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2월
2022월 2월 6일 일요일
우리의 관심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아니 어디로 이끌기나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253쪽)
266쪽 조용한 결의 순간을 창조와 동일한 것으로 본다.
간디가 읽은 책<바가바드기타>
2022년 2월 7일 월요일
이 대목에서 과연 친구가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20년 전 목욕탕에서 만난 5명의 갑장들이 '갑장계'라는 것을 하고 있다. 나는 이 모임이 정말 싫었다.
가장 역할을 하고 사는 친구들은 어느 정도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에 매일 일하고 정기적으로 얼급이 나오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노인보호사, 치매관리사 같은 일이 매일 할 수 있고 월 80만원 정도의 수입이 보장된다고 했다. 한국어강사는 찾아보면 자리는 많은데 정규직 보다는 시간제이기 때문에 수입은 불안하다.
퇴직 후 가장 니기있는 직업으로는 지게차 운전사 건축기사, 한식조리사를 1위로 꼽는다. 다 자격증이 필요한 일이다.
2022년 2월 8일 화요일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285쪽 간디는 결과를 지향하지 않았다. 과정을 지향했다. 그는 인도의 독립이 아닌, 독립할 자격이 있는 인도를 추구했다. (...) 간디는 이기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자신이 싸울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싸움은 싸우기 위해 싸웠다. (280:4단락)
간디는 피비린내 나는 수단을 이용해 인도의 독립을 쟁취하느니 계속 영국의 속박을 받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285:1~2)
12-
루소처럼 간디도 평생을 걸었다. 루소와 달리 간디의 걸음은 신속하고 결단력이 있었다. 단호한 항의 걸음이었다. 1930년의 어느날 아침, 간디와 80명의 추종자들은 아마다드에 있는 간디의 아시람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바다로 향했다. 하루에 20킬로미터씩, 어떤 때는 그보다 더 많이 걸었다. 이들이 해안에 도착했을 무렵 80여명의 추종자는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간디가 아라비아해에 몸을 담근 뒤 영국법에 대한 노골적 위반 행위로서 바다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천연 소금을 한 웅큼 퍼드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이 위대한 소금 행진은 독림을 향한 길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간디는 행진에 공감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 간디는 봄베이 근처에 있는 다라사나 소금 공장에 쳐들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통신사 UPI의 통신원이었던 웨이브 밀러는 눈앞에서 충돌을 목격했다. 그는 간디의 추종자들이 아무 말 없이 속므산을 향해 걸억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경찰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폭력은 분노를 정당회 시킬 수없게 했다.
마음을 녹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진보가 늘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소금 공장 급습과 경찰의 잔인한 대응 이후 겉으로는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인도는 연전히 영국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었다. 영국은 도덕적 우위를 잃었고, 증오에 증오로 답하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피로 응수하고자 하는 욕망도 함께 잃었다.
비폭력은 하나의 원칙이며, 중력의 법칙처럼 침범할 수 없는 법칙이다. 만약 간디의 생각이 옳다면 런던ㄴ에 살던 도쿄에 살든, 18세기에 살든 상고나없이 중력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비폭력 저항도 언데 어디서나 성공을 거둘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2022년 2월 12일 토요일
학회가 있는 날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을 다시 읽는다.
