건 아닌가 싶다가도 우리나라처럼 혈연, 지연, 학연에 연연하는 나라에서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선 수능라는 관문이 필요악인가 싶기도 합니다. 

 수능을 치룬 모든 학생들과 부모님들 한 고개 잘 넘으셨습니다. 수능을 포기한 학생도 많다고 하네요. 모두 힘내시길,,, 포기하지 않기를  

세 아이 수능 동안 100일 기도한다고 아침 밥도 제대로 못 차려 주고 절에 간 것이 못 내 마음 아픈 옛날의 이 어머니도 이젠 그만 미안한 마음 내려 놓길.. 인생은 이렇게 후회의 연속

끝까지 미완의 길 그렇지만 돌아보면서 가야하는 길이네요. 오늘 또 열심히 살아봐야겠습니다.          


2020.12.07. 아직 7일이어서 다행이다.          


2020.12,08 

담다만 무 김치, 쪽파

읽다 만 책

쓰다 만 법화경 

무거운 몸

밀리는 일

어지러운 머리     

지금은 까뮈의 

페스트를 읽고 있다.     

     

2020년 12월 9일 수

정미진 교수님 과제 정리

김현주교장선생님 전화-한국어학과 관력 교재 부탁     


2020년 12월 10일 목

방학계획서, 연수, 김현주교장 한국어교재 주다.     


2020년 12월 11일 금

『입 속의 검은 잎』 발간 30주년 기념 사화집을 읽는다. 

이 책은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를 읽지 않고는 다소 소통이 되지 않는다. 기형도와 소통하는 작가의 내면을 표현했다고 하나 역시 시는 애매모호하다. 내가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지 않고서는 젖을 수 없다. 나는 말리피센트처럼 시의 어두운 내면을 휘젓고 다니고 싶다. 그리고 시의 편에 서고 싶다만 아직 마력은 오지않았다. 가시 숲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      

나무 의자 하나가 있는 풍경     

스님 법당 앞에 언제가 나무의자 두 개가 있었다

무심하게 지나다니다 누군가 

의자 하나가 없네

스님이 또 누구 하나주셨겠지 

아침에 갑자기 의자가 놓인 풍경이 따라나온다 

스님이 읽으시는 무수한 책들이 따라나온다

나는 그 많은 책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읽어보라고 권하시지도 않는다

지난 일기장 속에는 ‘스님께 빌려온 책’이란 구절도 있었다

이전엔 가끔 책도 빌려 읽었나보다

기억은 그 책들을 기억하지 않는데 기록은 남아 있다

반짝반짝 결에서 윤이 나는 나무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신 것은 아니다

흰 법당 앞에 놓인 나무의자가 내 머리 속에 박혀있을 뿐이다

그 풍경이 가슴을 적실 뿐이다     

아침에 그 풍경이 떠오른 건 이 사화집을 집중했기 때문일거다

『입 속의 검은 잎』를 찾다가 1975, 1976, 1977년 여고 시절 일기장을 찾다

신혼 무렵 썼던 일기만 찾으면 된다

그 일기만 찾으면 거제도 최아란 선생님을 찾아가 차 한 잔 할 것이다

한 줄 쓰기 하라고 했을 때 이런 저런 대화 

속에서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2020년 12.11

9시가 넘어 학교 뒷산에 올랐다. 내려오다가 유치원 학생들을 만났다. “안녕?”하고 인사를 하는데 한 아이가 말한다. “아, 1학년 1반 학생이다.” 그러고는 실수한 걸 알았는지 동동동 뛰어 숲으로 들어가서 선생님이 불러냈다.     

      

2020년 12월 13일 

겨울 준비     

각자의 겨울 준비가 있다. 가을 무를 빼고 무청을 말려 시래기를 만들고 나무들도 옷을 벗고 침잠에 든다. 김장을 하고 옷장을 정리하고 과제를 제출하고 평가를 하고 방한을 위하여 가난한 사찰에서는 문마다 방한 비닐을 붙인다. 

어제는 종일 나무의자 앞을 오가며 비닐을 붙였다.           

겨울날 제주도 딸이 귤과 멸치를 보내오고 사과를 깎는다. 겨울 노래를 듣는다      

겨울밤은 길어서 좋다. 초저녁에 잠깐 눈을 붙였다 일어나면 고요한 새벽이 기다리고 있다. 여름엔 더워서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기 때문에 바깥의 소음 때문에 이 정적을 만나기 어렵다. 아, 고요하다 싶으면 차 한 대가 선을 그으며 지난가곤 했다. 지금은 자판기를 두드리는 소리 외엔 아무 소리가 없다. 고요가 좋다. 그러다가 듣는 아침의 새소리가 좋고 어쩌다 산에 가서 듣는 물소리가 좋다. 요즘은 재잘재잘 저희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머리를 모으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아이들 소리가 좋다. 그리고 가사없는 연주곡이 좋다. 짜잘하게 쪼갠음표를 악기로 소리 낸 것이 좋다. 가사는 머리로 들어야 하지만 연주는 가슴으로 느끼는 음악이다. 리듬과 가락의 조화로 가사를 못 알아듣는 팝송도 좋다. 혀를 잘 굴려야 발음되는 샹송도 좋다. 고요를 견디기 위해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마음의 소음을 견디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고요라는 소파에 푹 앉아 있으면 구름 위를 산책하는 기분이다. 집중하고 난 뒤의 나른함은 달콤한 아침잠을 부른다. 약간의 한기가 몰려오면 그때는 잠깐이불 속에 몸을 들여도 좋은 겨울 밤의 한 자락 

    

202년 12월 14일 월요일

인도에서 천년전 불상이라면 손바닥 반만한 불상을 흥정하여 5만원에 샀다

가이드에게 보이자 모조품에요. 오천원도 안해요

감쪽같이 진흙이 굳은 --함같은 색상을 하고 한 귀퉁이가 조금 떨어져나간

되찾을 수 없는 기억의 한 모서리, 사라져버린 믿음의 한 부서러기가 있다한들 

그것도  내 것이다

불상은 지금도 거실 한 쪽에서 먼지에 묻혀있다 가끔 향도 피워올린다 진품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것인가 아닌가가 더 중요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내 것이어서 소중하다 금강경을 독송하던 인도 

사슴사원의 초록언덕길과 상인들은 내 추억이어서 소중한 것이다

아난다 대학의 붉은 건물들 흔적과 남아서 증거가 되는 무너진 건축의 일부들

학문이 이루어지던 곳의 자세 벌을 받던 쪽방의 자세는 작고 어둡고 웅크린 등의 일부가 갈비뼈를 가리고 있다 값싼 모조품이라고는 하나 기억 속으로 들어와 진품이 되었다 아다 아니다라는 문제보다는 있다 없다 의 문제 소크라테스의 악처의 문제와도 같다 거친 밥이라고는 하나 굶는 것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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