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1월
2020년 11월 11일 수요일
갑자기 여유가 찾아왔다. 아니다 너무 오랜만에 아침에 책을 편다. 지난 일요일 여적암 지지난 일요일 하동 학술대회 하동호와 회남재
화요일 아침 김치 담그기 동치미 담그기 목요일 아침 물붓기 동치미는 새로운 도전이다.
2020년 11월 12일
동치미 물은 퇴근 후 붓기로 한다. 어제 오후 구수민씨가 학교에 왔다. 대추를 전달 받았다. 내 차에는 대추가 19봉이 있다. 난 5봉을 샀다. 많아 보이지가 않지만 대추칩을 만들어 보고 모자라면 다른 데서 더 사면 된다. 수민씨가 준 토종 생강 덕분에 김장과 생강차를 먹게 되었다.
“페스트‘는 아직 읽는 중이다. 학기 중에는 과제의 부담과 일과롤 독서에 집중하지 못한다. 일요일 마다 절에 가는 일이라니.
아침에 10분이라도 독서를 하기로 했다. 법화경 사경은 집으로 가져와야겠다. 학교에서도 얼마 쓰지 못하고 새벽에 쓰고 싶을 때 못쓴다.
일요일 후원과 때 낀 화장실을 힘들게 청소했는데 연화장이 후원 화장실에 갔다. 우리가 쓰는 바깥 화장실이 아닌 후원 화장실을 쓰는 것을 보고 조금 화가 났다. 그렇게 더럽게 써 놓고 청소도 안하면서 그 화장실을 쓰다니 난 그런 사람이 밉다. 연화장이 우리 절에서 부리는 꾀도 질린다. 고모를 밀어내고 그 못된 입으로 밀어내고. 스님은 그런 것도 모르고 신뢰하고 믿는 것 같다. 아예 절로 들일 것 같다. 난 그러면 절에 발길을 끊고 싶다.
2020년 11월 28일 토요일
소요가 일어난 세상 속에서 오히려 한 개인은 란 순간에 머무를 수 있어 좋다. 벌서 한 해를 마무리해야하는 시점에 닿아 있는 것이다. 가로수의 이파리도 다 떨어져 내렸고 빈 가지 나목들은 어두워 오는 도심의 불빛에 세심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서 있다.
변화무쌍한 세상이다. 스스로에세 집중해야 하는 겨울이다.
김장을 한다. 대학원 보고서를 낸다. 그리고 논문 정리를 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글을 쓴다.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다. 무엇 때문에 못했다는 말은 자신의 책임을 다른 것에 전가하는 일이다. 내가 절실하고 내가 하고 싶으면 어떤 조건도 뛰어넘을 수 있다.
이제 한 숨 자고 새벽장에 나가 쪽파와 미나리, 당근, 비트를 좀 살 것이다. 찹쌀풀을 끓이고 무채를 쓸고 고추 채를 쓰고 백김치와 김장을 할 것이다. 어제 롯데마트에서 무를 살 걸 후회된다. 김치밑에 삭혔다가 봄에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
굴도 조금 사야겠지?
읽다만 책들과 읽어야 될 책들이 방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연말에 나는 얼마나 책을 읽어낼까? 다른 데 눈을 팔까?
다시 시작하자. 이 고요한 새벽에 앉아 있으니 차분해 진다. 다시 졸음이 온다. 눈의 피로와 음악
2020,11,29
김장 시작 전
통을 준비하고 이제 굴을 씻고 버무린다. 통깨, 쪽파 준비 생김치에 넣을 것이다. 통이 부족해 보인다.
2020.11.30. 월
이 자리에 계속 머무르고 싶지 않아서 마른 이파리가 된다
성당 앞 은행잎이 되어 24시 마트 앞 불빛에 호주머니를 뒤지는
검은 작업복 차림의 아버지가 되었다가
24시 통금에 걸려 딸을 뻘뻘 흘리며 도망온 젊은 아버지의 저녁
다섯 자식 재우고 기다리던 어머니의 마른 손바닥이었다가
부엌 재 더미 안에 묻어둔 씨고구마 훔쳐먹다가 부지깽이에 쫒기는
다섯 살 손녀딸 다우다 치마 스치는 소리가 된다
초겨울 햇살에 낮잠을 자는 물새를 바라보는 시선 아래에서
이미 말라 있거나 금방 떨어져 색이 빨간 단풍잎 사이로
굴러가는 커다란 잎 하나
이미 떠나고 있는 자의 모습
가진 것을 다 말리고 몸에서도 떨어져 나와
하늘과 물 대신 딱딱한 시멘트 바닥과 쓰레기통
수없는 발길과
무심한 눈빛과
어김없는 시간 아래에 자신을 맡기고
바람이 부는 대로 구르다가 썩을 곳에 닿으면
한 줌의 거름이 되는 대로
한 줌의 흙이 되는 대로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은둔자, 신의 눈동자가 된다
남은 기억의 찌꺼기마저 다 흘려 보낸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과 마주한다 불이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해탈이고 완전한 자유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기 시작한다.
14쪽
그 이후로도 이상한 징후들은 조금씩 있었다. 평소에는 쓰지도 않던 이모티콘을 잔뜩 썪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분명 김지영씨의 솜씨도 취향도 아닌 사골국이나 잡채 같은 음식을 만들기도 했다. 정대현씨는 자꾸만 아내가 낯설어졌다. 아내가, 2년을 열렬히 연애하고 또 3년을 같이 산, 빛방울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눈송이처럼 서로를 쓰디듬었던, 자신들을 반씩 닮은 예쁜 딸을 낳은 아내가, 아무래도 아내같지가 않았다.
최아란 선생님 연락이 왔다. 이제 내가 쓸 차례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