친절이라는 근육
이 말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14쪽에 나오는 말이다. ‘연로한 부모를 돌보는 일은 힘든 일이며 그 효를 다하는 것은 효 자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친절이라는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서이다.’ 사람 교육은 어릴 적 가정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어릴 때 어머니께 받은 교육 중 하나는 방에 앉아있다가 사람이 들어오면 무조건 일어나 인사하거나 반기라는 것이었다. 요즘도 부모들은 그런 교육을 시킬까? ‘사람이 누워있으면 머리 위를 지나가지 말라. 사람을 넘어다니지 말라.’ 등 사람 몸을 존중하는 교육을 많이 받았다. 그 중에서 집에 온 손님에게는 집에서 가장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고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시원한 물이라도 한 사발 대접하는게 우리 문화였다. 어린 시절 고향 집 풍경은 초가지붕이던 본 채는 그대로 두고 아래채가 두 번 바뀌었다. 증조할머니께서 긴 담뱃대를 물고 사탕을 주시던 아래채는 어느해 물레가 놓이고 삼을 잣던 아래채로 바뀌고 마굿간이 없어진 대신 헛간이 하나 더 생겼다. 그 헛간에는 짚이랑 재를 모아두는 곳이었다. 본채라 해 봐야 방이 두칸이었고 부엌이 있을 뿐이었다. 겨울이면 지나가던 거지 가족이 우리 아래채 헛간에서 겨울을 나고 갔다. 기억에는 없지만 음식도 나눠 주었을 것이다. 친절한 마음을 보여 준 극치는 산청군 생벼랑이란 곳에 시집갔던 오촌 고모가 호적에 올리지도 못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친정 동네에 왔을 때 아버지는 동네 끝 밭에 집을 지어주고 살게 했다. 다행이 아들이 장성하여 집을 짓고 고향동네에 그대로 살고 계신다. 고모가 살던 터에는 ‘여적암’이란 암자가 들어서고 고모는 여적암에서 90이 다 되어가는 몸으로 일만 있으면 올라오셔서 밤을 치시고 약수터 주변을 청소하신다. 구부러지고 허리, 다리 수술을 몇 번 받으셨지만 그 몸을 이끌고 절에 오셔서 몸이 닿는 데까지 도와 주신다. 그 여적암은 내 동생이 스님이고 절을 지으셨다. 고모는 주지 스님의 고모이기도 하다. 올라오시면 차를 먼저 마시고 공양간에 가서 일을 찾으신다. 여적암에서 늘 듣는 소리도 “좀 친절한 마음을 가져라.”는 것이다. 차를 마시다가 떡 배달차가 오거나 모르는 사람이 오면 우리는 으레 자기 할 일을 하고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럴 때 몇 번 스님이 꾸짖음을 들을 때가 있다. 어찌 사람이 왔는데 차 한잔 줄 생각을 못하는냐? 음식을 먹을 때도 친절한 마음으로 만들고 담아 드려라 하는 주문을 계속 하신다. 스님의 일상을 돌아보면 실천하는 일 밖에 없다. 옆 사람을 배려하고 친절을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필리핀 틱낙한 스님이 얼마전에 입적하셨다. 우리 스님도 틱낙한 스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시면서 불교가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져야 한다고 실천하신다. 여적암에서는 연꽃 기행을 11년간 열 한번 다녀왔다. 엄마와 아들, 엄마와 딸 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친정어머니와 딸, 친구, 동료 등 항상 짝을 정해 걸어다니는 동안 손도 잡고 이야기도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짧은 여행을 여름마다 진행하였다. 일대에서는 소문이 나서 한해는 버스가 11대나 동원이 되었다. 실제 어마어마한 숫지였고 어마어마한 준비가 필요했다. 회비가 있기 때문에 간식거리나 음료, 과일, 반찬과 밥, 물까지 제공이 다 되었는데 보시금까지 받아도 늘 부족한 운영이었지만 스님께서 괘념치 않으셨다. 살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줘야한다는 것이었다. 여행에서 가장 인기있는 반찬은 장떡이었다. 미나리, 전구지, 고추 등을 넣어 만드는 전이었는데 간을 된장으로 맞추었고 제법 짠 맛이 강했지만 여름철 음식으로는 짠 맛이 제격이었다. 실로 장떡을 구울 때는 온 동네 어른들이 동원되었다. 가스버너가 거의 10개가 넘었다. 11대 버스 여행객을 먹일 나물과 오이 냉국을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셨고 식혜도 직접 만들어 얼려 가기도 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한 잠을 못 주무시고 일을 하셨다. 수저를 담은 통만 22개 였다. 그런 대규모 이동은 한 해로 끝났지만 남한에 있는 연지는 거의 다 돌았다고 봐야 한다. 스님의 여행 계획은 가족간의 마음잇기, 서로를 가까이서 챙겨주는 마음 갖기였다. 그리고 인과응보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꽃은 사람들에게 잘 살아야하는 가르침을 주는 꽃이어서 자신의 본 모습을 마주하라는 뜻에서 연꽃 여행은 선공부 가은 여행이었다. 스님과 어머니와 보살님들은 며칠을 장을 보고 미나리를 베고 준비를 하신다. 