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점선 Sep 06. 2024

일기

20년 10월

2020. 10.4 (일)     

오랜만에 차분하게 새벽을 맞는다 

빋토리아 토가레바의 ‘티끌 같은 나’를 다시 읽는다. 5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티글 같은 나”의 안젤라. “이유”의 마리나 둘 다 인생을 숨가프게 달려오지만 남는 건 허무한 기억뿐이다. “첫 번째 시도”를 읽기 시작한다. 마를라 페트로브나 ‘를’은 묵음이 되고 마라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아버지는                                         

2020년 10월 7일 

이병주의 알렉산드리아를 읽기로 했다. 준화가 교대 도서관에서 빌려주었다. 당분간 이병주 소설을 읽기로 했다. 하동에 대한 시를 써 보기로 했다. 외갓집 북천 고향 큰고모집

기억에 담아놓으려고 하지 않아도 들어있다. 쌍계사와 어머니 칠불사와 어머니 쌍계사와 두 할머니

쌍계사에 가야겠다. 탑 아래서 두 할머니가 섰듯이 나도 서 봐야겠다. 그 옛날의 두 할머니가 섰던 자리에 서고 싶다 어머니가 가 보라던 쌍계사 가면 차 한잔 얻어 마시라던 쌍계사 한번도 제대로 못갔다. 비가 내리기시작하던 날 아침 나절에 대학원 학술 대회 뒷날 원우들과 교수님들과 잠깐 다녀왔다.      

알렉산드리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밤이 깔렸다.

짙게 깔려진 밤을 바탕으로 수백만의 전등불이 알렉산드리아의 밀도와 지형 그대로의 현란한 수(繡)를 아로새긴다. 밀집한 성좌와 같은 그 현란한 등불으 ltn는 중천에까지 하레이션을 서리우고 하레이션 저편엔 어두운 허공, 그위에 드높이 천상의 성좌가 고요하다.

 고요한 천상의 성좌와 알렉산드리아란 이름의 요란한 지상의 성좌 사이에서 이제야 겨우 나는 나를 찾은 느낌인데, 되찾은 꼴이라야 허탈해버린 에트랑제가 초라한 호텔의 다락방 창가에 앉아 있는 것이다. 

 나는 아까 읽었던, 형에게서 온 편지를 다시 집어든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있는 서대문 형무소의 두터운 벽을 뚫고 나온, 그리고 몇 개의 산과 들, 대양을 건너 이 고도의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돌고 돌아 내 손에 쥐어진 편지, 낡은 달걀 빛깔의 봉함엽서 가득히 깨알만한 글자로 꽉 채운 편질르 보고 있으면 편지의 모양 그것이 형의 답답한 심상을 그대로 말하는 것 같다.

“... 영하 20도라고 한다. 감방은 영락없이 냉동고다. 천장만 덩싷하게 높고 이 비좁은 감방에 세 사람이 웅크리고 앉았는데 그 입김이 유리창에 서려 하늘로 통하는 유일한 창구는 하얗게 두툼하게 얼어붙었다. 조금 받아놓은 물도 돌덩이처럼 얼어붙었다. 변기도 얼어붙었다...(7쪽 8쪽)     

폐장과 심장을 압박하는 자세(8)

스스로 묘혈을 파는 것 같은 학문(17쪽)

조국이없다 산하가 있을 뿐이다.(21쪽)          

압착기     


20220년  10월 10일 토요일

어제는 대원사 계곡 둘레길을 걸었다

초록색을 실컷 보았다. 계곡물과 흰 바위 푸른 비취색 물빛  하늘이 푹 담겼다 제 몸빛을풀고 간게 분명해

평사리 최참판댁 시화전을 읽고 왔다. 혼자 달려보는 것 오랜 만이었다.

돌담길과 꽃과 들판 감이 조롱조롱 매달린 감나무 가로수길     

그리고 쉬고 잠이 깨옸다.     

김재혁의 시집을 읽고 싶다. ‘딴생각“ 

읽고 싶은 책이 많아졌다. 할 일도 많다. 엉킨 실타래처럼 일 속에 꼬여가는 느낌이다. 

난 정리가 필요하다  버리지 않고 정리하는 방법을 없을까?

절에 다녀온 후 여름 옷 넣기. 세탁하기‘

그리고 다음주 수업 준비

코로나 사태가 진전 되면 교대도 대면 수업을 한다.      

이병주의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있다. 소설가 속에는 여러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도 형도 소설가의 반영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2020년 10월 11일 일요일     

김용진 교장선생님모친 49제를 여적암에서 보낸다. 일요일 절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전화가 6통이나 들어와 있었다.

내가 전화를 안 받으니 스님께 전화를 했다. 슬비에게서 태아 사진 문자가 와 있었다.

추석 때까진 몰랐다. 최근엔 태몽이랄 만한 꿈도 꾸지 않았는데 애기는 벌써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다. 온 가족의 가슴에 벅찬 감정과 부드러운 기쁨을 안겨 주었다. 온 가족은 한번 들썩였다. 한 우주가 두 사람의 생명의 합체가 자라고 있다. 더 이상 기쁜 일도 더 이상 무거운 일도 더 이상 신중한 일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2020년 10월 12일 월요일 

순대랑 곱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오늘 아침엔 남편에게 부탁하여 ‘축하금’을 보냈다. 입덧할 때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고 준 것이다. 금액이 더 컸으면 좋겠지만 형편만큼 보냈다.  

초저녁 운동 가기 전에 한 시간을 잤다. 잠을 청했으나 잠들지 않았다. 강의자료를 한 번 보고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기로 했다.

세 시가 넘으니 배도 고파온다.      


2020년 10월 28일 새벽 3시 36분 

오랜 만에 잠이 깼다. 조퇴를 하고 집에 왔으나 피곤했다. 거실에 남편과 며느리가 누워 있고 큰 방엔 승훈이가 자고 있고. 난 미장원에서 머리를 좀 자르고 올까 했는데 원장님께서 서울 가셔서 미루고 왔다. 

준화가 과 사무실에서 학회 카드를 가지고 왔다.

다이소에 가서 잠깐 초와 몇 집게, 다시 할 수 있는 천 주머니와 찜 받침 천을 샀다.

이번 주 강의 자료를 챙겼다. 

그 때 준비했던 모형별 지도안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듯 손등에 검은 버짐이 짙어지고 있다.

2020년 박경리 문학관 입주 작가 외 사화집이 도착했다. ‘위험한 한 철’과 ‘수철마을’이 실렸다. 

페스트를 다시 읽어야겠다. 이방인을 20대에 열심히 읽었다.


13쪽

오랑은 아무리 보아도 낌새가 없는 도시, 즉 완전히 현대적인 도시다. 따라서 우리 고장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지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이른바 성행위라고 하는 것 속에 파묻혀서 짧은 시간 동안에 서로를 탕진해 버리거나 아니면 둘만의 기나긴 습관 속에 얽매이는 것이다. 그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중간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도 역시 독특한 것은 못 된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랑에서도 시간ㅇ ㅣ없고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