그 힘들고 불편한 준비를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좋은 기획을 성공시키고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점심 한 끼를 대접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친절한 마음과 스님의 뜻이 담긴 일이었다. 어린 시절 별로 친절하지 않았던 내가 여름 여름 장삼을 길게 입은 비구스님 두 분이 우연히 우리 집에 들리셨는데 나는 아주 정중하게 물을 떠서 그분들에게 드렸었다. 어른들께서 웬일로 네가 그렇게 친절하냐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거의 55년이 넘은 일이어서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회색 장삼의 이미지와 물을 내오던 흰 사발의 이미지와 칭찬받은 기억은 어렴풋이 난다. 급식소에서 영양사 선생님의 의도에 따라 저학년에게는 자른 자그마한 김치, 잘게 자른 나물, 뼈를 발라 낸 생선을 내 놓을 때 기분이 좋다. 어린 학생들을 배려한 것이다. 노인의 식단을 만들때도 비슷한 배려를 해야 한다. 여적암 텃밭에는 여름이면 가지가 늘어지고 겨울초 같은 푸성귀가 풍성하다. 스님은 떡을 찌고 식혜를 만들어 노인 요양원에 보낸다. 그 옆에서 나는 어떤 친절한 마음을 베풀고 있는가 되돌아본다. 결혼 후 이런 교육을 받은 친절한 마음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본다. 경제적으로 농사 짓고 시골에 땅이 조금 있어봤자 도시에 비하면 경제력이 비교할 수가 없다. 여적암을 중심으로 고향 어른들이 늙은 몸을 이끌고 모여들고 있지만 나는 거의 배타적이고 계산적이다. 내 시간을 최고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함께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예의에 어긋난 일은 하지 못한다. 그리고 가끔 맛있는 간식을 사드리거나 용돈을 아주 조금 드리기도 한다. 그것도 친절한 마음이라면 나는 지금 아주 조금 친절한 사람이다.
공자는 어진 마음만이 권력과 명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논어에 가장 많이 등자하는 말은 인(仁)은 사전에 공자님의 가르침이고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하는 마음이라고 나와 있다. 산에 오를 때 돌이 구르지 않게 치워 주거나 눈을 찌를만한 가지를 잘라 주는 일, 건물에 들어설 때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으면 문을 잡아 주는 일, 노인의 짐을 들어 주는 일, 이런 친절을 제도화 시켜 노인을 돌보는 일 세상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친절을 베풀면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은 규칙이나 법을 지키는 일을 귀찮거나 싫은 일로 치부한다. 하지만 중국 고전 예기에 나오는 예(禮)를 보면 요즘 그렇게 강조하는 ‘안전한 생활’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우리도 모서리에 앉지 말라, 문을 손으로 붙잡지 말라등의 내용은 그 행동 뒤에 나올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지켜야 할 예라고 본다. 공자는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친절과 직접 관련이 있다. 친절은 담길 그릇이 필요하다. 공자는 그 그릇이 예라고 생각했다. 가족은 우리의 인(仁)을 계발하는 헬스장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소크라테스 익시프레스 314쪽 13행-)
사람을 함부로 하지 않는 마음이 인이라면 인은 예에서 나온다. 사람이 사람에게 지켜야할 기본 도리가 예이다. 사람의 마음은 이 예(禮)에 담는다. 가정에서 가족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친절이라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에서 시작하여 이웃, 국가로 모든 지각있는 존재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시킬 때 친절은 연못에 던진 돌멩이처럼 점점 커다란 원을 만들며 퍼져 나간다.(소크라테스 익시프레스 314쪽)고 했다. 한 생명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으면 모든 생명에세 연민을 느낄 수 있다.(소크라테스 익시프레스 314쪽)
이 나이쯤엔 신체적으로는 아직 건강하면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책임은 낮아지는 시기이다. 이럴 때 나의 친절을 확장시켜 나가도 좋을 것 같다. 한참 멈추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한참 사라졌던 나의 친절한 착한 마음을 회복할 시기이다. 사람 1도 만나기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부모님이 가르치고 실천하신 친절을 다시 회복하고 싶어진다. 우선 그 마음부터 찾는 거다.
2022년 2월 15일
쇼나곤은 융통성 있게 고집스럽다. (중략) 그러므로 “배꽃에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라고 말한다. 과연, 깊게 생각해본 쇼나곤은 배꽃에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호의를 가지고 주의 깊게 쳐다보면, 꽃잎 끝에 꽤나 사랑스러운 광채가 아주 희미하게나마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338:8~15)
쇼나곤의 글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주의깊게 읽어보면 뭔가 빛나는 고아채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볼 준비가 된 것만 본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작은 것을 볼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하지만 쇼나곤은 그렇지 않았다. 쇼나곤은 삶이 수만 가지 작은 기쁨의 총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340:12~15)
쇼나곤은 우리에게 세상을, 자신을 세상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이것 좀 봐, 정말 놀랍지 않니? 너무 작고 너무 아름다워.” (347:5~6)
매일같이 세이쇼나곤의 눈에 비치고 귀에 들어오는 다양한 모습들.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흥미로운 풍경과 현상, 그리고 아 맞아 하고 무릎을 칠 만한 발견, 자신도 모르게 흐뭇해지는 감동,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을 때의 기쁨. 그러한 것들이 ≪베갯머리 서책≫의 문장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이쇼나곤의 간결하면서도 직설적인 문장은 당대의 다른 문학 작품ㅡ특히 여류 문학 작품ㅡ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내숭 없이 솔직하게 내지르듯이 표현하는 문장이 통쾌함마저 느끼게 한다. 세이쇼나곤의 문장법의 본질은 옷자락의 바늘땀과 머리카락의 한 올까지도 잡아내는 극도의 리얼리즘이었다. 대부분의 헤이안 귀족들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꼈고 은유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해서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을 좋아했다. 새로운 미의 세계를 향해 재빠르게 작동하는 예민한 호기심. 그리고 그것을 생생하게 묘사해 내는 뛰어난 문장력. 이 두 가지가 ≪베갯머리 서책≫을 만드는 실제적인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모든 진실은 구불구불하다.” 니체가 말했다. 모든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든 것이 지난 후에야 과거를 돌이켜보며 서사를 매끄럽게 다듬고 패턴과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지그재그다. 여백도 있다. 과거의 자신을 막 모습을 드러낸 미래의 자신과 갈라주는 텍스트 사이의 빈 공간. 이 여백은 무언가가 누락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백은 무언의 과도기이며, 우리 삶의 흐름이 방향을 바꾸는 지점이다. (372:4~11)
니체가 영원회귀를 ”가장 무거운 짐“이라 칭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영원보다 더 무거운 것은 없다. 만약 모든 것이 무한히 되풀이된다면, 인생에 가벼운 순간이나 사소한 순간은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모든 순간이 동일한 무게와 질량을 갖는다. “모든 행동은 똑같이 크고 작다.” (382:하8~4)
<질문 2> 여러분은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방법이 있나요?
엄청 소심한 편이라서 생각이 많다. ,그래서 말해 놓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적이 많다. 하지만 이런 생활 철학은 있다. 내가 베푼 것에 대한 미련은 없고 지나간 인생에 대한 후회는 없다. 13살 때부터 약간 사는 것이 지겨워 얼른 지나가 노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안의 삶은 내 계획도 의지도 아닌 채 흘러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할 수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나면 후회가 없을 것이다.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렸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403:하4)
대부분이 자기 통제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404:10)
삶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지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지배할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생각과 충동, 욕망, 혐오감, 즉 우리의 정신적·감정적 삶이다. (407:하3~1)
우리는 우리의 주권을 타인에게 이양해 그들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만든다.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 지금 당장.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스스로를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 (408:10~13)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우리는 외부의 목표를 내면의 목표로 바꿈으로써 실망의 공격에 대비해 예방접종을 놓을 수 있다. (408:하2~409:1)
스토아철학은 미래의 고난을 상상하는 것은 미래의 고난에 대해 걱정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걱정은 모호하고 애매한 것이다. 하지만 고난을 예상하는 것은 구체적인 행위이며, 더 구체적일수록 좋다. (417:6~9)
내 행복은 비행기 티켓에 달려 있지 않다. 아주 조금도. 나에겐 비행기를 반드시 타야 할 권리가 없다.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지나가다 잠시 머무는 사람일 뿐이다. (430:7~10)
<질문 3> 여러분은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자신을 바꾸기가 훨씬 쉽다는 말에 동의하나요? 동의한다면 또는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유를 이야기해 주세요.
2022년2월 19일 토요일
아 새 학기 열흘 전이다. 무겁다.
김정임 선생님이 벌써 발제문 올리셨다.
아름 독서토론 발제문(2월 21일 월. 밤 9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5차.(마지막) 431~509쪽
Warming up
어느날 아침 시몬 드 보봐르는 매일 아침 그렇게 하듯 거울을 들여다보고 웬 낯선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 사람은 누구지? (P.435:9~11)
질문) 나는 나이 들었는가?
거울을 보고 낯선 나를 본 적이 있는가?
거울 속의 내가 아닌 친구들이 얼굴을 보고서야 나이를 인정한다.
[1]
보봐르의 오래된 파트너이자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는 노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절대로 온전히 내면화할 수 없는 상태, 오직 다른 사람들만이 이해하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늙어 보이고, 늙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누가 봐도 늙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자신이 늙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보봐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순셋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사실이 낯설다."(p.436:하8~437:1)
노화에 대한 지침은 별로 많지 않으며, 따를 만한 롤모델은 그보다도 더 적다. 물론 젊은이 흉내를 내는 노인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사람들은 젊은이 흉내를 내는 노인들의 롤모델이다. 나이 드는데 지침이 되어줄 사람은 없다. (P.437:2~5) (중략)
나에게도 롤모델이 필요하다. 충돌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적신호가 켜졌다. (P.437:하 7~8)
질문1) 나는 롤모델이 있는가?
나이 들어가면서, 즉 나의 노년의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위인)이 있는가? 내 주위엔 50대에 이혼하고 창작에만 몰두하는 분들이 많다. 나는 지금 어떻게 제 3의 인생으로 나아갈지 모색하고 있다. 그 때 못했던 것을 지금도 못할 것 같다.
[2]
노화는 질병이 아니다. 병이 아니다. 비정상이 아니다. 문제가 아니다. 노화는 연속체이며, 우리 모두 그 연속체 위에 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늙어가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도 당신은 늙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나 할아버지보다 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똑같은 속도로.(중략) 노화를 연구한 철학자 얀 바스는 말한다. "나이는 그 무엇의 원인도 아니다."(p.440:하 9~441:1)
질문2) 《노화의 종말》(하버드 교수진 저)에서는
'노화는 질병이다. 따라서 예방과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 부분과 비교하여 자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만큼 노화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되는데 나에게는 어려워보인다. 먹는 것, 생활습관, 생각(마인더) 다 바꾸어야 하는데 60년 된 것을 고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질병까지는 아니지만 개선은 할 수 있다고 본다. 좋은 음식을 먹고, 걷고, 잘 쉬면 얼마간은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
[3]
보봐르의 '잘 늙어갈 수 있는 열 가지 방법'(p.460~475)
1. 과거를 받아들일 것
나는 이러한 회상을 ‘위대한 정리’라고 부른다. 이들은 과거의 희미한 윤곽과 어렸을 때는 파악하지 못했던 인생의 흐름을 분간하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조망한다. 또한 상서로운 우연을 알아채기 시작한다. 보부아르는 이를 “여러 선이 한곳에서 만나는 지점”이라고 말한다.
2. 친구를 사귈 것
젊은이들에게 친구는 중요하다. 나이 들면 친구는 더욱더 중요해진다.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고 친구의 어깨에 기대어 울 수 있는 등의 일반적인 장점 외에도, 친구는 현재의 우리 자신과 과거의 우리 자신을 연결해준다. ‘난 너를 위해 살지는 않지만 너 덕분에, 너를 통해서 살아.’
3.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나이가 들면 특이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생각에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다른 사람들은 내 생각을 안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4. 호기심을 잃지 말 것
노인들의 문제는 어린 척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어린 척을 못 하는 것이다. 이들은 사실 일곱 살을 따라 해야 할 때 스물일곱 살처럼 군다. 노년은 호기심, 더 나아가 경이를 되찾는 시기다. (...) 결국 철학자는 뇌가 더 커진 일곱 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5.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노년이 이전 삶에 대한 터무니없는 패러디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 즉 개인과 집단에, 대의명분과 사회적·정치적·지적·창의적 작업에 헌신하는 것이다.” “이 나이에 공공연하게 항의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게 바로 노년의 장점 중 하나다. 줄 것은 더 많아지고 잃을 것은 더 적어진다.
6. 습관의 시인이 될 것
습관은 우리와 이 세계를, 우리 자신의 세계를 하나로 이어준다. 습관이 왜 생겨났는지를 기억하고 끊임없이 그 가치를 의심하기만 한다면 습관은 유용할 수 있다. 습관이 우리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습관을 지배해야 한다.
7.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말 것
활동을 위한 시간이 있다면 게으름을 피우기 위한 시간도 있다. 우리 문화는 후자가 아닌 전자만 중요시한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왕성하게 활동한 작가였지만 가끔은 모든 일을 멈추고 쉬기도 했다. 두 사람이 로마에서 보낸 여름들은 무無를 확장하는 시간이었다.
8.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삶은 스물다섯 살일 때나 일흔다섯 살일 때나 똑같이 부조리하지 않나? 하지만 일흔다섯 살은 그 부조리를 더 잘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충분히 인정받고 돈도 충분히 모았기에 이것들이 전부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안다. 스물다섯 살의 시시포스는 어쩌면, 어쩌면 이번에는 돌이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못한다. 일흔다섯 살의 시시포스에게는 그런 환상이 없다.
9.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우리의 물길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넓히는 것.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 타오를 것임을 믿는 것. 나는 이것이 노년의 최종 과제라고 생각한다.
10.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
우리 삶에는 결코 끝이 없다. 그저 포기할 뿐. 끝마치지 못한 일은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세상에 끝마치지 못한 일을 남기지 않고 떠나는 사람은 삶을 온전히 살아낸 것이 아니다. 우리가 끝마치지 못한 일은 다른 사람들이 끝마쳐줄 것이다.
질문3) 위 열 가지 방법 중 잘 실천하고 있는 항목이나
잘 되지 않는 항목이 있다면?
2번 항목 그동안 혼자인 것이 익숙해서 어렵다. 1,3,4,,5,7,8,9,10은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 같은데 6번 항목에서는 걸리는 게 있다. 싫증을 잘 내고 즉흥적 성격이어서 갑자기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한다. 끝을 안 보더라고 결과가 없더라도 땡기는 일을 하고 싶어하다보니 습관이 될 정도로 실천하는 게 없다. 잊지 않고 사는 것은 있다. 쓰는 것, 읽는 것, 먹는 것이다.
[4]
죽음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p.482: 하5~3)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지혜와 이론의 핵심은 결국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
(p. 483:하8~3) 몽테뉴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해 에피쿠로스를 비롯한 여러 철학자들의 책을 읽었고 어디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몽테뉴는 철학자들이 이 주제를 "표현을 겨우 스치는 수준으로 얕게 건드렸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더 깊게 파고들기로 결심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에 대해 미셸 드 몽테뉴만큼 솔직하고 용기 있게 글을 쓴 철학자는 없다.
보봐르가 나이 듦에 집착한 것처럼 몽테뉴는 죽음에, 더 정확히 말하면 죽어가는 과정에 집착했다.
몽테뉴의 여섯 아이 중 살아서 유아기를 넘긴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그의 남동생은 스물세 살에 테니스 공에 맞는 기이한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몽테뉴에게 가장 쓰라린 죽음은 친한 친구
가 전염병으로 서른두 살에 사망한 것이다. "나 자신이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p.483~484)
몽테뉴는 회의론자였다.
그는 진실을 찾아 헤매며 늘 의심하는 사람이었다.
몽테뉴는 확신하기 위해 의심했고 한 번에 하나씩 의심하며 자신만의 확신의 탑을 쌓았다. (p.487:2~6)
몽테뉴는 삶을 잘 살아내지 않고서 잘 죽을 수 없었고,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않고서 삶을 잘 살아낼 수 없었다.(p. 488)
죽음의 존재를 인식하면 삶을 더 풍성하게 살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은 이 사실을 알았다. 이들은 축제가 한창일 때 해골을 날라 와서 손님들에게 자기 운명을 상기시켰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도 이 사실을 알았다. 시인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 시작되는 매일매일이 너의 마지막 날이라고 확신하라. 그 뜻밖의 시간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니."(p.500:2~7)
질문4) 웰빙(Well-being)만큼이나 당하는 죽음이 아닌 잘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커진 요즘이다. 나의 좋은 죽음은 어떤 것인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죽음이라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
요즘 이런 게 생명이 빠져나가는 현상이다라는 것을 느낀다.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꽃이 피었다 지는 현상과 같다고 본다. 그래서 생명연장 반대에 서명할 것이다. 가족과 함게 의논했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움직이고 김치를 담그고 일을 할 것이다. 보양식품을 먹지 않을 것이다. 비타빈 정도는 먹겠지만. 잘 먹다가도 보양식이다 하면 목에 걸린다. 내가 가진 게 별로 없다. 정리하기도 편할 것 같다. 늙는다는 건 좀 더 지혜로워지는 거라고 본다면 지혜중 하나는 버리는 일같다. 물질, 욕망, 몸무게 하지만 방향은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죽었을 때 나를 들어올릴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몸부터 가벼워져야한다고 본다. 그게 배려고 마지막 친절일 것 같다.
2022년 2월 23일 수요일
케이크는 달고 맥주는 쓰다
제목이 암시하는 인생의 맛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에서 한참 머물렀던 것은 맥주와 케이크에 들어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이 작품의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는 단순한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인데 문학 작품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최초로 등장한다. 올리비아의 집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흥청거리는 앤드류 경과 토비 경에게 올리비아의 집사 말볼리오가 소란을 멈추라고 말하자 토비 경은 묻는다. “자네가 도덕적이라고 해서 케이크와 맥주가 더는 안 된단 말인가?” -p300, 해설에서]
어셴든은 작가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재가 되어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작가를 흔드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작가는 한 가지 보상을 얻는다. 뭔가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괴로운 기억, 친구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 짝사랑, 상처받은 자존심, 배은망덕한 인간에 대한 분노, 어떤 감정이든, 어떤 번뇌든 그저 글로 풀어 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p294~295]
서머싯 몸의 소설, ‘케이크와 맥주’를 읽으며 능수능란하고 용의주도한 글쓰기는 이런 것이 아닐까를 생각했다. 칭찬인 듯 하면서 야유와 조롱이 가득하고, 위트 있고 산뜻하면서도 거기엔 무거움이 있다. 일정한 스토리가 있지만 중간 중간 펼쳐지는 몸의 소설론을 비롯해 작가들의 세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가히 압도적이다.
이 소설의 ‘앨로이 키어’처럼 가식적이며 이기적인 세계에서만 머물러도 ‘동시대 작가들 중 로이만큼 보잘것없는 재능으로 확고한 위치를’(p16) 거머쥘 수도 있는 것이다. 서머싯 몸은 이 소설에서 작가들의 세계를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목요일
어제는 책걸상 정리를 했다.
교실 바닥을 물걸레질 했고(너무 건조해서 무슨 물이라도 칠해야했다.) 22년도 학생들 명부를 작성했다. 학급 동아리 활동으로 토박이말을 가르치기로 하기로 했다.
오늘은 물건 정리, 전화번호부 정리, 클래스 카드 학급 학생이름 올리기, 퇴근 길에 연화장 어니, 회장님과 저녁 한 그릇 먹기, 운동 등이 있다. 아침으로는 묵은지 김치찌개를 한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온다. 하루종일 가족들은 알아서 식사를 한다.
2022년 2월 25일 금요일
김용진 교장 선생님 퇴임식날이다. 오랜 세월 몸과 마음 담았던 교직에서 떠나시는 날이네요.
1979년에 교대동기로 또 문학마당으로 이어져온 인연 놓지않은 좋은 사람 용진동기님 퇴직을 축하합니다. 그 마음의 향기로 늘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